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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29. 2022

05. 사고뭉치, 로키-둘 : 화가 난 토르

북유럽신화, 로키, 토르, 장난

#. 화가 난 토르


- 거인과 싸우는 토르, 마르텐 에스킬 빙게 그림(1872,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or)


다음 날 아침. 집으로 향하는 토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조금 피곤했지만, 거인들을 두들겨 준 다음이라 마음은 흡족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지난 밤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었다. 기쁜 마음으로 빌스키르니르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온 집 안이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어디간거야?]


낯선 분위기에 토르의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 날따라 마중나오는 하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의문을 가지고 복도를 걷는데, 침실 앞에 서있는 '스루드(Þruðr : 힘)'가 보였다. 스루드는 토르와 시프의 딸로, 부모를 닮아 더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자고로 딸바보는 아빠라고, 토르는 이 외동딸을 매우 사랑하고 아꼈다. 토르는 달려가 루드를 번쩍 안아올렸다.


[아이고~ 우리 딸~ 아빠 기다렸쪄요~?]


토르답지 않게 애교섞인 목소리였다.


[아.. 아빠.. 저기.. 있쟎아요....]


그런데 토르를 보는 스루드의 표정이 이상하게 어두웠다. 깜짝 놀란 토르는 그저 딸을 바라만 보았다. 스루드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침실을 가르켰다. 가만히 딸을 내려놓은 토르가 침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시프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시프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울고 있었다. 시프의 시녀들이 주변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토르가 들어오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토르는 손짓으로 시녀들을 내보냈다. 시녀들이 나가고 침실문이 닫히자, 토르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 여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우는거야?]  


잠시 시프의 울음이 멈췄다. 토르는 이불을 뒤집어 쓴 시프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러자 시프가 더욱 더 서럽게 울었다. 토르가 물어도 시프는 그저 울기만 했다. 토르는 더 묻지않고 시프를 토닥였다. 한참 뒤, 시프의 울음이 멈췄다. 이윽고 시프가 이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프를 본 순간 토르는 온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시프의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얼마나 울었는지 붉게 충혈된 두 눈은 퉁퉁 부었다. 그리고 시프의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마치 쥐가 파먹은 듯 잘려나가 있었다. 시프의 머리카락은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토르에게도 사랑스러운 자랑거리였다.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난도질 당해있었다. 이건 토르의 자존심이 난도질 당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토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체 어떤 놈이야!!!!!!!!!]  


토르의 고함소리에 온 아스가르드가 들썩거렸다. 토르가 어찌나 성을 내는지, 신들조차도 그런 토르를 말리지 못했다. 모두가 토르의 분이 풀리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 다 돌려놔.


 오딘의 저택이 있는 '글라드스헤임(Gladsheim/Glaðsheimr : 빛나는 집)'으로 신들이 모여들었다. '시프의 머리카락 도난 사건'은 아스가르드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대체 얼마나 간이 크기에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모두가 궁금했다. 모여 든 신들 사이에 로키도 있었다. 이 간 큰 머리카락 도둑은 자신은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속으로는 시프와 토르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주변의 신들에게 대체 무슨일이냐고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잠시후, 토르가 시프의 손을 잡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시프는 두건을 쓴 채, 토르의 뒤에 숨듯이 섰다.


 모든 신들이 모이자, 오딘이 아내인 '프리그(Frigg : 사랑하는)'와 함께 들어와 가장 높은 곳에 앉았고, 주변의 신들로 부터 사건에 대해 들었다. 오딘이 시프에게 손짓을 했다. 시프는 머뭇거렸지만, 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앞으로 나왔다. 시프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두건을 벗었다. 시프의 모습을 본 신들은 하나같이 탄식을 내뱉었다. 시프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프리그가 황급히 내려가 자신의 숄을 벗어 시프의 머리를 감싸주었다. 다른 여신들도 시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녀를 부축하며 함께 슬퍼했다오딘의 시선이 시프에게서 토르에게로 옮겨졌다. 토르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걸어나왔다.


 토르는 아내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것보고 한동안 성을 내며 날뛰었지만, 안정을 되찾자 그 누구보다도 냉철해졌다. 토르는 스루드헤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대체 누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 건지. 누가 이런 못된 짓을 하고도 두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지.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인들은 자신에게 두들겨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누가? 거인들은 아니고, 자신이 집을 비운 것은 잠시였으니 이건 내부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하나. 토르에게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로키. 아스가르드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로키 밖에 없었다. 토르는 곧장 로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프를 보며 내심 즐거워하고 있던 로키는 토르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자 당황했다. 로키 주변의 신들이 뒤로 물러났고, 토르는 로키의 멱살을 잡아쥐며 들어올렸다. 로키는 토르의 손에 매달린 채 발버둥쳤다.


[네가 한 짓을 잘 알고 있겠지!!!]

[켁켁! 뭐.. 뭐를..]


로키가 황급히 오딘을 쳐다봤지만, 오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로키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토르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소리쳤다.


[너 이자식! 죽여버리겠어! 내 아내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몰라서 그래!!]

[켁.. 미안해.. 심심.. 너무 심심해서.. 그만..]


로키가 바둥거리며 간신히 대답했지만 그 말은 토르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토르가 로키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심심?! 내가 심심한게 뭔지 보여줘?!]

[용서해줘! 내가 책임질께, 반드시.. 반드시 시프의 머리카락을 원래대로 해놓을께! 아니아니 더 예쁘게 해놓을께!!!! 제발 살려줘!!!]


로키는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까지 흘리며 애걸했다. 어찌나 애절하게 비는지 주변의 신들은 애처로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토르는 분명히 화가 났지만, 그래도 토르에게 로키는 친구였다. 로키는 아버지인 오딘과는 의형제까지 맺었고. 토르는 오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생각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로키의 뼈마디마디를 부숴버리고도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저 사악한 거인들만 아니라면, 토르는 그 정도로 매정하지 않았다오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가 빌고있는 로키의 머리채를 잡아올렸다.


[어떻게 원래대로 해놓을 건데?!]

[어... 어떻게든. 내가 반드시! 반드시! 원상복구 해놓을께! 맹세해! 내 아버지, 어머니를 걸고서라도!!!]


머리채를 잡힌 로키가 애절한 눈으로 간청했다. 토르는 한참동안 로키를 노려보다가 로키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었다. 로키는 머리를 감싸쥐며, 겁먹은 눈으로 토르를 바라보았다.


[다 돌려놔. 만일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그땐 네 놈의 목뼈를 분질러 버릴테니 알아서해!!]


토르는 뒤돌아 시프에게로 향했다. 토르는 여신들의 부축을 받던 시프를 품에 안고 글라드스헤임을 떠났다. 로키는 가슴이 뛰고, 두 다리가 떨려서 일어나지 못했다. 오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맹세는 맺어졌다. 이제 남은건 빠르고 확실한 이행뿐이지.]


오딘도 그대로 프리그를 데리고 돌아가버렸다. 그러자 다른 신들도 하나 둘 글라드스헤임을 떠났다. 회의가 벌어진 넓은 홀 한가운데 주저앉은 로키만 남았다. 로키는 솔직히 화가 났다. 토르가 어떻게 자신의 짓인지 알아낸 건 둘째치고, 오딘은 물론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로키가 일어섰다. 서운한 건 서운한거고, 우선은 자신이 벌인 일을 어떻게든 수습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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