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단테 Dec 30. 2022

05. 사고뭉치, 로키-셋 : 이발디의 아들들

북유럽신화, 로키, 난쟁이, 세가지보물

#. 이발디의 아들들


로키는 그 길로 곧장 스바르트알바헤임으로 향했다. 사고를 치는 만큼, 수습하는데도 발빠른 로키였다. 물론 그건 수습을 할 필요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대부분 모른척 내빼는 걸로 충분했지만, 이번 일은 내빼는 걸로는 해결이 될 일이 아니었다. 로키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던지, 곧장 '이발디의 아들들(Sons of Ivaldi/Iwaldi))'이 사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솜씨도 좋았지만, 로키와는 약간의 친분도 있는 '난쟁이(드베르그/dvergr)' 형제들이었다.


- 난쟁이들, 로렌츠 프로리히(1895, 출처 : https://mymythstories.com/en/)


 로키는 큰기침을 하며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급한 마음과는 달리, 뒷짐까지 진 느긋한 발걸음이었다. 한참 재료를 나르고 있던 이발디의 아들들은 이 갑작스런 손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로키는 신이었고, 자신들에게는 고객이었다. 거기다 난쟁이라면 늘 로키의 작은 도움을 필요로 했던터라 못마땅함을 숨긴 채,  이 사고뭉치 손님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로키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이발디의 아들들이 모자를 벗고, 로키에게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로키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여기저기 걸린 도구들을 훑어보고 만져보았다. 작업대를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러보고는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털었다. 마치 한가로운 감독관이 뭔가 심술부릴 꺼리를 찾는 듯한 모습에 이발디의 아들들은 슬쩍 화가났지만, 일단 참으며 로키의 말을 기다렸다. 드디어 로키가 운을 뗐다.


[그래, 요즘 장사는 잘되고?]

[아, 예.예. 늘 돌봐주셔서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고 있습니다요.]

[흠.. 그래? 흠.. 너희... 혹시 시프라고 아나? 아, 왜 그 덩치만 요란한 토르의 마누라말이야.]


로키가 난쟁이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알고말굽쇼. 저희의 좋은 고객님이시죠.]

[그럼요, 지난번에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왔다고 값도 얼마나 잘 쳐주셨는데요.]

[아, 그 예쁜 여신님 말이죠? 갈때마다 맛있는 걸 한아름씩 주시죠. 아~ 그때마다 웃어주시는데 그냥~ 아휴~]

[그럼그럼~ 시프님을 보고 오면 몇일동안 잠도 못잔다니까~]


이발디의 아들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나서다보니 작업장이 금세 소란해졌다. 로키가 그 꼴을 한심하게 쳐다보자 가장 형인 난쟁이가 나섰다.


[다들 조용! 입 좀 다물라고!.... 로키님, 하문하시지요.]

[... 됐고. 근데 말이지~ 누가 그 시프의 머리카락을 홀라당 잘라가버렸지 뭐야?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로키가 은근히 자랑섞인 말투로 말했다. 로키의 말을 들은 이발디의 아들들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어떤 놈이 토르의 아내, 시프의 머리카락을 잘라갈수 있단 말인가? 대체 목숨이 몇 개길래? 로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토르랑, 시프랑 어찌나 슬퍼하던지.. 근데, 너희도 알다피시~ 내가 정이 좀 많아야지~ 내 친구랑, 제수씨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프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걱정하지마라. 이 로키님이 어떻게든 해결해주겠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토르도, 시프도 내 손을 잡고 막 고맙다고~ 고맙다고~]


로키는 이발디의 아들들 앞에서 손짓을 해가며 거들먹거렸다. 이번에는 이발디의 아들들이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로키는 다시 큰 기침을 하고는 자신의 앞에 모여있는 난쟁이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이지. 너희가 그걸 좀 만들어야겠어.]

[네? 저희가요? 뭘 만들어요?]


- 이걸 만들라구요? 저희가요?(출처 : https://snaketeacher.tistory.com/3831)


난쟁이들이 되묻자, 로키가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아~ 쫌,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시프의 머리카락 말이야! 니들도 봤으니 알꺼아냐?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그걸 만들라고! 이건 긴급사태야!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지금 당장.]


난쟁이들은 로키의 요구에 당황했다. 솜씨 좋기로 유명한 자신들에게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뜬금없이 나타나서 당장 머리카락을 만들어내라니.. 로키는 다시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한바탕 연기를 펼쳤다.


[토르도, 시프도, 슬픔 빠져 방구석에 쳐박혀 있다구.. 난 그런 토르와 시프가 불쌍해서 참을수가 없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그들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줄까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자네들이 생각났어. 이 세상에서 자네들말고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 줄 물건을 만들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라는 사실이 말이야. 이런데도 못 만들겠다는거야? 에엥? 니들은 맘도 안아프냐? 이 로키님의 다정함이 감동되지 않냐는 말이야~]

[..네.. 네.. 잘 알겠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뭔데요?]


로키의 연기에 질린 이발디의 아들들이 물었다. 로키가 활짝웃으며 말했다.


[신들의 애정과 호의! 토르도 너희를 잘 봐줄테고, 음~ 무엇보다 나의 애정과 호의를 얻지!]


이발디의 아들들은 기가찼다. 결국 고생은 자신들이 하고, 생색은 로키가 내겠다는 말 아닌가? 멀뚱멀뚱 서로 쳐다만 보는 난쟁이들을 보며 로키가 화를 냈다.


[앞으로 니들 대장간이랑, 작업장에 불을 싸그리 다 꺼버려야 정신차리지?!]


그랬다. 이 장난과 거짓말의 신로키는 또한 '불의 신'이기도 했다. 난쟁이에게 대장간의 불은 목숨과도 같은 것. 퍼뜩 정신을 차린 이발디의 아들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이고! 아닙니다! 당장 만들어드립죠! 야, 빨리 불 올려! 그리고 너! 창고가서 황금 좀 가져와! 제일 좋은걸로!!]


그 모습을 본 로키는 작업장 계단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난쟁이들은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황금 한줌을 꺼내어 시프의 잘려진 머리카락을 대신할 황금 머리카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래걸리지 않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만들어 마법의 힘을 불어넣은 다음, 로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마법의 머리카락으로 미풍에도 날아갈듯 부드럽고, 계속 자라난답니다. 이 정도면 시프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겁니다.]

[오호오~]


로키가 보기에도 정말 머리카락처럼 가늘었고, 시프의 머리카락만큼 아름다웠다.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로키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가만히 작업장의 용광로를 쳐다봤다. 용광로는 아직 뜨거웠다. 로키의 의도를 눈치 챈 이발디의 아들들이 말했다.


[아, 잠시만요. 어차피 불기운이 남았으니 덤으로 다른 선물들을 좀 만들 드리지요. 신들께 헌상할 건데 이걸로는 부족하니까요.]


난쟁이들은 다시 작업대로 돌아가 무언가를 잠시 이야기하더니 이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불꽃 속에서 훌륭한 두 가지의 보물을 만들어내었다. 로키가 받아보니 하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배였고, 다른 하나는 섬뜩하리만치 싸늘한 날을 가진 창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로키를 올려다보며 이발디의 아들들이 말했다.


[이 배는 겉보기엔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스키드블라드니르(Skiðblaðnir : 나뭇잎)'라고 불리는 마법의 배랍니다. 물에 띄우면 바로 거대한 배가 되는데, 아마 모든 신들과 무기들까지 실어도 넉넉할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평소에는 이렇게 작게 만들어 보관할수도 있으니 수납걱정도 이젠 그만! 이지요.]


이발디의 아들들은 로키가 보물들을 보며 놀라워하자 더욱 자랑스럽게 설명을 했다.


[뭘 그렇게까지 놀라시나요? 그리고 이건 '궁니르(Gunnir : 검의 울림소리)'라고 하는데, 한번 던지면 알아서 주인에게로 되돌아오는 똑똑한 녀석이지요. 아무리 멀리 던져도 순식간에 주인을 찾아온답니. 게다가 한번 정한 목표는 놓치는 법이 없으니 이만큼 좋은 창은 또 없을 겁니다. 하긴 우리들이 만들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요.]

[역시 이발디의 아들들이야! 자네들이야 말로 스바르트알바헤임 최고의 난쟁이들이야!!]


로키는 더욱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그리고 있는 말 없는 말로 이발디의 아들들을 추켜세워주었다. 이발디의 아들들도 그제서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로키는 몇 번이나 더 칭찬의 말을 늘어놓고서야 작업장을 떠났다.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는 길을 잡던 로키는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 정도면.. 토르도 더이상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지? 아니, 잠깐! 어차피 이걸 가져가봤자, 토르 녀석만 좋은 거쟎아?  먼데까지 또 오긴 귀찮고, 이왕 온 김에 보물들이나 더 챙겨? 공짜 쇼핑을 좀 더 즐겨봐? 흠.. 어떤 놈들을 꼬셔보지? 내 달변에 안넘어올 놈들은 없지만.어디보자.. 누가 좋을까?]


한동안 고심하던 로키에게 스치듯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아! '브로크(Brokkr : 중계인)' '에이트리(Eitri : 독)' 녀석들이 있었지!]


흥이 난 로키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스바르트알바헤임의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북유럽신화, #북구신화, #오딘, #토르, #드림바드, #단테, #norsemyth, #dreambard, #dante, #로키, #이발디의아들들, #난쟁이, #드베르그, #시프, #머리카락, #스키드블라드니르, #궁니르, #궁닐, #에이트리, #브로크

매거진의 이전글 05. 사고뭉치, 로키-둘 : 화가 난 토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