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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14. 2024

33. 로키의 말싸움 : 둘 - 왜 나만 갖고 그래?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로키, 에기르, 연회

#. 왜 나만 갖고 그래?


 잠시 세상 유람을 하며 신들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려던 로키의 계획은 그 시작부터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놀랍게도(물론 로키에게만 놀라운 일이지만) 로키가 가는 그 어느 곳에서도 로키를 환대하지 않았다.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은 물론이고, 같은 핏줄인 요툰헤임의 거인들도, 심지어 스바르트알바헤임의 난쟁이들 마저도 로키를 외면하고 홀대했다. 그들도 로키가 발드르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로키만이 그것을 부정하며 분노했다.


 [감히 이 구더기들이 나를 능멸해? 이건 능상(凌上 : 윗사람을 능멸한다)이야! 내가 네 놈들에게 좋은 불꽃을 주나봐라! 흥!]


- 로키(예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로키는 늘 하던대로 불꽃을 빌미로 난쟁이들을 협박했지만,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난쟁이들은 로키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그 어떤 대접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중에는 몰래 신들에게 로키의 행방을 알리려는 난쟁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로키는 급하게 그곳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로키는 몸을 돌려 난쟁이들을 향해 욕지꺼리를 한바가지나 하고 나서야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참 욕지꺼리를 해서인지 로키는 목이 말랐다. 그때 갈만한 곳이 떠올랐다. 바로 바다였다. 정확히는 바다의 신인 에기르의 저택이었다. 그곳이라면 신들의 눈도 피하고, 에기르가 만든 맛있는 맥주를 마실수 있을 것 같았다.


 [흥! 내가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다고~! 어디~ 에기르에게 가서 술이나 얻어먹어 볼까나~~?]


 이미 세상 여러 곳에서 홀대를 받은 로키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슨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로키는 에기르에게 가면 환영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로키도, 에기르도 신이라고 불리지만 순수 거인족이다. 게다가 로키가 아는 에기르는 '멍청한 호인(好人)'이었으므로. 로키는 깊은 바닷 속에 있는 에기르의 황금 궁전으로 향했다. 마침 에기르의 황금 궁전에서는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궁전의 정문에는 밝게 불을 피워두었고, 연회 재료를 실은 배가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로키는 궁전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캬~ 이래야지~ 그럼. 에기르가 내가 오는 건 또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성대하게 준비를 하고 있구먼. 하하!]


 이것은 로키의 오판이었다. 분명 에기르가 황금 궁전에서 연회를 준비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로키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연회는 에기르가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었다. 에기르는 거인족이었고, 아스가르드가 아닌 대양 깊은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세상으로 부터 신으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아스가르드의 신들 역시, 에기르를 자신들과 같은 신의 반열에 올려 동료로서 인정해주었다. 가끔 술을 얻어가는 일(강탈에 가깝지만)이 있지만, 에기르와 신들사이의 관계는 원만했다. 그렇다보니 에기르도 자신을 아스가르드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신들과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예전 토르가 히미르의 솥을 가져와 에기르에게 준 적이 있었다.(참고 '히미르의 솥'-https://brunch.co.kr/@e0a94227680644b/274)  그날 이후로 신들은 맥주가 잘 익어가는 때가 되면, 에기르의 궁전에서 함께 연회를 즐기곤 했다. 이번에도 마침 맥주가 잘 익어가는 시기가 찾아왔다. 에기르는 잘 익어가는 맥주를 보며, 한편으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도 발드르가 세상을 떠난 일에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가 기억하는 발드르는 자신이 빚은 맥주를 좋아했다. 그는 다른 신들과 달리 언제나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주어 고맙다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곤 했다. 에기르는 그런 발드르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사위로 삼고 싶어서 눈독을 들인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에기르는 신들이 발드르를 잃고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잘 알고 있었다. 에기르는 발드르를 기리며, 그를 잃은 슬픔을 가진 자신과 신들을 위로하는 연회를 열기로 했다. 물론 아스가르드를 떠나 세상을 떠돌던 로키가 이런 것을 알리는 없었지만.


 에기르의 황금 궁전에 도착한 로키는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문지기들을 뒤로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연회가 준비 중인 넓은 홀로 들어갔다. 로키는 그곳에서 자신의 옥좌에 앉아있는 에기르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어~ 에기르~ 잘 지냈엉~ 아히~ 이렇게까지 안차려도 된다니까, 참~~]


 홀로 들어오는 로키를 보며 에기르는 놀람과 함께 머리 한쪽이 띵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연회에 이런 불청객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전, 신들이 거의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지라 에기르의 난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에기르도 로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로키를 숨겨주고 화해를 주선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릴 판이다. 에기르의 아내인 심해의 여신, '란(Ran : 강도, 강탈)'도 난감함에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고, 그들의 딸들도 역시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로키는 잘 차려진 연회석으로 다가가 천연덕스레 차려진 음식을 찍어먹었다.


- 음식을 집어먹는 로키(예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에? 뭐여~ 왜그래? 오호~ 이거 맛있네!]


에기르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이 이마를 감싸쥐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곧 신들이 도착할 터, 대체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문지기들은 뭘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런 불청객을 막으라고 문지기를 세워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것. 에기르로서는 난감함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 에기르의 하인이 들어와 에기르에게 말했다.


 [주인님,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태운 배가 막 도착했습니다.]

 [하아.. 옘병..]


에기르는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둘러 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황금 궁전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로키도 당황했다. 신들이라니.. 여기서 갑자기 신들이 왜 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제와서 로키가 빠져나간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촉박했다.


 [아! 몰라! 될대로 되라지~!]


 로키는 탁자 위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입안 가득 털어넣었다. 맥주를 한잔 가득 털어넣었음에도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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