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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13. 2024

33. 로키의 말싸움 : 하나 - 스노리의 서가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 이야기, 스노리의 서가, 스튤라

#. 스노리의 서가


 사람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향은 삶의 희노애락이 펼쳐지는 무대이기에 때로는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 되고, 때로는 가장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한다. 시간은 고향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고, 급기야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이상적인 '노스텔지어(nostalgia)'가 되기도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이다. 지금 스튤라에게는 고향이 그런 노스텔지어의 공간이 되기에는 한참은 이른 시기였다.


 스튤라는 왕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누구도 스튤라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스튤라가 스노리의 제자이자 조카라고는 해도, 섬의 권력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스튤라는 고향집으로 들어서며 그의 마음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컸다. 스노리를 잃은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이겠지만, 고향의 풍경에서 자신과 같은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스노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내심 고향에서 만큼은 스노리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은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모습이었고, 여전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스트를룽 일족에게는 뿌리와도 같은 곳으로 스트를룽 일족의 힘이 오랫동안 깊게 자리잡은 곳이다. 스노리라는 가지가 잘려나갔다고 해서 스트를룽 일족의 뿌리는 흔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스튤라의 아버지 '토르두르 스트를루손(Þorður Sturluson)'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성향은 그의 아들들에게도 이어졌다. 아버지가 죽은 뒤, 고향은 본가의 형제들이 물려받았다. 그들도 스노리의 죽음을 슬퍼했고, 일족의 힘이 약화되는 것이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강경파는 아니었다.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족을 수습해 이후를 대비하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이에 스튤라는 실망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본가의 형제들의 행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준비도, 능력도 없이 당장의 분노만으로 복수에 나서는 것은 자칫 스트를룽 일족의 뿌리까지도 뽑혀나가게 만들수 있다. 스튤라가 아버지의 저택으로 향하는 언덕길로 접어들었을 때, 언덕 위에는 그를 마중나온 사람이 있었다. 형제들의 맏이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본가를 맡고 있는 '구토무르 토르다르손(Guttormur Thordarson)'이었다. 스튤라가 말에서 내리자, 구토무르도 말에서 내려 스튤라를 끌어안았다.


 [잘 돌아왔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구토무르 형님.]


- 출처 : https://www.history.com/shows/vikings/pictures


 스튤라도 구토무르를 안으며 멋쩍게 웃었다. 적자와 서자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들 형제들의 사이는 좋았다. 이는 모두 아버지인 토르두르의 현명한 대처덕분이었다. 어려서부터 인간적인 차별은 두지 않았지만, 나이 등에 따른 서열만큼은 확실하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서 '형은 동생을 보살펴야 하고, 동생은 형을 존경으로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의 자녀들도 대부분 토르두르의 성격을 물려받은 터라 이에 대한 반발은 없었다. 스튤라는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태어난 배가 달랐어도, 형들을 존경했고, 동생들을 보살폈다. 여기에 더해 토르두르는 본가의 자식들은 자신이 직접 가르쳤고, 서자출신인 올라프와 스튤라를 스노리에게 보내 가르치며 성장의 방향을 다르게 잡아주었다. 본가의 형제들은 영지를 다스리는 일을, 스튤라 형제에게는 문학과 정치를 배우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형제들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함께 성장할수 있도록 노력했다. 토르두르는 자신의 형제들이 서로 반목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자식들 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쓴 덕이었다.


 이제는 구토무르의 집이 된 토르두르의 저택에서 작은 환영회가 열렸다. 모처럼 고향에 있는 형제들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안부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형제들끼리 따로 술잔을 나누던 중, 구토무르가 스튤라를 보며 말했다.


 [이제는 고향에서 지내렴. 너도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영지가 있으니 그곳에 머물거라. 내가 곁에서 도와주마. 이제는 좋은 색시를 만나 가정도 꾸려야 하고.]

 [...]


 스튤라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구토무르가 더욱 힘을 주어 스튤라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렴. 우리만큼은 아버님과 숙부님들 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 네.]


 스튤라가 고개를 숙인 채, 어렵게 대답했다. 구토무르는 그런 동생의 손을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날 이후, 스튤라는 구토무르의 말을 따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물려받은 영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본가의 형제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구토무르와 다른 형제들은 스튤라가 스노리를 잃은 슬픔에서 잘 벗어나고 있다고 안도했다.


 어느날 아침. 스튤라는 어린 시종 하나를 데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낚시를 나섰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알았다. 그러나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온 것은 스튤라의 낚싯대를 들고 돌아온 어린 시종 뿐이었다. 스튤라는 낚시를 나서듯 꾸민 뒤 집을 떠나버렸다. 스튤라의 목적지는 이미 섬으로 돌아올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고향은 잠시 쉬어가는 정류장이었을 뿐. 스튤라는 떠돌이 음유시인으로 변장을 하고, 카갈리를 찾아나섰다. 그에게 합류하여 스노리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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