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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an 04. 2023

05. 사고뭉치, 로키-일곱 : 내기의 결과

북유럽신화, 로키, 브로크, 에이트리, 세가지보물

#.내기의 결과


오딘과 토르, 그리고 프레이는 곧바로 논의를 시작했다. 모든 보물이 저마다 훌륭했다. 주변에 모인 신들도 저마다 어떤 보물이 최고일지 수근거렸다. 로키는 불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기에 질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신이고, 여긴 아스가르드다. 어쨌건 자신 덕분에 신들은 이렇게 많은 보물을 얻게되었다. 당연히 신들이 자기편을 들거라 믿었다. 브로크는 기다리는 내내 로키를 째려보았고, 에이트리는 조용히 신들이 내릴 결과를 기다렸다. 오래지나지 않아 심사를 맡은 세 신이 자리로 돌아왔다. 프레이가 손을 들자, 홀 안이 조용해졌다. 프레이가 발표를 할 모양이었다. 모두 프레이의 입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심사결과는.. 만장일치로 묠니르를 가장 좋은 보물로 선정했습니다. 모든 보물들이 하나같이 훌륭했습니다. 그 중에서 묠니르가 거인들을 대적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무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기의 승자는 브로크와 에이트리!]


- 로키와 난쟁이 형제


결과를 들은 브로크는 로키를 보며 비웃었고, 에이트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로키가 온 홀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뭐?! 뭐라구?! 지금 나랑 장난해? 누구 덕에 이런 보물을 얻게 된거냐고! 난 당신들과 같은 신이고, 여긴 아스가르드야! 똥개도 자기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인데, 여긴 내 나와바리라구!! 이건 아니지!!]


조용해진 홀 안에 로키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울려퍼졌다. 로키는 심사를 맡은 세 명의 신을 쳐다봤다. 특히 오딘을. 오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로키. 그대는 뭔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로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오딘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이건 네가 저지른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우린 너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지. 넌 반성은 커녕, 내기에 빠졌어. 우리 중 그 누구도 너에게 이런 보물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린 너의 이런 요상한 내기에 장단까지 맞춰주었다. 시프에게 준 황금 머리카락은 네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자 합의금이다. 그러니 넌 저들보다 보물이 하나 부족한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우린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왜? 너는 우리의 일원이니까. 우린 너에게 늘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어. 그런데 이제와서 네 편을 들어주지 않아 서운하다고?]


오딘의 말은 옳았다. 화가 난 것인지, 부끄러웠던 것인지 로키의 얼굴이 붉어졌다. 로키가 중얼거렸다.


[이.. 이런 젠장할.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쟎아? 안 그래?]


브로크가 다가서며 말했다.


[로키님? 이젠 약속을 지켜주셔야지요? 신이나 되시는 분이 거짓말을 하시렵니까?]

[이봐.. 내 머리와 같은 크기의 금을 줄테니 없었던 일로 하는게 어때?]


로키가 브로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에이트리가 가방에서 칼을 꺼내 로키에게 다가갔다.


[금이라면 난쟁이들에겐 남아돌지. 잔말말고 머리나 내놓으라구.]


 난쟁이 형제가 로키에게 점점 다가오자, 로키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당연히 난쟁이의 짧은 다리로는 쫓아갈 수 없었다. 로키가 홀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토르가 로키의 앞을 가로막았다. 토르는 로키를 바닥으로 밀쳐 넘어뜨린 뒤, 로키의 뒷덜미를 붙잡아 난쟁이 형제에게로 질질 끌고왔다. 브로크가 쓰러진 로키의 머리를 들자, 에이트리가 날이 시퍼렇개 선 칼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로키가 누구던가, 그 위기의 순간에 로키의 머리는 더욱 비상하게 돌아갔다. 사기와 거짓말의 대가, 평생토록 번뜩이는 잔머리로 살아온 로키가 아닌가?! 갑자기 로키가 크게 웃었다. 갑작스런 웃음에 신들도, 난쟁이 형제도 모두 깜짝 놀랐다.


[하하하! 나 로키는 신용 그 자체지! 계약은 계약. 맘대로 해봐. 근데, 내가 머리를 내어준다고 했지 내 목은 잘라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어! 목을 건드리는 건 계약위반이라구! 그리고 여긴 아스가르드! 피를 보는건 금지된 동네야! 하하하!]


로키가 더욱 호탕하게 웃었다. 엉뚱하긴 했지만, 로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로키의 머리를 가지는 방법까지는 약속하지 않았고, 로키의 말대로 아스가르드는 피를 봐서는 안되는 성역이었다. 에이트리가 순간 머뭇거렸다. 그때 브로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댁의 머리는 우리 꺼란 말이잖아? 에이트리, 송곳을 꺼내. 이 사기꾼의 주둥이를 확 꿰매버리자구.]


그 말을 들은 에이트리의 눈빛이 변했다. 앞서 예의바른 척하던 모습은 간데없이 본래의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어.. 어이. 우리 말로 하자구. 오딘~ 토르~ 나 좀 도와줘! 야, 프레이! 너 보고만 있을래!?]


로키가 바둥거리며 소리쳤지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신은 한 명도 없었다. 브로크가 풀무를 잡던 손으로 단단하게 로키의 머리를 붙들었다. 눈을 다친 원한까지 더해져 더욱 우악스러웠다. 로키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에이트리는 송곳으로 로키의 입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낸 뒤, 가죽끈을 꺼내서 입을 꿰맸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로키의 얼굴을 보고서야 브로크는 로키의 머리를 놓아주었다. 로키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난쟁이 형제는 크게 웃으며 로키를 놀려댔고, 신들도 함께 웃었다. 오딘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저택인 '발할라(Valhalla : 전사들의 전당)'로 돌아갔다. 오딘의 손가락에서 황금반지가 반짝였고, 어깨에 긴 창을 맨 시종이 오딘의 뒤를 따랐다. 토르도 보물이 든 상자를 챙긴 뒤, 시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프레이는 한 손에는 황금빛 배를 들고, 황금멧돼지에 올라탔다. 어쨌건 로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받았다. 시프도 다시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았고, 더 없이 훌륭한 보물들도 얻었다.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신들은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다. 스바르트알바헤임으로 향하는 브로크와 에이트리 형제의 발걸음도 흥겨웠다. 우선 자신들을 우습게 여긴 로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 다른 난쟁이들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을 자신들이 해냈다. 거기다 신들로 부터 최고의 보물을 만들었다는 인정까지 받았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장인은 자신들이었다.  


한편, 로키는 눈물을 흘리며 가죽끈을 풀어내었다. 입과 입술은 물론 얼굴 전체가 퉁퉁 부어올랐다. 로키의 귓가에 아직도 난쟁이 형제와 신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개자식들!! 누구 덕에 그런 보물을 얻었는데, 은혜도 모르고 날 이렇게 만들어? 두고보자, 기필코 복수하겠어!! 나 로키의 이름에 맹세코!! 반드시 네 놈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마!)]


로키는 이를 갈았다. 다시금  통증이 심해졌고, 로키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뒹굴었다. 아스가르드 넘어로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의 집주변은 로키의 신음소리로 시끄러웠고, 로키는 집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운명은 황혼을 향한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로키가 저지른 '시프의 머리카락 도난사건'은 뜻밖의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로키가 처벌을 받으며 끝이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감)'이고, '권선징악(勸善懲惡 :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은 징계함)'의 교훈적인 이야기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로키도 교훈을 얻었을 법하지만, 로키의 장난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로키는 때로는 신들과 다투고, 화해하고 때로는 속이기도하고, 협력도 하며 라그나로크를 향해간다. 로키의 행동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로키에 대한 대중의 평가도 수없이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누군가는 로키야말로 '신들의 대척점에 선 자'이고, '진정한 안티히어로'로 보기도 한다. 다만, 나에게 로키는 어떤 하나의 단어나 개념으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굳이 표현하자면, 내가 아는 로키는 "지금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주의랄까? 로키는 그저 매 순간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황혼을 불러오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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