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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an 18. 2023

07.아스가르드의 성벽-둘 : 수의계약

북유럽신화, 아스가르드, 성벽, 프레이야, 로키, 계약

#. 수의계약


 헤임달은 오딘에게 사내의 등장과 그의 제안을 알렸다. 잠시 생각을 한 오딘은 헤임달에게 사내를 글라드스헤임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오딘은 따로 시종을 불러 주요 신들도 글라드스헤임으로 모이게 했다. 글라드스헤임에 오딘과 주요 신들이 모였고, 헤임달이 사내를 데리고 홀로 들어섰다. 사내를 보며 신들이 수근거렸다. 사내의 정체를 의심했고, 사내의 의도를 추측했다. 사내가 오딘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딘이 손을 들자, 홀이 조용해졌다.


[너의 제안에 대해 들었다. 이는 여기 모인 신들도 알아야 하는 일. 고개를 들고, 너의 제안을 말하라.]

[저는 떠돌이 석공입니다.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돌을 만지며 살았습죠. 세상 그 누구보다 돌을 잘 다루고, 집을 짓고, 벽을 쌓는 것은 최고라 자부합니다. 이것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떤 난쟁이보다도, 그 어떤 거인보다도, 설령 여기 있는 신들보다도 제가 훨씬 뛰어납니다.]


신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아무리 솜씨에 자신이 있기로서니 감히 신보다 뛰어나다는 소리를 하다니! 사내의 불경함에 술렁임이 커지자 오딘이 다시 손을 들었다.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무너진 성벽을. 당신들의 성벽을 제가 다시 세우겠습니다. 이전의 성벽보다도 튼실허게, 그리고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세워드립죠. 거인들이 떼로 몰려와서 성벽을 두드리고, 매달려도 끄떡없는 딴딴한 성벽을 세워드리겠습니다.]


오딘이 물었다.


[기간은 얼마나 필요한가?]

[열 여덟달, 일년 반이면 충분합니다.]


사내가 호기롭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신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그동안 자신들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아스가르드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그런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일년 반만에 더 크고 높게 세우겠다니.. 곁에서 듣던 헤임달도 깜짝놀라 사내에게 말했다.


[여긴 아스가르드다. 신 앞에서 허언은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내가 못할 것 같소?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문지기 나리가 내 목을 치시우! 내 원망않으리다!!]


사내가 헤임달을 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홀 안이 더욱 소란해졌다. 오딘이 신들을 둘러보며 다시 손을 들었다. 다시 홀 안이 조용해졌다. 오딘이 다시 물었다.


[네 말과 네 능력이 일치하길 바란다. 그래, 일의 품삯은 얼마를 원하는가?]


사내가 오딘을 보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원하는건 별거 아닙니다. 제 품삯으로 해와 달.. 그리고 여신 '프레이야(Freyja : 여주인)'를 주세요!]


쾅! 오딘이 화를 내며 탁자를 내리쳤다. 여기저기서 신들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이 얼토당토 않는 요구에 모든 신들은 화가났다. 신들에게 프레이야는 단순한 일원이나 동료가 아니었다. 신들에게 프레이야는 세상 소중한 보물이었다. 사내의 황당한 요구에 프레이야도 얼굴을 붉혔다. 특히 냉철한 오딘이 탁자를 내리칠 정도로 화가 났다. 프레이야가 아사 신족에게 온 이래로, 오딘이 그녀에게 쏟은 정성과 애정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오딘은 그녀의 마법지식 뿐아니라, 그녀 자신과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고자 애썼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다온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 해와 달도 모자라, 감히 프레이야를 요구하다니. 홀 안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고 헤임달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내를 데리고 들어온 것은 자신이니, 여차하면 자신이 끌고 나가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웃으며 홀 한가운데로 걸어나왔다. 모두가 놀라서 쳐다보니 로키였다. 로키는 신들이 조용해지고, 오딘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한참을 웃었다. 홀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자 로키가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하하. 낯선 사내여,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어. 여기까지와서 농담이라니~ 이거 나보다도 더 간이 큰 놈이구만! 하하하!]


로키가 사내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신들이 모두 어이없어 하는 중에 사내가 크게 말했다.


[난 진심이오!!]


로키는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 면면이 사내의 진심이 묻어나왔다. 사내를 보던 로키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도 진심으로 고민해봐야 하겠구만~]


로키가 오딘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발을 뒤로 빼고,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딘,  '라우페이(Laufey : 행운의 잎사귀, 로키의 어머니)'의 아들 로키가 부탁을 하나 드립니다. 이 친구가 진심이라는데, 신이 되서 진심을 무시하면 되겠어요?  친구 잠깐 내보내고, 우리끼리 이야기 좀 하죠?응?]


오딘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었지만, 로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헤임달이 사내를 잠시 글라드스헤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로키는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았다. 헤임달이 사내를 데리고 사라지자, 홀 안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신들이 여기저기서 로키에게 소리쳤다.


- 아스가르드, 아이슬란드(17세기. 출처 : https://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Asgard)


[이봐, 로키! 대체 뭐하자는거야?!]

[저런 걸 그냥 내보다니! 목을 쳐야지!!!]


로키는 시끄럽다는 듯 손가락을 귀를 막고 홀 가운데 서있었다. 그동안 오딘은 자리에 앉아 가만히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체통없이 나까지 흥분하다니. 로키가 아니었으면 실수할 뻔했군.)]


홀 한가운데서 욕을 얻어먹고 있는 로키를 보던 오딘이 손을 들었다. 그제서야 홀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오딘이 로키를 보며 말했다.


[로키, 너에게 좋은 계책이 있는 것 같군. 들려주게.]


로키가 귀에서 뗀 손가락을 비비며 말했다.


[아하이~ 그걸 이제 눈치채면 어떡해요~ 아, 사람들, 아니 신들 하고는.. 쯧쯧..]


로키는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어험! 자, 다들 잘 들어봐. 저 녀석은 다~ 꿍꿍이를 가지고 온 놈이야. 정체도 다들 짐작하고 있는 대로 일테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없이 발끈하는건 좋지 않아.]

[그럼 어쩌자고?]


누군가가 로키에게 물었다. 그러자 로키가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대답했다.


[말 좀 자르지 말고 들어봐. 분명 저 녀석이 요구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지. 근데 한 번 잘 생각해보라구. 저 성벽. 대체 전쟁이 끝난지가 언제냔 말이야. 근데 우린 손도 못대고 있어. 왜? 엄두가 안나거덩. 저 크고, 길고, 거대한 성벽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짓냐구. 근데 저 녀석이 나타나 지가 그 힘든걸 하겠다하니, 우린 그걸 이용해 먹어야지.]

[... 날 팔아먹겠다는거예요?!]


프레이야의 예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로키가 프레이야를 보며 웃었다.


[그럴리가~~ 화를 내도 예쁜건 알겠지만 주름은 안좋아. 우리 소중한 프레이야를 그런 놈에게 보낼수는 없지. 계약내용을 조정하는거야. 일은 시작해도 끝은 못내게 말이지. 음.. 우선 녀석 혼자 일하게 하고.. 그래, 기간을 확 줄여서 여섯달 어때? 마침 내일이 겨울의 시작이니까. 내일부터 여섯달. 근데 한 겨울에 돌이 잘 깨질까몰라? 크크.. 녀석은 고생만 하다가 목이 달아날테고, 우린 힘 하나 안들이고, 꽤 지어진 성벽을 얻게 될꺼야.]


신들이 웅성거렸다.


[만일 다 지으면요?]


프레이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로키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걱정마. 내가 그런 꼴을 보고 있진 않을테니까. 그건 이 로키가 책임지지!]


프레이야가 뾰루퉁해진 얼굴로 로키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신들은 로키의 의견으로 기울었다. 힘 하나 안들이고, 성벽을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약간의 위험(?!)은 있지만. 그마저도 로키가 책임진다고 하니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 오딘을 바라보았다. 오딘도 로키의 계책이 싫지 않았다. 결국 신들은 로키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오딘은 다시 헤임달과 사내를 불렀다. 사내가 들어오자, 로키가 신들을 대신하여 말했다.


[응! 우리가 고민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이건 우리가 밑지는 장사야.]


사내가 로키를 쏘아보았지만 로키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말이지. 우리가 아~주~ 공정하게 조건을 수정했어. 우선 네가 말한 품삯은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 동의했어. 단! 네가 혼자 힘으로만 여섯달 안에 성벽 공사를 모두 끝내는 조건이지. 마침 내일은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니 내일부터 여섯달! 어때? 아주 공정하지?]


여섯달이라니, 그것도 혼자 힘으로.. 도저히 말이 안되는 조건이었다. 사내는 무어라 대꾸도 못하고 입입을 벌린 채, 모여있는 신들을 쳐다보았다. 잠시 뒷목을 잡던 사내가 드디어 로키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관대한 신들이 너무 억지를 부리시네요. 하아... 좋아요. 기간은 맞춰드리죠. 대신 한가지 더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데리고 온 말은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나리들한테 도와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테니까!]


로키가 오딘을 쳐다보았고 오딘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로키가 다시 나서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말이라는게, 성벽 밖에 있는 그거냐?]

[네.]


사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로키가 오딘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파토가 나면, 우리도 별로 안좋을 것 같은데요? 내가 알아보니 저 녀석이 데리고 온 말이라는게.. 삐쩍 가물다못해서 곧 쓰러지게 생겼다더라구요. 등에 파리만 앉아도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생겼다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살짝 아량을 보이는게 어떨까요? 우리는 최대한 많이 쌓은 성벽이 필요한 거잖아요?]


로키의 말을 들은 오딘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가 사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하지! 대신, 너와 너의 말 둘이서만! 여섯달 안에 성벽을 완공해야 한다!]

[완공하면 품삯은 약속한 대로 주시는 겁니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물론! 우린 신이다! 신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너 역시 이 계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로키가 신들을 대신해 소리쳤다. 사내도 호기롭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이로서 아스가르드 성벽 공사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회의는 끝났다. 사내는 씩씩거리며, 헤임달을 따라 성벽 밖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상한 프레이야는 치맛자락을 거칠게 날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로키도 기고만장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고, 다른 신들도 로키의 계책대로 되기를 바라며 돌아갔다. 신들이 돌아가자, 오딘은 황급히 프레이야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들인 정성때문이라도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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