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햐드닝의 싸움
브리싱가멘이 불러온 나비효과로 인해, 인간은 세상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싸움과 전쟁을 반복하게 되었다. 이런 싸움과 전쟁 중에 '하나의 싸움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다. 이른바 '끝없는 싸움'이 그것이다. 두 명의 왕이 벌이는 끝없는 싸움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햐드닝의 싸움, 또는 헤드닝의 싸움(Hjaðningavig/battle of the Heodenings)'으로 불리는 이야기다.
- 스토라 함마스 비석에 새겨진 끝없는 싸움. 고틀란드(7세기경.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ja%C3%B0ningav%C3%ADg)
미드가르드에는 '회그니(Hogni : 울타리)'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왕에게는 '힐데(Hilde : 전투, 싸움)'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비밀스러운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어느날, 회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웃 나라의 젊은 왕 '헤딘(Heðinn : 살가죽 외투)'이 회그니의 왕궁으로 쳐들어왔다. 헤딘은 왕궁을 약탈하고, 힐데를 전리품으로 삼아 자신의 나라로 끌고갔다. 회그니가 이 사실을 알고 서둘러 자신의 왕궁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헤딘은 떠난 뒤였다. 회그니는 자신의 충직한 용사들을 이끌고 헤딘을 뒤쫓았다.
한편, 헤딘은 회그니가 쫓아오는 것도 모르고 다른 일에 빠져있었다. 헤딘은 회그니의 딸, 힐데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냈다. 힐데도 점차 이 젊은 왕에게 빠져들었고, 결국 그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헤딘과 힐데는 서로 사랑을 나누며 결혼하기로 맹세했다. 그때 헤딘에게 위급한 소식이 들렸다. 회그니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회그니의 추격, 콘게사게르의 삽화(1899. 출처 : https://myndir.uvic.ca/SKng-1899-Oslo-034-01.html)
헤딘은 서둘러 배를 띄웠다. 헤딘이 바다를 건너 자신의 나라로 달아나자, 회그니도 배를 몰아 바다를 건너 그를 뒤쫓았다. 마침내 회그니는 '호이(Hoy)'라는 섬에서 헤딘을 따라잡았다. 양측의 병사들이 섬 중앙의 들판을 경계로 자리잡았다. 설욕전을 준비하던 회그니에게 헤딘의 사신이 찾아왔다. 자신의 딸인 힐데였다. 힐데는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헤딘과의 싸움을 벌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헤딘이 약탈한 모든 것을 돌려줄 것이며, 충분한 보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데는 회그니에게 헤딘의 목걸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헤딘과 자신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밝히며, 애정과 화평의 증거로 헤딘의 목걸이를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회그니는 헤딘의 목걸이를 집어던졌다. 자신의 왕궁을 약탈하고 짓밟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딸까지 능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힐데의 애원에도 회그니는 헤딘을 향한 복수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회그니에게 헤딘에게 능욕을 당한 것도 모자라 그에게 빠진 힐데는 더이상 사랑하는 딸이 아니었다. 회그니는 헤딘과 '호름강(Holmgang)'으로 승부를 내고자 했다. 회그니에게 헤딘에게 자신의 전갈을 전하라고 소리치며, 힐데를 내쫓았다.
- 드라마 '바이킹스' 중에서 한장면(출처 : https://www.history.com/shows/vikings/pictures)
회그니가 제안한 방식은 자신과 헤딘이 각각 스무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결투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헤딘은 회그니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회그니가 호름강을 선언한 이상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다음날 헤딘은 자신의 충직한 스무명의 부하들과 함께 근처의 작은 섬에 올랐다. 회그니도 자신의 용맹한 스무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작은 섬에 도착했다. 입회인은 힐데였다. 헤딘은 결투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회그니에게 호름강을 철회하고, 자신의 화평안을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회그니는 이 부탁을 단번에 거절하며,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회그니가 검을 빼들자, 힐데는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회그니의 검은 난쟁이들이 만든 마법의 검이었다. 아니, 이 검은 저주 받은 검이다. 회그니의 검은 '다인슬레이프(Dainsleif : 다인의 유산)'라고 불렸는데,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검이었다. 다인슬레이프는 한 번 칼집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만 다시 칼집에 넣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다인슬레이프가 원하는 만큼의 피를 보아야 가능했으며, 다인슬레이프를 빼든 자는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회그니가 다인슬레이프를 빼든 이상, 헤딘과 그의 부하들 모두를 죽여야만 멈출 것이다. 헤딘은 다인슬레이프에 겁을 먹지 않았다. 자신의 충직한 부하들이 진정으로 충직한 무기라고 소리치며 회그니에게 맞섰다.
아침에 시작한 싸움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승자는 없었다. 작은 섬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힐데 뿐이었다. 회그니도, 헤딘도.. 그 둘을 따르던 용감한 마흔명의 전사들도 모두 죽었다. 힐데는 커다란 슬픔에 빠져 끝없이 울부짖었다. 밤이 되었고 힐데는 한가지 결심을 내렸다. 힐데는 사용해서는 안될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힐데에게 회그니는 자신을 낳아주고, 사랑해준 아버지였다. 화평의 사신으로 간 자신을 내쫓았지만, 힐데는 아버지를 너무도 사랑했다. 그리고 회그니를 따르던 스무명의 전사들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혈육과 같은 자들이었다. 또한, 힐데는 헤딘을 사랑했다. 헤딘은 자신의 유일한 남자였고, 남편이었다. 헤딘을 따르던 스무명의 전사들은 역시 남편이 사랑했고, 남편을 충성으로 지지한 자들이었다. 힐데는 자신의 마법으로 이들 모두를 되살렸다.
그러나 되살아난 이들은 힐데가 사랑했던 이들이 아니었다. 힐데가 살려낸 이들은 모든 기억과 의지를 잃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서로를 향한 끝없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손에 든 무기뿐이었다. 회그니도, 헤딘도, 그들을 따르는 마흔 명의 전사들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다시금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대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자는 힐데 뿐이었다. 밤이 되자, 힐데는 다시 이들을 되살렸다. 이들은 아침이 되면 다시 싸웠다.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힐데도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밤이 되면 다시 살아났고, 아침이 되면 다시 무기를 들고 싸웠다. 오직 분노와 증오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햐드닝의 싸움(Hjaðningavig)]이라 불렀다.
▷ 햐드닝의 싸움과 드라우그?
- 드라우그(출처 : https://th-th.facebook.com/people/Folklore-Traditions-Legends/100044276087249/)
북유럽 설화에는 '드라우그(Draugr : 의미불명)'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이들은 일종의 '언데드(Undead : 죽지않는 이라는 의미지만 대체로 시체)'로 이른바 '산송장'이다. 외모는 죽은 시체의 모습이고,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닌다. 이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며, 생전에 원한이 있는 자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사람을 으깨어 죽이거나, 뜯어먹으며 때로는 미치게하거나 피를 빨기도 한다. 대신 이들은 자신들이 죽은 자리를 쉽게 벗어날수 없기 때문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나 짐승을 공격한다.
억울하게 죽거나 바다에서 죽은 자가 드라우그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불사신은 아니고, 목을 잘라 불에 태우면 파괴된다고 한다. 드라우그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시체의 머리를 자르고, 가슴에 나무말뚝을 박기도 한다.
가끔 햐드닝의 싸움에 등장하는 전사들을 드라우그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그러니 헷갈리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헷갈림이 이후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먼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던할로우(Dunharrow)'의 유령들의 모티브로 여겨진다. 그리고 각종 영화, 만화, 게임 등의 매체에 등장하는 '무덤에서 등장하는 시체전사의 원형' 중 하나이다.
-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던할로우의 죽은자들의 군대 (출처 : 영화 '반지의 제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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