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의 타이밍을 생각하며

by 여름호빵

두 딸들과 친구처럼 대화를 많이 하며 지내는 편인데, 최근 들어 고3인 큰 딸과 가끔 언성이 높아지고 언쟁하는 일이 전에 없이 생긴다.

따지고 들다 보면 논리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감정만 상한다.


보통은 전혀 상관없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아이에게 갖고 있던 은근한 불만과 힐난하고 싶은 마음이 툭 튀어나오고, 빈정거리는 태도가 된다. 그렇게 언쟁이 시작된다.


아이가 나보다 더 맥락을 놓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전후관계를 짚어가며 따지는 걸 듣고 있자면, 나는 내 언행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마구 쏘아붙이게 된다. 그러다 결국 아이를 비난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는 바로 브레이크를 걸고 나의 비겁함과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취한 행동이 아이를 마음 상하게 했고, “엄마 요즘 이상해”라는 말이 트리거가 됐다. 대거리를 하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나는 엄마가 요즘 갱년기라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돼서, 의도적이지 않게 순간적으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리액션을 하는지도 스스로 모른 채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갱년기는 사실 핑계였다.


나는 늘 친구 같은 엄마, 솔직하고 담백한 엄마, 적절하게 공감과 격려, 지지를 해주는 엄마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진솔하고 시시콜콜한 대화가 늘 열려 있는 엄마로 살고 싶었다.

오늘 같은 경우는 그렇게 유지해 온 ‘좋은 엄마’ 페르소나가 잠시 벗겨진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굉장히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나의 페르소나가 몇 개인지 다 세어보지도 못하겠다.

그러나 그게 옳은지 그른지와 별개로, 그 페르소나들을 ‘제때’ 쓰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오늘은 그래도 덜 철저해도 되는 내 아이와의 일이라 이 정도로 정리했지만, 내가 감정 컨트롤을 못 하고 가면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생긴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서늘해진다.


어차피 사람은 가면을 쓰지 않고 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가면의 종류와 개수가 아니라, 변검의 타이밍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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