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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닦아주세요

by 즐겁고도이상한

네가 태어나고 심장을 쓸어내리게 되는 상황이 몇 번 있었어. 평소에 잘 놀던 또래 남자아이와 네가 서로 안아주려다가 그만 네가 뒤로 머리부터 넘어진 거야. 탄성도 전혀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던 터라 쿵 하는 소리도 컸고, 너도 놀랐는지 처음엔 울지도 않았어. 얼른 일으켜 괜찮냐고 물으며 달래주자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됐는지 심하게 울더라. 그래도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잘 놀길래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낮잠을 자고 일어난 네가 구토를 하지 뭐야. 뇌진탕이 온 건가, 큰일났다 싶어 119에 전화를 하고 옷가지와 기저귀 등 짐을 챙겼지.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는데다가 기운이 쭉 빠져서 처져 있었어. 초조한 마음으로 구급차에 올라 탔는데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찾느라 조금 대기를 했어. 그러는 사이 네가 또 다시 차 안에서 구토를 했어. 너무 놀라고 죄송했지만 구급대원분께서 침착하고 빠르게 뒷처리를 도와주셨어. 다행히 구급차 내부에 비닐과 휴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더 깨끗하게 처리를 해야할 것 같아 내가 챙겨온 가방에 있는 물티슈로 차량 내부를 한 번 더 닦겠다고 했지. 정신없이 수습하는 사이에 차는 출발했고 아주 잠시 안정을 찾았어. 그때 네가 말했지.

손도 닦아주세요.

이거(물티슈)로요.

구토를 하고도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안겨만 있던 네가 내뱉은 소리라 얼른 반응을 하면서도 동시에 평소에 깔끔 떠는 네 성격이 이런 와중에도 빛을 발하는 구나 싶어서 살짝 웃음이 나더라. 다행인 건 구급차 안에서 두 번째 구토를 하고 병원에 도착할 때쯤 되니까 네가 좀 생기가 도는 것 같은 거야. 그제서야 '혹시 체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같은 날 머리로 세게 넘어졌던 건 사실이니까 검사는 받아봐야 할 것 같아서 상황 설명을 하니 CT를 찍자고 하시더라고.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이상 소견 없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조금은 민망한 상황이 되었지만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한시름 놓이더라. 너도 낯선 병원 모습이 궁금했는지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어 하고, 까부는 모습을 보니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았고 말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병원을 나오니 배가 고픈 거야. 병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설렁탕을 맛있게 비우고 나왔어.

그날 밤 너를 재우고 한숨 돌린 아빠와 엄마는 식탁에 앉았어. 구급차에 같이 타지 못한 아빠에게 네가 차 안에서 토를 해서 다급하게 치우고 나니까 네가 자기 손을 물티슈로 콕 집어서 닦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빠가 크게 웃는 거야. 감기가 잘 낫지 않아 평소에 가던 동네 소아과가 아닌 다른 소아과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진료실을 나오면서는 '여긴 비타민 없어요?'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 그러고보니 네가 말 못하는 아기였을 때는 마트에서 계산을 해주시던 직원 분께서 귀엽다고 손등에 작은 뽀로로 도장을 찍어주셨는데, 너는 도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반대쪽 손까지 내밀어서 큰 웃음을 준 적도 있었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또 그걸 즉각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 같아 신기한 우리 아가. 조금씩 커 가며 눈치와 분위기에 못하는 말도 많아지겠지만 할 말은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너의 한 마디에 온세상에 환해지는 듯한 이 느낌을 이 세상 모두가 경험했으면.

국밥 먹고 나와서 폴리 만났다고 사진 찍어달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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