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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마리

by 즐겁고도이상한

아는 단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오늘은 또 네가 어떤 말을 내뱉을까' 하며 기대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어. 그런데 네가 아는 만큼 너의 말이 따라가지 못했나봐. 아직 아기인 탓에, 아니 아기일 때에만 할 수 있는 귀여운 발음들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지.

주로 자음의 위치를 바꿔서 말하는 식이었는데, '거북이'를 '버국이'라고 한다든지, '뜨거워'를 '뜨워거'라고 한다든지 말이야. 소방서 앞을 지나면서는 신이난 듯 '소간방'이라고 외치기도 했었어(소방관을 알다니!). 또 시골 할머니댁에 오래 머물던 때에는 엄마랑 아빠도 실물로는 오랜만에 보는 곤충들이 정말 많았거든. 마당에 나타난 사마귀를 같이 바라보며 '사마귀!' 하고 알려주면 너는 '사마미!' 했고, '나비!' 하고 알려주면 너는 '마비~ 마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거야. 눈앞에 살아 움직있는 생물들의 이름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불러주는 너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몰라.


내가 기록하지 못해서 지나치고 만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쉽고 또 아쉬워. 그중에서도 이제는 듣지 못해 가장 아쉬운 말을 꼽으라면 바로 '동그마리'야. 처음 네가 '동그마리'라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었을 때 너는 카시트에 앉아 내 팩트(화장품)를 손에 쥐고 있었어. 동그란 그게 동그라미라고, 그걸 내가 알고 있다고 뽐내는 듯 웃으며 내 반응을 기다리는 너를 바라보는데 그야말로 심쿵했지 뭐야. 그런데 잠깐.


동그마리?


동그라미가 아니라 동그마리라고? 거기서 또 한 번 심쿵.
내가 '동그라~미' 하면 너는 '동그마~리' 하고, 다시 한 번 내가 '동그라~미' 하면 너는 또 '동그마~리' 하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동그라미와 동그마리를 주고 받으며 드라이브했던 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거야.


어느새 훌쩍 자라 "동그라미는 원이고, 세모는 삼각형이고 네모는 사각형이지요?" 하고 동그란 눈으로 묻는 네가 여기 있어. 여전히 아기인 우리 딸. 세상의 모든 동그마리만큼 사랑해.


그래도 '메뚜라미'는 좀 너무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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