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러 가는 날은 전날부터 마음이 싱숭생숭, 심란하다. 왜냐하면 간혹 대중매체를 통해 들어온 요양원 소식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2년 전에는 물증은 없으나 심증이 가는 사건(?)도 있었기에...
코로나가 한창 극성이던 2년 전 2월, 우리 가족 모두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희한하게 가족 중 남자들은 음성반응이 나와서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나는 회사 대표가 마련해 준 원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동생네는 동생과 두 딸들이 집 안 각자의 방에서 카톡대화로 시간을 조정하여 서로 마주치지 않으며 일주일을 보냈고, 다수의 감염자에 밀린 제부와 막내 조카는 집을 나와 모텔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문제는 엄마까지 양성반응이 나왔는데 가족들이 엄마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비감염자인 가족이 감염 가족을 보살필 수 없었을뿐더러, 나와 동생도 격리된 상태인지라 보건소에서 지정해 준 요양원에서 엄마는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일주일을 보낸 후, 제일 먼저 우리 가족은 엄마가 수용된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요양원 정문에 나타난 엄마를 본 순간 우리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망연자실' 그 자체로 굳어버렸다.
분명 엄마는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 요양원으로 들어갔었는데 휠체어에 앉은 저 꾀죄죄한 할머니는 누구지? 결벽증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깨끗하던 엄마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꼼짝 못 하고 서 있는 우리와 달리 엄마는 반가움의 눈빛을 쏘며 팔을 허우적이고 있었다.
엄마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동생과 나 대신 아이들이 먼저 달려가 휠체어에 앉은 엄마를 안아서 차로 옮겨 태웠다.
자원봉사자인듯한 젊은이 두 명이 엄마가 차에 타는 것을 도와주며 처음에 가지고 들어갔던 옷가지는 모두 태웠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엄마의 볼품 없어진 행색이 마치 그들 탓인 것처럼 제대로 대답도 안 하고 집으로 왔다.
환자는 넘치고 수용자는 많아 일손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을 거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속상했다. 세수도 제대로 안 한 듯 얼굴 여기저기 얼룩덜룩 땟국물이 고여 마른 게 보이고, 머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감은 것처럼 짓눌려 떡져있고, 손끝마저 꼬질꼬질 거기에 풍기는 냄새까지. 겉옷 한, 두 겹만 더 걸쳤다면 노숙인으로 오해할 만한 모습의 엄마를 집에 오자마자 목욕부터 시키려고 겉옷을 벗기려는 순간, 엄마의 손이 자연스럽게 얼굴과 머리를 가리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누군가에게 맞기 직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동작!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조그만 노인네를 어디 손댈 데가 있다고...'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엄마에게 들은 것도 아닌, 게다가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환자의 말을 누가 믿고 들어 줄 것인가? 그야말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가슴은 아프지만 묻어두기로 했다.
한동안 엄마는 누군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때마다 무너지는 가슴 한편엔 분노와 요양시설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
그런 이유로 가족들이 엄마의 불편함을 알면서도 요양원 입소를 꺼렸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고르고 고른 요양원이라고 해도 엄마에게 가는 길은 자연히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설렘의 두근거림이 아니라 불안한 두근거림이었다. 전과 같은 상황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고, 뉴스에선 환자를 학대하는 요양보호시설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며칠 전엔 동생에게 이런 전화를 받았었다.
"언니, 엄마 머리 짧게 잘랐어. 나름 괜찮긴 해서 사진도 찍었는데 아무래도 보면 속상할 까봐 나만 볼게. 언니는 그냥 직접 가서 봐."
길게 설명하지 않고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동생도 생전 처음 접하는 엄마의 헤어스타일에 놀란 것 같은 눈치였다.
대충 짐작은 된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보살피려니 부득이한 상황일 거라고 또 이해하려 하지만... 그렇지만,
불현듯 머리를 짧게 깎인 포로들 사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권과 개성이 철저히 무시된 채 바짝 깎인 머리로 가시덤불 철창 안의 멍한 눈의 포로들, 거기에 엄마 얼굴이 오버랩되어 나를 괴롭혔다.
휴~~~! 일단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뿜었다. 내 예상을 뒤엎고 엄마는 도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탄절이 다가와서인지 붉은색 모자를 쓰고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나를 맞았다.
아~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항상 그랬듯이 반가움을 눈으로 먼저 말한다. 만세한 두 손이 휠체어보다 먼저 나에게 달려온다. 나도 달려가 엄마의 두 손을 맞잡았다.
"엄마 왜 이렇게 이뻐졌어?"
"한 분 한 분 케어해드리기가 어려워 한 달에 한 번씩 자원봉사 오시는 미용사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다행히 어머님은 커트가 잘 어울리시네요. 모자 벗으면 오드리 헵번 같은데 보실래요?"
엄마의 짧은 머리에 내가 맘 상할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휠체어를 밀어준 직원이 좋게 말씀을 해주셨다.
"아니 괜찮습니다. 엄마가 안 벗는 걸 보니 모자가 맘에 드나 봐요."
사실 나는 아직 엄머의 짧게 깎인 머리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오드리 헵번과의 만남은 다음번으로 미루고 엄마의 손이며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씻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엄마를 보니 며칠 동안 애태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내가 엄마를 여기저기 살펴보는 사이 직원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 두 잔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아준다.
"고맙습니다. 저희 엄마 깨끗하게 보살펴 주셔서."
"어머님이 워낙 깔끔하셨었나 봐요. 시간만 나면 세수를 하세요."
"아이고 그럼 번거로우시겠어요?"
"저희도 깨끗하면 좋지요. 말씀 나누세요."
직원이 돌아가자 나는 엄마에게 접선하는 스파이처럼 주위를 둘러본 후, 조용히 물었다.
"엄마 여기 사람들이 잘해줘?"
"선생님들이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청소도 다 해준다."
"그래서 여기 있는 거 좋아?"
"응, 좋아. 너도 와서 살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손을 가늘게 떨며 엄마는 종이컵을 겨우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스파이를 회유하듯 내게 넌지시 묻는다. 내게도 와서 살라고 하는 걸 보면 엄마는 요양원이 무척 마음에 든 것 같다.
"내가 들어오면 우리 식구 다 같이 와야 하는데 그럼 선생님들이 힘들지. 방도 있을지 모르겠고..."
엄마가 편하게 지낸다는 걸 알고 나니 의심 덩어리가 풀어져 농담이 나왔다.
"그러네...."
엄마는 미처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던 엄마는 졸음이 오는지 슬그머니 눈을 감더니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맘때가 낮잠 자는 시간이라고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하더니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선 미리 걱정부터 앞세워 몇 날 며칠 끙끙댔던 게 부끄러웠다. 마치 코끼리 다리 한쪽만 보고 전부를 본 것처럼 생각했으니.
물론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이 있겠지만, 전국의 모든 요양시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돌아오는 길엔 엄마에게 '오드리 헵번'이란 별명을 지어준 직원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두 손을 맞잡고 나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다.(내가 괜찮은 후에 다른 이들이 보이는 이기심의 발로였을 망정.)
'모든 요양 시설의 환자들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