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드라마 ‘더 글로리’ 보다가 (사회정의와 깨어진 영혼)

한편의 드라마가 요사이 시쳇말로 ‘핫’하다. 글로벌 OTT 네플릭스가 방영하고 있는 ‘더 글로리’다. 지인이 연말연시 하루를 온전히 반납하고 봤다며 몇 번을 추천하기에 못이기는 척하며 본 드라마는 사뭇 나에게도 또 다른 감흥을 가져 왔다.

 

개인적 경험으로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로 불공정한 사회 구조와 제도, 계층 고착화, 양극화, 부의 세습과 집중, 부의 집중이 만들어낸 다양한 갑질(단순 폭력 행사뿐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을에 입장에 있어 목숨까지 내놓아야하는 환경이 당연시 되는 것까지 갑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그 피해를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다수 을들의 묘하게 뒤엉킨 울분과 일방적 피해, 이를 제대로 단죄하거나 사전에 예방 및 차단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제도의 불성실한 역할(권력 우위에 있는 한쪽의 편이라는 인식)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20년간의 준비를 거쳐 자신에게 가해한 이들에게 복수한다는 일명 복수극인 이 드라마에 왜 많은 시청자들은 이토록 매혹 당하고 있는가 생각해 봤다.

 

솔직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작가의 열렬한 팬인 적도 없고, 이전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보는 내내 나조차 놀랄 정도의 심한 몰입을 하고 말았다. 아마도 나 또한 비슷한 폭력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땅콩회항’이라 불리던 사건 같은 막강 갑질 폭력과 재벌 기업(기득권 세력)과의 싸움 같은 것을 경험해 본 이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의 공분과 공감을 얻었을까.

 

겪어야 하는 강도와 내용 그리고 종류가 다를 뿐 이런 유의 폭력이 실제로 사회곳곳에 난무하고 있고 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매일을 다수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학교 폭력을 주제로 했지만 계층 세습과 양극화, 불평등의 일상화 그리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정의(법과 제도)의 작동에 대한 묘사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더라도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은 또 아닐까.

 

누군가의 잔인한 폭력은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피해자에게 깨어진 영혼을 평생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인들은 사건 피해자들이 이후에 살아가야할 다음의 삶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런 폭력(갑질)은 처음부터 발생되지 못하도록 사회 제도를 통해 강력하게 징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나마 또 다른 다음의 피해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이런 정의로운 혹은 더 공정한 사회제도의 작동은 항상 요원하거나 부족하기만 하다고 느껴진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미 기득권력이 계층과 사람들 사이의 서로 봐주기 카르텔과 보호막은 겹겹이 작동하지만, 거기에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작은 보호막도 쉽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 영역이 정치권력이 만든 제도와 법 그리고 이에 의해 발생된 사회제도와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은 정치의 바른 역할에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개인의 선도적 의식 혁명이나 양심, 선한의지 등에 기대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변수가 많다. 그렇기에 적어도 정치가 제역할을 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스템 정도는 제대로 작동되게 만들도록 끝임 없는 관심과 적극적 관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어느날 드라마를 보다가...


#더글로리 #드라마 #넷플릭스 #사회정의 #공정 #학폭 #복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