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쉴 수 있는 국가에 반대한다
지난달 21일 대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하루 13시간, 주 80시간을 일하던 마루시공 노동자가 건설현장 근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은 약 4개월간 제대로 된 휴식시간 없이 진행된 과도한 장시간 연속 노동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바로 과로사였다.
마루시공 노동자들은 아파트, 사무실, 공공시설을 비롯해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공간의 바닥을 시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매일 두발로 딛고 생활하는 마루라는 안정적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들, 마루시공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을 지탱해 줄 최소한의 안전망인 바닥마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도 최악의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과연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마루를 생산·시공하는 기업체 대다수는 마루시공 노동자들을 “3.3%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사업소득자”로 둔갑시키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 이렇게 속임수로 노동자들이 개인 사업자로 둔갑된 사이 마루시공 현장에서는 취약한 노동자가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인 근로기준법 적용마저 사라졌다. 근로기준법이 사라진 작업장에서는 더 이상 근로시간, 적정임금, 여러 노동환경 등과 관련된 최소한의 근로기준조차 지킬 필요가 없어졌고, 관리 감독의 기준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죽어야 쉴 수있는 장시간 연속 노동과 칼질이라고 불리는 관행화된 임금깍기와 임금체불 그리고 인변과 오물이 난무하는 불쾌한 작업현장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을까. 결국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가짜 3.3 사업장이 생겨나지 않도록 법제화하고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대통령이 등장한 시대에 살고 있고, 그 대통령의 정부가 노동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 69시간 노동을 법제화 하겠다고 하는 지경이다.
OECD 국가들 중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 최장 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가 이미 한국이다. 이제 이마저 세계 최고 국가가 되어보겠다는 심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과 정권이 그 토록 외치는 ‘자유와 법치’는 유독 노동자 계층을 향해서만은 제대로 작동 되지 않고, ‘억압과 편법’이 되고 있다.
우리들의 안전한 보호막이 되는 바닥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에게는 두 발을 내디딜 바닥조차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아이러니‘이다. 정치가 협치를 져버리고 대립적 공생 관계로 자기 몫만을 챙기고 있는 사이 수많은 민생의 문제가 외면되고 있고,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생사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대립이 아닌 협치를 통해 정부도 각 정치 세력들도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 활동은 있을 수 없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 권력에 실망한 국민이 등을 돌리는 순간, 더 이상 권력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