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4 경향신문 기고문>
홍콩, 그리고 한국 청년들
박창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습니다"
1996년, 대한항공에서 승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처음만난 홍콩의 풍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세기 말의 홍콩은 매력적인 문화와 발전한 경제의 도시였습니다. 오늘 날 한국 드라마와 가요 속 현장을 보러 세계의 한류 팬들이 한국을 찾는 것처럼, 청년 박창진은 홍콩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홍콩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2019년 11월 17일 밤, 저는 홍콩 청년들의 격렬한 저항과 경찰들의 폭력적인 진압을 그 거리에서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웠던 거리의 보도 블럭과 창문은 뜯겨져 있었고, 거리에서는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곳곳에는 ‘홍콩광복 시대혁명’ 등의 문구가 가득했습니다.
경찰에 의해 봉쇄된 지역이 많아 우회해야 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가까운 길을 두고 돌아 가던 중,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는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불렀고, 곧 작은 틈으로 다른 청년이 나왔습니다. 그 틈새로 음식과 물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곳이 2020년을 눈 앞에 둔 홍콩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제가 신입생이었던 1990년 대학가가 떠올랐습니다. 보도 블럭과 최루탄, 그리고 대학생과 경찰의 대치까지. 제가 홍콩에서 보고 있는 시위에 30년전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눈에 담을 겨를도 없이, 홍콩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가 퍼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청년이 마스크를 건내주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홍콩 시민들의 동지였습니다. 위험한 곳을 빠져나와 보니, 곳곳에서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시위대를 포위하는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경찰들은 시위하는 홍콩 시민들을 진압해야 할 범죄자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압박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수의 시위대는 곳곳에서 경찰에 의해 무력화 되고 있었습니다. 시위 기간 동안 수천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특히 대학교 내 시위대는 강경하게 진압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보도가 되었던 홍콩이공대의 경우, 시위대의 무사한 탈출을 위해 정치인 및 종교인들의 협상 시도가 있었으나 홍콩 경찰이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협상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선두의 시민들은 경찰의 물대포를 우산으로, 최루탄을 물로 씼으며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만든 틈을 통해 오토바이를 탄 청년들이 시위대를 안전하게 탈출시켰습니다. 하나가 된 공동체의 모습을 그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홍콩 경찰의 진압에 대부분의 청년이 체포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홍콩 경찰의 모습에서 인권보호는 이미 잊은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우려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홍콩 입법회 앞에서 만난 학생운동가 조슈아 웡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천 명이 체포되고 원인 규명이 명확하지 않은 죽음까지, 홍콩의 인권 유린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들을 언급하며, 홍콩의 시민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와 각 정당들이 홍콩의 인권 유린과 탄압의 상황에 더 이상 눈감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홍콩의 위기에 우리나라는 정부도 정치권도 그들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생명 존중과 인권 보호는 인류 보편의 가치입니다. 더 이상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명과 인권 침해를 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국회 앞에 섰습니다.
홍콩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에 대해 우리나라 국회의 외교적 역할은 없었습니다. 특정 국가와의 관계 때문에 인류 보편적 가치의 침해를 무시한다면, 우리가 비슷한 일을 당할 때 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요? 또한 연대와 지지 요청은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연대 및 동아시아에서의 평화 수호 역할을 우리나라가 맡아야 합니다. 이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해결과 동북아 평화 체제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홍콩 구의원 선거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홍콩 경찰의 강경진압이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홍콩 시민의 요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국회도 철저하게 자신들을 위한 투쟁은 멈추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시민들의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전환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연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