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Sep 08. 2021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7

각기 다른 시간을 달려 새벽6시에 만나다


새벽 6

나는 새벽기상을 하고, 남편은 밤새 친구들과 술을 먹고 어제부터 깨어있는 상태로 우리는 1층에서 마주쳤다.


———————————————————————————————————————————————————————-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아..더잘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서도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 고민한다.

그러나 몇달간 찬물 샤워 - 명상 - 따뜻한차 - 아침일기 - 독서의 새벽루틴을 하고있는 내 자신이 너무 뿌듯했기에,

그리고 그것이 나를 너무 활력있만들었기에 힘듦과 상관없이  몸은 일어나고 있었다.


명상을 하고 난 후는 정말 몸무게를 재고 싶을 정도로 내가 가벼워진 것만 같다.

복잡하던 내 머릿속도 간결해 진다. 이것 때문에 매일 5시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만, 즐거운거다.


남편 친구들은  갔나?…’

남편 취미생활인 연극은 팀과 함께 몇달동안 공연 준비를 했다.

그 공연이 어제 끝나기에 팀들과 함께 우리집에서 뒷풀이를 했다.

남편이 공연장 정리하고 늦게 우리집에 와도 되냐고 했을 때, 난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단, 내 새벽 일상에 방해가 안되도록 잘 치워주길 부탁했다.


1층으로 내려오니 식탁에는 어제 먹은 술들과 음식들로 너저분했다.

남편은 오늘 재택이라 내가 출근하면 치울것 같아서 치워져 있지 않은 것에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진한 양념들과 알콜 냄새까지 섞여 조금 역하길래 이 상태로 명상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거실옆에 내가 명상하는 방에 창문을 열려고 들어가니, 옷걸이에 못보던 옷들이 걸려있었다.

바닥에 가방들과 짐들도 있는 것을 보니 아직 가지 않은 친구들도 있는 것 같았다.

3층 다락방에서 놀다가 잠들었거나 한것 같다.


명상을 마쳤을 때 개운한 기분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명상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

명상이 끝나고 따뜻한 차 한잔을 우려내고, 원래는 식탁에서 아침 감사일기를 쓰지만

오늘은 식탁이 저렇게 어지러우니, 방에서 하기로 하고 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1층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남편이 내려왔다.

예상대로 아직 가지 않은 친구는 자고 있다고 했다.

“아이 등원 잘 시킬수 있겠어?”

남편은 그 얘기에 조금 기분이 상한듯 뭘 그런걸 걱정하냐고 대답했다.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방에서 다시 독서를 하고 있을 동안, 남편은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남편에게 몇시라고 정해주지 않아서 내가 필요한 시간이 치워지진 못했지만

치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밤새 술을 먹고 어지러운 정신상태에서도 치운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였다.


——————————————————————————————————————————————————————————————————————————


신혼집은  세개 있는 18평짜리 집이었다.

화장실은 현관에서 들어오면 보이는 하나다.

요즘 집들이야 방 3개면 으레 화장실 두개지만, 신혼집은 화장실 두개의 필요성을 못느꼈던 시대에 지어졌던 옛날 아파트였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을 보니 못보던 신발이 있었다.

우리는 신발이 두켤레 인데, 어느새 세켤레가 되어있는 현관이라니.


남편에게 신발이 있던데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어제 회사 동생이랑 술을 먹었는데, 집에 데려와서 재웠다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전에 제일 작은 방에 손님방으로 내가 자취때 쓰던 침대가 있었는데, 그 방에서 잤던 것이었다.

세상에, 나는 아찔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발가벗은채로 나와 화장실에서 안방으로 와서 속옷을 입고,

속옷차림으로 건너편 옷방으로 넘어 갔다.


아니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건 두번째 문제였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 누가 온다는 것을 허락 받는것은 너무 당연한 상식이 아니던가.


“다음부터는 나한테 먼저 물어보고 데리고와. 씻고 나오는데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어?”

“왜? 내집인데 너한테 일일이 허락같은걸 받아야해?”


남편의 대답은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아 다시 얘기했다

“이건 우리가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남자여서 우리 둘이 같이 룸메이트로 산다고 해도,

  지켜줘야 하는거 아니야? 한사람이 그 날은 피곤해서 정말 편안히 혼자 쉬고 싶을 수도 있잖아”

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얘기해도 남편은 한결같이 내 집이니까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럼 니가 집에 있을 때는 피곤할수도 있고 사람 보기 그렇다 치자. 네가 집을 비울때도 상관이 있어?”


그렇다. 그는 내가 없을 때는 나한테 이야기 하지 않고 불러서 논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나에겐 당연히 상대에게 물어보고 양해를 구하는게 상식인데,

그에겐 마음대로 사람을 불러도 된다는게 상식일수 있다는 사실에 난 더 충격을 받았다.


하긴, 우린 다른 부부들처럼 우리 동선에 대해 시시콜콜 서로 보고하며 다니진 않았다.

예를 들면, 오늘 약속있어 늦어. 정도로 얘기하지 누구와 어디서 만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늦는다는 말조차 서로 안하는 날이 많은 우리였다.


절대적인 대화부족하면, 저런 정보를 주는 것도 생략 해야 당연한 건가?

이런 배려가 그에게 그렇게 어려운것인지,

이런 배려를 전혀 몰랐다고 쳐도, 상대가 불쾌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따라줄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굽히지 않는 그를 보며

언제나 그랬었듯 또 다시 이혼에 대해 생각한 터였다.


아무리 고집이 센 남편이지만, 이런걸로 한번 싸웠는데 내가 있을 때는 다시 똑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출장가거나 집을 비웠을 때, 나에게 얘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데려와서 술을 마시곤 하는것 같았다.


다 가고 나면 내가 못알아차리게라도 깨끗이 치워놓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했다.

나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지만, 또 싸우면서 감정을 상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지나치곤 했다.


———————————————————————————————————————————————————————————————————————-


모든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사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남편이 술자리를 좋아해서 먹을때마다 밤을 새서 먹는다거나,

아내인 나와 가정의 일 보다는 취미생활과 그 친구들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더 할애 하는 것 같은것 말이다.


상대방이 내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사회적 시선, 사회 기준의 상식에 대해 설명하고 주장하면 그 사람은 사태를 파악하고 부끄러워 하며 행동을 고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그는 상식의 정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법을 아주 달리 해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 생각이라면 말이다.


이 유명한 문장을 모두 알것이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다”

정말 엄청난 통찰이 담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배우자가 신의를 저버리는 습관을 가진 자이거나, 언어든 행동이든 폭력의 습관을 가진 자이거나,

도박을 하거나 이런 경우에 뒤도돌아보지 말고 빨리 손절하라는 단순한 진리를 물론 포함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는 아주 평범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난 남편을 바꿀수가 없었다.

남편의 상식은 나의 안전하고 편한 생활을 위협한다고 느꼈기에 너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 사람의 상식을 비난했고, 부끄러워하길 바랬고, 그리고 바뀌길 바랬지만 그는 여전히 그대로의 그였다.


우리가 카톡으로 많이 싸우다  보니 장문 카톡을 보내게 된다.

남편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반박하기 위해 카톡에 그렇게 일도 못하고 정성을 들여 4-5시간을 카톡을 적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쓰면서 스트레스 받는 나를 보다가 문득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나를 바꾸는게 더 쉽겠다.”


그사람을 바꾸려는 그 스트레스와 부정적 에너지를 나에게 쏟으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냥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건 어떨까? 정말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면?


그럼 그는 그대로 라도 난 내게 만족스럽지 않을까?


나의 만족에 주의를 돌리는것이 나에게,  인생에 훨씬 더 중요   같았다.


난 결혼 후 5년이 넘어서야 상대방을 바꿔서 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나의 생각방식과 관념을 바꾸어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남편의 변하지 않은 많은것 보다, 변한 조그마한 것들에 주목하고 고마워하는 이유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 뿐만 아니라, 나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스스로 칭찬하고 고마워한다.


결혼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을 위해 산다는건 결국 내가 해준만큼의 바람도 있게 되고 그런 바람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는 지쳐 놓아버리게 된다.


결국 내가 혼자서도 잘사는 사람이어야, 같이도 잘 살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결혼을 대하는 자세의 큰 변화였다.

결혼해서 불행해서 내가 불행해. 가 아닌, 내가 불행하니 결혼해도 불행하네? 왜그렇지?

이유를 하나 둘 찾아보게 된것이다.


새벽 6시에 각기 다른 시간을 달려온 우리는, 따로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진 같이 ‘잘’ 살기까지는 아니고 ‘그냥’ 평범히 살고 있다.




ps.결혼하지 않은 누군가가 이글을 읽고, 결혼을 하면 관계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구나. 라고 잘못 이해 될까봐 추가로 말씀드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지만, 타인, 배우자를 대할 때 성숙한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난 다만 성숙하지 못한 나에게 있어(남편도 역시) 결혼이라는 극도로 힘든 상황이 성숙한 사고를 하게 만든 배경이라는 것을 설명했을 뿐

      모두가 결혼을 해야  결론에 도달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

작가의 이전글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