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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May 13. 2022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8

잡았다 네가 술래야

남편은 나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싸우면 이혼해야 하나? 그럴거였으면 우리는 진작 이혼을 했어야 했다.


난 싸움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서로의 감정 상태의 변화에 대해 되짚어가며 찬찬히 들여다보고 서로 사과할 것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지하려고 했으나, 그에겐 이 싸움이 일어난 원인같은건 중요하지 않았다.


본인 앞에서 ‘내가 언성을 높였으며, 더욱이 그것이 다른 사람들 앞이라 자신을 바닥까지 짓밟고 개망신을 줬다.’ 고 말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건 결혼을 유지할수 없는 성격차이 이며, 이혼의 중대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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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작년에 이어 '22년인 올해도 꾸준히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했다라는건, 주중 저녁, 주말은 오전 10시에 나가 사실상 저녁이후 뒷풀이 까지 하는 스케쥴을 한다는 뜻이었으며, 사실상 공연이 다가오면 그 횟수가 느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아무리 아마추어 공연이지만, 지인들을 초대한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팀원들끼리 완성도에 집착하게 되는걸 나도 동호회 생활하며 겪어 봐서 알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 한다.


연극을 하는 동호회의 특성상 주말연습과 연습시간이 매우 길기때문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대부분은 동호회을 못햇고 그러다보면 멀어졌다. 그러나 이 취미 생활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나 유일한 취미가 연기를 하는 사람이었을때, 그걸 끊는다는건 너무 괴로운 일이기에, 아이 육아 때문에 한정된 시간에 참석해야 됨을 사전에 알리고, 연출진이 동의하에 활동하는 회원들 또한 많다.

추가 연습을 잡거나 할때 힘이 든건 사실이지만, 제 역할을 충실히만 한다면 단언컨대 육아에 대해 최선을 하면서 취미활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칭찬을 했을지언정 뒤에서 욕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의 역할을 넘어서 완성도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 예를 들면 무대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조명을 고민하고, 의상을 체크하고, 심지어 팀원들과의 유대를 위한 술자리까지 모든 순간에 참가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을 못 미더워했다. 실제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을때의 결과물은 생각도 하기 싫어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까. '다른 사람들은 신경을 잘 안쓴다'. '잘 모르면서 말만하고 잘난체만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한다'. 라고 했다.


그 기간에 육아에 좀 더 신경을 써달라 하거나, 매일 저녁 아들과 둘이 저녁을 먹고 둘이 잠자리에 드는것에 지친내가 지친 기색이라도 내면

"내가 잘못한 것이없고, 일주일에 한두번 아이를 보고 있는게 뭐가 문제라고 왜 육아를 안한다고 피해의식을 가지냐"고

싸움이 났기 때문에 내 스케쥴 때문에 무엇을 하나 부탁하는데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당신 생각에 제대로된 사람이면 결혼하고 이런 코로나 사태에 열댓명이 모여 연습을 하는데 있다가 집에 들어오는게 위험할텐데,

게다가 술을 저렇게 먹고 다니는게 하는게 말이 되냐. 며 만날때 마다 큰 소리로 남편에게 잔소리를 쏟아내셨다.

사실 어머님은 매주 아들과 손자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시는 분이라, 주말마다 집으로 오라고 하시거나, 혹은 우리집에 오시는데, 사실 남편을 잘 만날수가 없었다.

남편의 동생(나는 도련님이라 말이 어색해 삼촌이라 부른다) 삼촌은 그의 장모님댁이든 친가든 어른들을 자주 찾아가는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시어머니댁에서도 자주 만났고, 우리집에도 자주 놀러왔다.

아들이 삼촌과 숙모를 워낙 좋아했기에 나는 남편이 대부분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아들을 데리고 시댁에 가거나, 가족들 모두 우리집에서 모여 식사하는것이 좋았다.

결혼 초였고 아마 아들이 없었으면 이 상황을 그렇게 달갑게 받아들이진 않았을 거 같은데,

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를 너무 좋아했기에 나도 아들의 기분에 덩달아 기뻐했던거 같다.

결혼 7년차가 넘어가며 식구들과 교류가 잦고 많아지니 친분도 쌓이고 정도 쌓이면서 시댁 가족들과는 점점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오히려 멀리 사는 우리 친정가족들을 손님 대하듯 대하게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상적인 방문에도 그렇거니와 생일이나 가족 모임을 해야 할때 잡으려고 해도, 남편이 연습 일정이랑 겹치거나 하면 참석을 안하게될 곤란한 상황이 되면, 정확히 말해주는것이 아니라,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상황을 무시해버리는 적이 종종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이런점에 대해 굉장히 속상해 하셨는데, 나에게 "네가 잔소리를 좀 해라" 라던가, "도대체 언제 된다는거니?" 라고 나에게 물으셨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결혼 생활 6년까진 계속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나서서 일정을 또 따지고 확실하게 하자 하는 순간, 그가 짜증을 내며 행동이 무섭게 화낼 가능성이 클 것이란걸 알기때문이다.


나에게 물어도 어쩔수 없다는걸 아신 이후로는 주로 가족모임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어머님이 아들과 직접 연락을 하시고, 잔소리는 덤으로 하셨는데 주로 동호회 활동을 하는것에 관한 것이었다. 삼촌 또한 가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형은 참 이해가 안된다.’ 고 그런 생활이 옳지않다고 매번 말해오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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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 6개월간 준비 했던 것이 취소가 되면서, 올해 다시 공연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남편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인생 캐릭터, 인생 작품이기 때문에 이것을 놓칠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결혼 전부터 결혼 후까지 했던 활동들을 돌이켜 보면 그에게 열정적이지 않았던 활동은 없었던것 같다.


남편은 이 공연날짜가 다가오면서, 별안간 이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배우자인 나에게 직접적으로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 그만두고 어떤걸 더 하고 싶은건지 얘기 한적은 없었다. 나도 동호회에 지인들이 있는지라  "내 마지막 공연이니 꼭 와달라"고 했다는것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활동을 열정적으로 했기에 지금 공연 준비가 다른 공연 보다 더 애정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그의 활동만 보고 알수는 없었지만, 술을 먹고싶은 마음은 여느 공연과 비슷한것은 확실한것 같다.


술을 먹고 싶은 마음도 마음이지만 집에 초대해서 맘껏 노는 자리를 마련 했다. 는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는거 같았다.

코로나 상황이라 시간 제한도 있었고, 제한 인원보다 많아져서 몇명단위로 찢어져서 먹다보면 전체로 얘기를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연습 후에도 뒷풀이를 우리집에서 하곤 했다.


사실 놀러 왔다 간 후 집을 치우는것에 대해 남편이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음식물이 덕지덕지 붙은싱크대나, 끈적한 식탁과 바닥등을 내가 치우는것이라던가, 전자레인지에 감자탕을 끓이다가 넘쳐 국물이 말라 붙어있다던가, 아직 분리수거를 안해 올려져 있는 술병과 그릇들을 치우는것을 그리 개의치 않았다.


나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좋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기분 좋아할 일들이 뭐가 있을까 또 생각하다가,  공연이 끝나면 당연히 뒷풀이를 하고싶어 할꺼 같아서 물었다.

“공연 끝나고 뒷풀이 어디서 해?”

남편은 조금 곤란함과 미안함이 섞인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얘길했다

“우리집에서 하면 안돼? 우리 집에서 한다고 이미 얘기를 했는데.. 어쩌지..”


이미 얘길 했다는 걸 듣고, 그럴줄 예상은 했었지만 서운한 마음에 한숨이 난것은 어쩔수 없었다.


내가 물어본 것은 이미 그 날에 자리 비켜줄겸 아들과 호캉스를 가볼까 하고 예약 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기 때문이다.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이왕 하는거 기분 좋으라고  기분 좋게 말했다.

“아 우리가 그날 호텔에가서 하룻밤 잘게, 재미있게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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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이틀전, 그가 마지막 공연이라고 시댁 식구들까지 다 초대한것을 알았다. 물론, 마지막 공연이란 말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난 그가 그렇게까지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다닌걸 보면, 부모님께 듣는 잔소리들, 그리고 육아에서 오는 압박들은 소년과 같은 마음으로 무대가 좋아서 사람들이 인정해주는게 좋아서 취미생활하고 있는 그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압박이고 매우 속상 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커피차 라고 부르는 연예인들 촬영 현장에 스텝과 동료배우들 마시라고 조공 해주는 이벤트도 해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공연날 아침, 커피차를 부르고 배우들과 스텝들 음료와 다과를 챙겨준 나에게, 그는 쑥쓰러워하며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그날 공연을 보러 시부모님뿐만아니라 임신한 시동서까지 모두 출동했다. 나는 시부모님과 동서네에 저녁을 대접했다. 남편은 공연 후 다음날 공연을 위해 할일들이 남아있었기에 저녁에 함께 하지는 못했다.


난 그가 당연히 안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라면, 내가 못가니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어주면 좋겠다던가, 임신한 동서까지 왔는데 감사하다고 전해달라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결혼생활 내내, 내 생각을 상식선이라 생각하고 그것과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요구도해보고, 나도 화도 내봤지만 그 결과, 그는 큰 싸움이 되었고, 격해진 그는 막말을 해댔기 때문에, 난 결혼 생활 후 상식이란 개념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어? 이건 당연히 좀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란 생각이 들때 내 안에 내가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고 자기 검열을 끊임없이 했고 잘해왔다 생각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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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이 된 아들과의 호캉스는 정말 재미있었다.

기찻길이 보이는 방을 일부러 예약했는데, 기차를 낮에도보고 밤에도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창가에 누워서도 봤다. 수영장을 너무 좋아하는 아들은 이번에 사준 구명조끼로 배영하는 법을 알았다며 실컷 놀았다.

평소에는 못먹게 하는 맛있는 과자와 탄산음료를 편의점에서 사와서 실컷 먹으면서 같이 깔깔웃으며 만화 영화도 보았다.

다만, 수영장같이 탈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7살 남자아이와 같이 들어갈수 없었는데, 잠깐 사이지만 케어해주는 직원에게 맡겨야 했다. 하지만 수영장에 갈때 아빠와 거의 같이 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놀랍거나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다음날 호텔에서 바로 등원을 하려 했는데, 주말사이 유치원 친구들 중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검사를 하고 유치원에 가야 했는데다, 마침 유치원 가방을 들고 오지 않아서 혹시 유치원 가방을 들고 와줄수 있을까 해서 아이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옆에 남편은 같은 공연팀 사람들이자, 나의 지인이기도 한 오빠와 같이 전화를 받았다.

공연 후 우리집에서 가져간 소품을 모르고 폐기 처리 한 얘기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다가 물었다.

“오늘 휴가야?”

“아니 오늘 반차야. 오후에 회사 갈거야”


병원 문을 여는 9시에 딱 맞춰 가려니 간만에 호캉스인데 너무 서두르는거 같아, 느긋이 검사 받고 어차피 등원하려니 가방가지러 집까지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을 버려느니 유치원 등원 하지 않고 그날 하루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호텔 옆 쇼핑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음성확인서를 받은 후, 매주 월요일 5시반은 아이 미술학원 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오랜만에 키즈까페에 가서 신나게 같이 뛰어놀다가 수업을 갔다.


아이키우는 부모라면 모두공감하겠지만, 아이와 같이 있는것이 너무 행복하지만 하루종일 아이와 비슷한 에너지 상태로 움직이고 말하는 것은 너무 피곤하기도 했다.


아이 학원이 6시반에 마치기에 저녁까지 먹고 들어갈까 생각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일단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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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자 낯선 신발들이 보였다. 이모님이 나오시면서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버님 친구들이 다락방에서 술마시고 계신거 같아요”


일요일 저녁에 와서 1박 2일로 놀러 간 공연팀 친구들이 월요일 7시에 아직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전 휴가만 냈다는 남편에게선 어떠한 연락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남편이 내려왔다.

눈이 충혈되고 풀려있는게 술이 많이 취한 모습이었다.

“아직 술 마시고 있다고?”


아무 연락이 없었던 것에 화가나긴 했지만 슬쩍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정리하고 가라고 해”

“응 가라고 할게”

남편은 긍정인지 뭔지 모르게 웅얼거리면서 손을 휘저으면서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이모님께 아이 목욕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아이가 목욕을 하는  30분 동안 너무 피곤했던 몸을 침대에 늬였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아이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깨서 나도 씻었다.


씻고 나왔을때는 벌써 들어온지 1시간이 넘어 갈때였다. 남편의 친구들은 아직 다락방에서 놀고 있었다.

카톡 메세지를 보냈다.

“자기야 가라고 한다고 하지 않았어? 애랑 나랑도 저녁먹고 쉬어야지;;;”

남편이 바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서 가라고 한다 그럼. 적당히 먹어야지 이게 뭐야.”

남편이 답장을 했다.

“아 일부러 옥상에 짱박혀있는디…”


남편은 아무래도 3층 다락방을 또 다른 차원의 세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았다.

“그건 우리집 아니야?”


목욕을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은 아이가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자 “아빤가?” 하면서 반가워서 뛰쳐 올라갔다.


그러자 그가 같이 공연한 동생이자 나의 지인이기도 한 동생이 아이 손을 잡고 내려오면서

“엄마랑 있어~”

하면서 아이를 방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나도 아는 동생이니 내가 이제 그만 먹고 정리하고 가라고 하려고 문을 다시 열었는데, 그녀는 내가 문을 열려고 하자 열리는 문을 꽉붙들고 못열게 했다.


난데없는 힘겨루기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살짝 웃었던거 같다. 어찌어찌 문을 열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

“적당히 하고 이제 정리하고 가”

그런데 말하면서 어째 얼굴을 보니 만취상태라는 걸 알수 있었다.(나 또한 몇년전 그녀와 같은 공연을 준비한적이 있어 술을 종종 마셨기에 그녀의 만취상태가 어떤것인지 잘 안다)


말이 안통한다는 걸 알고 난 정말 직접 말해야 겠다 생각했다.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손님들~ 이제 영업 끝났어요~~ 정리해주세요~”

이때까지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락방 방문앞에 섰을때, 남편은 방에 누워있었고, 술에 취해 충혈되고 점이 흐트러진 눈을 애써 붙들면서까지 나를 죽일듯이 노려봤다.

나는 계속 말했다.

“여기 있는것도 깨끗이 치워주고 가세요. 제가 나중에 치우려면 힘들어서요~”

남편은 계속 누운상태로 나를 노려봤다.

놀러와있던 친구들도 내가 올라오기까지 하자, 그제서야 내가 이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걸 알았는지 급하게 정리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그래도 그가 공연 하면서 열정적으로 하는것에 내가 서포트 했던것들, 이해하고 배려하려 했던 내가 매우 바보같이 느꼈졌다. 이건 서운함을 넘어선 어떤 감정이었다. 결국 남편에게 매우 격앙된 말투로 말했다.

“너는 네가 지금 너무 잘해서 그렇게 잘 노려보고 있는거야? 내가 두번이나 정리하라고 부탁 했자나!!”


같이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더욱 정리를 서둘렀다. 아마 친구들은 내가 이 집에서 술 그만 먹고 나가줬으면 한다는 그 말을 전달 받지 못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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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후 그는 내가 남편에게 언성을 높힌것을 두고

“너는 성질을 당장 분이 풀릴만큼 부려야 속이 시원하지. 사람을 바닥까지 짓밟고 개망신을 줬어. 사람이 있던 없던 안하무인 성질을 부려야 하는 그 성격을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  며 도저히 못살겠다고 했다.


사람마다 참는것에 한계가 있는 법이고 감정이 단계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그건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법석을 부린것도 아닌데, 남편의 눈에 그것을 안하무인 성질을 부린다고 받아들였고, 자신이 깔아뭉개졌다고 느꼈다.


그냥 상식적으로 전체 맥락을 보면 남편이 한 행동 자체가 안하무인인것 아닌가 싶지만, 잘못의 화살은 나에게 돌아와 있었다.


매우 이상한 상황 같지만, 남편과의 싸움의 패턴은 항상 이러했다. 싸움의 과정에서 남편이 욕설이나 모욕적인 발언은 매번 했는데, 그걸 견디지 못한 내가 화를 내면, 결국 그 싸움은 내 잘못으로 끝이났다.


나도 마냥 순한 성격은 아닌지라 처음에는 욕에는 욕으로 받아치겠다고 똑같은 욕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싸움의 끝에 나는 욕한 사람이 되었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분명 내가 비중있게 하고 있는데도, 내가 어떤 부분을 해주기를 요구하면, 육아를 해야 할 사람은 당연히 나인데, 할일을 안하고 남에게 미루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 다른 주제로 싸웠지만, 결론은 결국 하나였다. 내가 모든 잘못을 한것이다.

결혼 내내 싸울때 마다 남편의 욕설과 인신공격적인 모욕적인 말들을 듣는것도 내 정신을 흔들어 놓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꼴로는 싸웠고 그 기간이 2주가 넘어간적이 많았다) 어떤 사건에서 내가 모든 잘못을 했다는 결론을 수도 없이 들어왔던 나는 점점 나를 의심 하기 시작했다.

‘맞아 남편 말대로 내가 뭔가 이상해. 잘못을 한거 같아.’

한번은 남편이 싸우던 도중 나에게 정신병이 있는거 같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기에, 난 정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소를 가다 말다를 반복했고, 자존감은 계속 낮아지는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싸움이 안될것들이 계속 싸움이 되었고, 무슨 일이든 결론은 내 잘못이었다.


좀 단단해진것 같은 내 마음은 이번 일에 대책없이 또 무너지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와 구글링을 하다 한 책을 알게되었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경계성 성격장애로부터 내 삶 지키기”

그 책을 읽으면서 경계성 성격장애의 모든 모습이 남편에게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자기검열을 하고,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되지 생각하고 가만히 있거나, 그가 지적한 행동에 대해 내 생각과 상관없이 미안하다고 하거나, 아니면 그의 막말이나 폭언을 없던것 처럼 무시하는 모든 내 행동은 경계성 성격장애의 ‘투사(나쁜 것은 전부 바깥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전가하는 행동) 행동을 더 부추길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더군다나 그에게 나의 아픈 감정에 대해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임을 이제야 안것이다.


이런 인격장애 진단을 내가 멋대로 판단 내릴 수 있는것은 아니고 내려서도 안되지만, 나의 정신이 건강하지 않는 지금 순간 나는 적어도 내 마음과 정신을 지키겠다 생각했다.

설사 그가 경계성 성격장애까진 아니라 한들, 장기적으로 우리 사이에 나쁠거 같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그래도 같이 지내보려고 노력할까? 헤어지면 그만 아닌가? 그냥 그가 병이 있든 없든 이 관계를 끊고 헤어지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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