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회색은 애매한 색이다.
검정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 머문다.
보통 회색 같은 인생을 보면 이런 말을 한다.
우유부단하다, 개성이 없다, 결정하지 못했다.
확실하지 않은 태도, 흐릿한 입장
원색이 아닌 섞여서 나오는 색.
어딘가에서 파생된 것 같은 느낌
회색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반된 두 존재의 사이
흰색이 조금 물러났거나
검정이 완전히 밀어붙이지 못했을 때
그사이에서 생긴다.
그래서 회색에는 주장이 없다.
굳이 자신의 명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배경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회색은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선택 뒤 남은색에 가깝다.
검정으로 가보기도 했고
흰색을 믿어보기도 했다.
분명한 답을 택해봤고
확신에 기대어 결정을 내려봤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언제나 명쾌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의 색
그래서인지 더 이상 극단으로 머물지 않고
중간으로 남는다.
회색은 무능해서 머무는 게 아니라 지쳐서 머무는 색이다
어릴 땐 선명하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고
좋고 싫음이 확실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하나로 정립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해진다.
선택은 늘어났는데
확신은 줄어간다.
그래서 인생은 점점 회색이 된다.
실패라기 보단 과정의 모든 걸 뚜렷하게 믿고
살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한 색이었으니.
그런대로 눈에 띄지 않는 삶임에도
이런 묻어가는 애매함이 개성으로
배경이 되고 기본이 되고
무난하다는 이유로 쓰임 받는다.
인생도 그렇다
주연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조연처럼 조용히 남아 장면을 지탱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빈자리가 되진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