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에 대해서
나는 아직 묻는 중이다.
**잠언 1: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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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기독교인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 구절을 꺼내 든 이유도 그래서다.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묻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머리로 이해한 부분도 있지만, 살아가며 그분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아니다. 천주교, 불교, 뉴에이지 영성, 철학, 물리학, 초능력, 미신까지 세상의 여러 것들을 찍먹해왔다. 지금도 '무엇이 바른 길일까'를 묻고 있다. 뭐가 진실일까 궁금해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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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관심사와 인류에 대한 궁금증, 때로는 오지랖처럼 보이는 관심을 가지며 그토록 방황한 이유는 단 하나, 제대로 나의 삶을 걸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제대로라는 것은 뭘까. 이것도 정의가 애매하다.
어쨌든 바른 길로 가고자 한 건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정말 평생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고, 더 이상 방황 없이 평온함과 안식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나는 나 자신조차 잘 모른다.
인생이라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을 찾아 더듬어가듯 살았다. 이 과정에서 마음속에 수없이 많은 내적 갈등을 느꼈고, 이 길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막막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지금도 있다.
이 불안함은 확신과 정답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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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교와 가설이 있지만 뭐가 세상의 답인지 여전히 모른다. 그래도 분명히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모든 걸 알지 못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이것만큼은 뼈저리게 현실로 체감하고 있다.
그 어떤 훌륭한 사람도 결점 없는 사람은 없으며, 어떤 이론도 이후 밝혀질 새로운 이론에 의해 뒤집힐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믿는 올바름이 후세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도 생긴다.
눈앞을 보면 세상은 정해져 있고 비슷한 패턴으로 멈춰 있는 것 같지만, 흐름을 타고 계속 변화한다. 전제나 맥락, 시점에 따라 수없는 가능성을 가진 채, 오직 이 현실이라는 한 점에 의식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가 서 있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갈 것이며,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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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의 내려지지 않고, 나 스스로도 나를 모르는 혼돈의 상태에서 내가 '나'라는 의식을 유지하고 인간으로서 구실을 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깨닫는다. 그리고 그만큼 비어진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지하고 버티며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진다.
나는 잘하는 게 몇 가지 있지만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잘한다고 믿던 것도 하나님이 기회를 열어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종종 "운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겸손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운의 작용을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훌륭하더라도 운과 기회는 결국 내 능력 밖에 있는 영역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여러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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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혜로움과 선함이 완벽한 결과로 나타나고 돌아오는 것도 내가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선행을 하고도 실망하고, 선행을 하고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중심을 잡으려 애쓸수록 정답은 더 멀어지고, 내 무지함만 또렷해진다. 그리고 다 벗겨진 내게 남은 하나의 빛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이 망망대해 같은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붙들려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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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의존적이고 의탁적이라, 비종교인이 들으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없으면 죽는다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환상을, 삶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만들고 숭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심리를 사이비가 악용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 또한 그런 환상과 맹신을 싫어하며, 무신론자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나는 그런 감각을 주의하는 편인데도 왜 하나님을 의지하며 유일하다 믿느냐면, 내가 마주 뵙는 하나님은 유일신이시며 인격이 있으시다 믿지만, 그분은 우상숭배를 받고자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에 깃든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사랑, 그 자체가 그분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내면에 늘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 양심, 선함… 이런 것들로 말이다.
히브리서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창세기 32:30 - 야곱이 사람처럼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남
창세기 16:7 - 여호와의 사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남
요한복음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 (예수님)
양심은 인간 대부분에게 깃들어 있다.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소통하며, 그 양심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분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나로서 온전히 평안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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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착한 일이라고 믿는 것도, 옳다고 행하는 일도, 순간의 일부만 보는 한계를 가진 우리로서는 가장 근본적인 사랑에 의지하고 내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 자체를 하나님께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