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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Aug 03. 2022

돌아올 힘

살 것 같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이곳 서재에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원목으로 된 서가와 낡은 목조 건물. 오랜 시간을 떠돌다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책방에 가면 유독 기분이 좋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설레는 미음으로 훑고 그중 좋아하는 책 한두 권을 발견이라도 하면 바쁜 걸음으로 가서 목차를 펼쳤다. 책이라고 불리는 만 오천 원짜리 종이 묶음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살 것 같다니. 그럼 이전에는 어떻게 살았다는 것일지. 이곳이 본래 내 자리라도 된다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줄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살았다. 학교, 대학, 취직.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짜인 커리큘럼을 늦지 않게 따르며.  모든 날이 나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숨이 막혀 참아내듯 보낸 날들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하루 동안의 긴장이 풀려 뜨끈한 물로 몸을 녹이고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하루는 산책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돌아올 걸 생각해서 멀리 가지 말자.’ 그리고는 원래 가려던 것보다 반쯤 일찍 돌아섰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걷고 또 걷고. 휘청거리는 걸음을 계속한다. 지쳤다가 쉬었다가 두려웠다가 안도했다가. 어디쯤 와있는지도 알 지 못하고. 다만 돌아올 힘은 남겨둬야지.


가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상상. 꼭 맞는 레고 조각 처럼 이질감 없이 일을 하고, 쓰러지듯 잠에 들지 않고 생기있는 저녁을 보내는 모습을. 통장 잔고 걱정 없이 아빠랑 엄마 좋은 곳 여행도 보내드리고 언니랑 오빠 우리 다솜이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한 아름 사주는 상상을.


아침 8시에 집을 나서 저녁 6시까지 정해진 길과 일을 간다 좋아하는 것들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남은 두어 시간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고 좋아하는 책을 몇 장을 읽기 위해서.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한없이 무해하고 보드라운 것들. 다정하고 온기 있는 것들.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 내 마음 같던 주인공, 아끼는 책이 가득한 책장, 구수한 집 냄새,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게 냄새, 정겨운 얼굴, 익숙한 TV 소리, 함께 모여 먹는 저녁. 지극히 사소한 일상들.


부디 이들로 부터 너무 멀리가지는 않기를

다시 돌아와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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