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서울 시립미술관]
이 정도의 작품들을 고작 만 오천 원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설레다 못해 죄스러울 정도의 전시였다.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라는 제목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찾아오는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지속하고 싶은 사랑에 관한 것이 가득했다. 전시는 한 수집가의 소장품으로 1900년대 한국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모여있다. 이 전시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먼저는 멋들어지게 날려쓴 필기체가 아닌 ‘상유’ ‘ㅈㅜㅇㅅㅓㅂ’ 한글로 적힌 사인들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푸른 눈이 아닌 검은 눈동자에 초가집, 된장 내음 날 것 같은 그림 속의 풍경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외국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우리 것이 좋다는 유치한 말이 생각났다.
때마침 꺼진 핸드폰 때문에 노트를 펼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수집하듯 적었다.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천경자]였다. 그림 앞에서 한참 발을 떼지 못했다. 웅크린 여자와 다 포용할 수 있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코끼리. 거기에 정면을 응시하는 기린은 웅크려 있지는 않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중섭의 작품도 참 많았는데 흰 소보다도 [과수원 가족과 아이들]이란 작품이 좋았다. 함께 복숭아를 따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의 풍경이었다. 한쪽에서는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는데 그는 편지 귀퉁이에 그림을 그려 넣고 아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자전거를 사주겠노라고 거듭 말했다. 종이가 이제 한 장 남았다고 적으면서도 자전거를 조금만 기다리라고 적었다. 그는 반짝이는 자전거를 자랑스럽게 아들에게 선물할 수 있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그의 모습과 그런 그를 닮아 모두 웃고 있는 그림 속사람들. 그의 그림을 보면 이상하게 희망을 품고 싶어졌다. 괜찮다고 희망을 품으라고 하는 듯했다.
전시회에는 그림의 주인인 수집가의 코멘트가 중간중간 적혀있다. 그중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은 경매 낙찰가가 100억이었다고 한다. 그런 가치가 있었는가, 하며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수집가는 뒤이어 이렇게 적는다
예술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수로 세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 위로를 주는 것도 없지요.
수로 세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 위로를 주는 것이 없다.
노트에 적어두고는 전시를 보는 동안 계속 읊조렸다.
그림이 위로가 되어준다면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이 아닌 내가 보고 겪어왔던 풍경을 그림으로 만나는 일은 더욱 진한 위로가 되어줄 수밖에 없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작품을 등한시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꿈을 꾼다는 것은 두려움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작품을 따라가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다. 두려울 때마다 오히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 나갔을 그들을 떠올리며 글을 적는다.
어디까지나 얕은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여기까지 글을 읽은 당신이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정말, 꼭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