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빚이 8천여만 원이 됩니다. 대출금만이고 사실 다른 내지 못한 것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요.”.
라는 이야기를 내뱉어 버리고 나면, 잔잔하고 평화롭다고 믿었던 세상에서 하늘을 뒤덮을 만큼 압도적인 화살비가 내게 내려와 꽂히고 나는 고슴도치로 생을 마감해 버릴 것이다. 가장 많은 가시가 된 화살은 “도대체 어쩌다가?”와 “뭐 하고 살았길래.”라는 화살일 것일 테고.
그렇기에 현실에서는 도무지 내가 드러낸 상태로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해서 이 이야기는 인터넷을 빌어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극복할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인터넷을 표현한 다른 말로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데 그 단어 중 특히 바다라는 말이 인터넷을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넓고 많은 생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안에 깊고 어둡고 무시무시한 미지의 심해가 함께 공존하는 특징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서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이 망망대해의 공간에 나는 익명이라는 최소한의 잠수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겠지. 나를 보호해 주면서도 가려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 익명을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방종과 폭력을 마음껏 펼치는 용도로 쓰며 추악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똑같은 화살을 내게 던질 것이며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화살을 더 아프고 잔인하게 내리꽂을 것이라는 것 역시도.
그럼에도 각오하고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의 믿음 때문이다. 하나는 나는 말보다는 글 쪽에 능력이 좀 더 쏠려 있다는 점과, 말과 달리 왜곡을 반박할 수 있는 상세하고 정확한 원본도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겠다.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가질 수 있게 만들 만큼은 됐으니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쯤으로 하고, 말이 나온 김에 가장 많은 화살에 대한 이야기를 첫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너무나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쉽지 않아 시간만 보내기보다는 그게 낫겠다.
사실, 빚을 지게 된 이후 살아오면서 이 이야기를 믿음직스럽거나, 관계의 형태로 인해 말을 해야 한다고 느꼈거나,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말을 어렵사리 꺼낸 적이 있다.
나를 스쳐 지나가고 인생을 함께 하지 않을 사람들에게야 당연히 말도 안 할 거고 뭐라 떠들든 말든 아무렇지 않을 수야 있지만, 나를 좋아해 주던 몇 안 되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은 거머쥘 수 있을 줄 알았던 행복의 끝을 만들었던 시작이 될 뿐이었다.
차마 직접적으로 다 말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충격적일 만큼 직접적인 비난을 한 사람도 있었다. 하필 그들은 나와 친구나 연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돌아온 말들이나 반응들도 물론이지만 그 관계에 균열마저 생긴다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정도와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했던 말과 반응이 바로 “도대체 뭘 하다가?”와 “어떻게 살았길래였다.” 그 의문의 말과 함께 많은 의심을 받았다.
알고 보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이 든 자신의 결혼을 위한 수단으로 나를 선택했을 뿐이었을 남자는 자신이 생각한 와이프의 모습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경제관념이 없다는 비난부터 퍼붓기도 했다.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답이란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 투기와 같은 욕심에 눈멀어서 한 성급하고 능력이 안 되는 채무가 아니라는 것과 나의 사치와 생각 없는 욕심으로 지게 된 빚이 아니라는 점과 다행스럽게도 사기로 인한 빚은 아니라는 것이겠다.
그나마 성숙하다거나 그렇게 생각할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라고 생각해서 좀 더 구체적인 일부를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해불가에서 오는 비난이었다. 그것이 차라리 나에 관한 것이라면 괜찮을 텐데, 내가 욕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연과 상황이 있는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 태도와 속 좁은 마음,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서 팔아넘기듯이, 이해를 구걸하듯이 다른 설명을 누설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한심하고 생각 없는 취급을 당하더라도 밝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빚으로 인한 영향으로 힘겨워하더라도 두 번 다시는 내 입으로 절대로 말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더라도 나는 차마 말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사람도 나 정도는 괜찮지만 너는 아니라는 내로남불적인 마인드를 가졌을지 어찌 알 수 있으랴.
알량한 이해와 위안을 받자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가치가 관념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훼손되기 때문이다. 관념을 벗어난 이해라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란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성숙함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당연하게도 극소수이다. 다른 말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흥밋거리로 씹어대는 안주로 삼아버린다. 나는 차마 그런 행동을 도와주는 행동은 조금이라도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생각과 다짐을 했다.
최근에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남의 약점을 돈벌이 수단에 이용하다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생각을 보며 그 다짐을 더 굳히게 된 것 같다. 내가 힘들어도 나와 얽혀 있는 다른 이를 팔고 싶지 않다. 도움이든 동정이든 그렇게는 차마 받고 싶지 않다.
내가 빚을 지게 된 것은 하나의 커다란 결심이었다. 구체적으론 알 수 없었지만 어려움도 함께 감내하겠다는 각오였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정말 커다란 위기가 닥쳤기는 했지만 총액수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 큰돈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이상은 감당 못할 것 같아. 같은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총채무액에 대해서는 그저 이때까지는 안 쉬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겠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다 갚을 날만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전부 청산을 하고 나서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도 더 떳떳하고 싶다. 사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으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지금의 궁지에 몰린듯한 고비를 무사히 잘 넘어갈 수만 있게 되길 희망한다. 한 번씩은 나도 버티기 참 힘든 절망에 뒤흔들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각오도 하였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애쓰고 싶다. 그래서 숨 가쁜 와중에도 시간 내서 글을 쓰며 다잡는 것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