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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가는 길.

연속된 실패와 질병 그리고 이별

 휴식을 취한 근로자의 날의 다음날인 2일은 다시 출근을 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공모전의 결과 발표일이기도 했다. 워낙 망쳤기 때문에 가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입상이라도 했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조용한 핸드폰에 작은 기대조차 사그라들었고 오히려 체념하기 위해서 결과직접 확인하니 역시 아무런 수상도 하지 못했다.

 씁쓸했고 나한테 생긴 일들과 그 원인이 된 요소들에 대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고 나의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데다 의미 없는 남 탓이나 해서 뭐 하겠나 라는 생각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의 할 일들과 계획에 대해서나 생각하 실천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할 일들이 연속적으로 많았으니까.


 내일이었던 3일은 저번주에 했던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내원하라는 문자도 받은 상태였다. 요즘은 한창 정시에 퇴근을 하였고 병원은 야간진료를 하는 이었으니 따로 반차나 연차를 쓰 않고 퇴근 후에 가면 됐었다. 어차피 금요일이었기고 해서 대기가 많아 늦게 끝나더라도 상관없기도 했다.


  퇴근 후 들른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호명하는 소리에 원장님의 진료를 뵈니,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먼저 수치가 적힌 검사 결과가 담긴 모니터 화면을 내쪽으로 향하게 하며 보여주었다.


"결과는 양성이 나왔어요."


이윽고 원장님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한두 달 정도부터 염증과 통증등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졌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통원을 하다가 병원에 온 김에 혹시나 해서 7만 원가량의 비싼 돈을 주고 검사를 한 것이었는데 기어코 양성이 나왔다.


 원래 좋지 못했던 몸 상태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 했어도 아니길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양성이었다.


 내가 진단받은 양성이란 HPV로,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는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이 있는데 저위험군의 경우는 성기 사마귀를 유발하고 고위험군의 경우가 여자에게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해 가다실이라는 주사가 있고 맞는 것이 좋은데 나의 경우는 확실하게 이 바이러스의 보균자이니 지금이라도 맞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 가다실 주사의 경우, 병원마다 금액 차이는 있지만 1회당 20만 원 이상의 비싼 비용이 든다. 주사는 기간을 두고 총 3회 맞아야 했다.

 내가 간 산부인과는 1회씩 맞으면 23만 원이고 3회 치를 한꺼번에 결제하면 60만 원으로 9만 원 정도를 할인해 준다고 했다.


 사실 공모전이든 뭐든 다른 여러 가지의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한 것은 사람과의 사이에서 회의감을 느껴서 자기 계발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직장에선 연장 없이 정시퇴근이 연속되느라 퇴근 후 시간적 여유는 많아졌지만 급여는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경제적인 상황이 많이 빠듯해진 이유도 컸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HPV 판정이라는 것은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게 만들었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다 돈이든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라 괜히 더 불필요한 낭비하기 싫어, 원장님께 이왕 병원 온 김에 그럼 첫 번째 주사를 맞겠다고 했다.


잠시 대기하다가 주사를 맞고 수납을 할 때, 당연하게도 일시불대신 할부로 끊어서 결제를 했다. 7개월짜리로 끊어서 거의 한 달에 2,3만 원 돈을 내면 됐지만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추가 지출은 부담이 되었다.


 늦은 저녁 귀가를 하면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공모전같이 내가 원하는 것은 해당이 안 되고 HPV같이 원하 않는 것만 해당이 되는 것이 참 운명의 장난질같이 느껴져서였다.


 4일은 토요일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예약해 두었던 연습실에서 2시간가량 연습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오늘 오후에 있을 동네 노래자랑을 위한 것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연습은 조금씩 했는데 확신이 안 섰고 한 번 제대로 실전으로 연습을 해본 뒤 최종적으로 나갈지를 결정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역시 비용이 들긴 했지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시간의 코인노래방보다 저렴했고 더군다 노래자랑에 나가기 위한 목적에서 돈을 쓰는 것이니 하나의 투자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방음처리가 되고 혼자 마음껏 노래를 불러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건 참 좋았지만 실제로 방음효과는 좋지 않았다. 옆 방에 연극을 연습하는 듯한 다른 이용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다 들려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혹시 문이 제대로 안 닫혔나 싶어 몇 번이나 문을 다시 닫았지만 그대로였다.

 내 방에도 이렇게 소리가 들어올 정도면 반대로 저 사람에게는 얼마나 내 소리가 크게 들릴까 신경도 많이 쓰였다.


 그래도 이왕 이용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연습을 해보았는데 그냥 듣기에도 미흡했고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녹음을 하고 다시 들어보기도 했지만 노래자랑에 나가서 수상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나갈까 와 그러니 나갈까로. 일단은 결정하지 못한 채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꽤나 일찍 연습실에 도착해서 이용했기 때문에 몇 시간이 지나도 아직 늦은 오전이었다. 지하의 어두컴컴한 연습실을 빠져나오자 휴일의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이 날 맞이해 주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뜨겁지 않은 햇살, 적당히 진 그늘까지 작은 선물 같은 아침이 마음에 흘러들어 와서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 풍경을 느끼다가 조금만 더 머물고 싶어졌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순간을 맞게 될지 몰라서 말이다.


 근처는 조용한 주택가였기 때문에 작은 공원과 놀이터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 사람들 없는 조용한 놀이터의 정자 같은 곳에 몸을 기대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사실 집에 곧바로 가지 않은 건 아름다운 휴일의 아침을 뒤로하기 아쉬웠던 것도 있지만 매장 가서 맡겼던 기타도 찾아와야 했어서다. 그러나 무엇 그 근처가 '그 애'의 집이었기 때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나 지금 근처 왔는데 괜찮다면 한 번 볼래?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괜히 망설여지기도 했었는데 사실 연습실에 있을 때 먼저 연락이 왔었다.

 전화를 달라는 거 보니까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괜히 떨리고 그래서 망설여지다가 어느새 오후가 되었을 때 먼저 문자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각보다 답장이 바로 왔고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고 통화를 했다. 


 그 애와는 만남을 이어가는 사이였고 내가 좋아했지만 그 애는 현실을 이유로 그리고 자신이 비혼주의라며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지 않으려 했다.

 나도 현실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그 입장을 이해했다. 다만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곁에 있고 싶고 서로의 현실적 입장으로 결혼은 물론 연애조차 할 수 없을지라도 얼마간 만이라도 머물고 싶고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잘해주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런 그 애의 입에서 이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미래를 위해서든 뭐든. 아마 정립되지 않은 애매모호한 관계를 더 이상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의미 없다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투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목소리와 다소 느린 말속도까지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 같았다.


 사실 나 역시 마음과 의지만으로 관계를 끌고 가려 애썼을 뿐 같은 고민있긴 했었다. 러니 결국 누구의 입에서 먼저, 언제 나오냐의 문제에 불과했을 것이다.


 끝을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 같아선 곧 다가올 생일 때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바라기도 했는데 어렵겠구나 싶었다.

 어제 연락을 했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은 것도 알고 있고 내 사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돈이 없다고 주사를 안 맞거나 하지는 말라면서 계좌번호는 알려달랬다. 대신 그 외의 연락하지 말래서 별다른 말은 나도 더 하지 않고 통화를 마쳤다. 적으로는 부담을 덜게 되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연결이 끊어진 후, 혼자 남겨져 하는 의미 없는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술에 취해서라도 연락 오면 좋겠는안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거나 같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지 못한 건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 따위였다.


 레,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프로필 사진과 음악 같은 걸 바꿔 두었다. 사진은 선물한 적이 있던 이모티콘의 캐릭터로 배경은 예전에 그 애에게 준 적 있던 꽃선물이었다.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추억하겠다는 의미였다.


  화창하고 시원한 산들바람이 부는 날에  공원에 그늘진 정자에 기대앉아서 멍하니 생각인디 감정인지 모를 것에 잠긴 채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또 한 번의,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 중에 가장 마음 아팠던 포기였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했건 노래자랑은 가지 않기로 했고 맡겨두었던 기타만 가지고 집에 가기로 했다.


 아직 주지 못한 게 많는데, 내게 애매함과 부담을 많이 느끼던 그 얘였으니까, 이런 끝은 사실 예정되었고 생각보다 빠르고 갑작스러웠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글도 쓰고 간단한 영상도 편집해 올려보기도 했다.

 추가로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이제 다 해본 것 같으니, 다시 현실적 문제에 대한 계산과 따져보기를 해야 할 때였다.


달콤하게 꾸었던 꿈에서 깨어나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야만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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