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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검정고무신 故 이우영 작가에게 바치는 헌정 산문

어느새 어른으로서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어쩌다 마주친 추억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행복과 순수함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느낀 적도 있는데,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어른들이 슬퍼하던 모습을 본 순간에 그랬다.


<검정고무신>은 우리나라 어른들의 어린 시절을 정겹고 따뜻하게 그려낸 만화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선물 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의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속 추억의 한 조각도 저무는 것만 같은 먹먹함을 느꼈다. 하지만 작가의 죽음이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다.

그저 여느 창작자나 예술가들의 흔한 사망 요인처럼, 건강상의 문제였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면에 훨씬 비극적인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 배경에는 저작권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저작권 문제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저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던 나는 사건이 벌어진 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형 이우영과 동생 이우진, 두 형제가 함께 젊은 날을 오롯이 바쳐 힘들게 작업했던 작품, <검정고무신>. 그 안에 담긴 땀과 애정 어린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어느새 수많은 수상과 기록을 보유하게 된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며 국민만화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다.


커다란 성공 이후, 한 사업가가 그들에게 찾아왔다.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한 '캐릭터 대행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작가들은 자식같이 소중한 창작물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바라는 마음에서 사업가 장대표와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또 다른 기쁨인 줄 알았던 이 계약이, 모든 것을 앗아갈 달콤한 덫이었음을.


1차, 2차에 걸쳐 진행된 초반의 계약은 창작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정당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장대표는 기존 계약의 한계와 제한적인 저작권이 사업 진행을 어렵게 한다고 호소했고, 원활한 사업 진행을 명분 삼아 작가에게 저작권 지분과 권리 양도를 요구하며 새로운 계약, 즉 3차 계약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계약은 이전 계약과 다른 점이 있었다. 계약 기간이 없고 포괄적인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작가들은 그저 장 대표를 믿고 3차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계약 기간이 없다'는 것은 곧 무기한 계약을 의미했고, 이는 사업체 측에서 <검정고무신>의 지적 재산권을 영구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포괄적 조항'은 계약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사업 범위가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결과, 캐릭터를 통해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이익을 사업체 측이 가저갈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작가들이 함께 작성한 양도각서조차, 저작권의 지분과 권리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양도에 따른 지급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창작자들이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와 많은 수익을 잃게 되는 불공정한 계약이었으며, 이 계약이 체결된 이상 어떠한 이의제기도 할 수 없게 됐다.


불공정 계약의 결과는 참담했다. 캐릭터를 활용한 수많은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정작 그 내용조차 작가들에게는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사업 내용 공개를 직접 요구해도 "원작자가 그걸 알아서 뭐 하냐"는 식의 핀잔만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15년 동안 무려 77개의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작가들에게 돌아간 수익은 고작 12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계약서 내용과 다른, 불규칙하게 정산된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이에 형제는 문제를 바로 잡고자, 계약서 재작성과 사업 내용 공개 등을 요구하며 수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던 중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불공정 계약을 통해 확보한 높은 저작권 지분을 무기 삼아, 창작자가 아닌 장 대표가 오히려 원작자들을 '저작권 침해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민사 소송까지 제기한 것이다.

심지어 작가의 부모님까지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는데, 부모님 소유의 체험 농장에 전시된 캐릭터와 방송사 측에서 선물한 애니메이션 상영분까지 문제를 삼은 것이다.


참으로 경악스럽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가 겪었어야 할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권리 침해와 정신적 고통은 물론이고, 법적인 문제로 인해 창작활동조차 가로막히게 된 것이다.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창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생계의 위협마저 닥치게 되었다.

삶을 바처 만들어낸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빼앗긴 비통함과 상실감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그는 지망생처럼 공모전에 매달려 상금을 받아야 했고, 10여만 원 남짓한 강의를 전전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자라 결국 생계를 위해 막노동 현장에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창작자로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는 참 많이도 애썼다. 자책하며 더 열심히 만화를 그렸고, 희망을 놓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창작자가 더는 없기를, 자신의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어 좋은 선례로 남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해야만 했던 싸움 속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고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루지 못한 소망을 뒤로하고, 그는 절필 끝에 절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그의 죽음에 대해 마냥 슬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이 드러내고, 바꾸고, 남기고 간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러낸 것은, 경제적 이익과 산업 발전을 핑계로 반복되던 폭력적인 관행과 불공정 계약으로 고통받는 창작자들의 현실이었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의 안일함과 허술함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책임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비췄다.


바꾼 것은, 불공정 계약에 대한 시정 명령과 공동저작권등록 말소를 통한 저작권 회수 등이었으머, 사건을 계기로 새 표준 계약서의 재정과 법률 지원센터의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의 권리는 죽음 이후에나 되찾을 수 있었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산업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는 창직자의 권리를 경시하고, 저작권을 수익 수단으로만 보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창작물과 저작권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시간과 애정, 삶이 깃든 소중한 결실이며, 저작권은 창작자의 생존과 존중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창작자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하여, 안심하고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창작자가 없다면 창작물도 없다. 창작자의 권리를 외면한다면 결국 창작은 중단되고, 문화는 쇠퇴하며 산업도 함께 무너져 내릴 것이다.

따라서 창작자가 정당한 권리와 대가를 보장받는 건강한 생태계 속에서 창작이 꽃피울 수 있을 때, 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공생할 수 있다. 문화와 산업이 함께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선 모두가 한 마음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인은 마지막까지도 세 가지의 귀중한 의미를 일깨워주고 떠났다. 이 의미들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이를 기억하고 힘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따뜻한 추억을 남겨준 고인에게 유일하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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