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보는 20대(1)-20대 중반까지의 이야기
더 이상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결혼을 또 하나의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설프게 알던 것을 상상으로만 부풀리다가 현실을 자각하고 직시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에, 새로운 걱정과 고민만 추가됐을 뿐이었다.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준비와 행동이 필요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역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결혼자금'이라는 말이 있듯, 결혼을 하기 위해선 충분히 많은 돈을 모아야만 한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벗어나 성인이 되고, 돈도 벌 수 있게 되었대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것은 그 나이대가 원래 그럴 시기여서라기보다, 내 삶이 순탄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20대에는 사실 결혼에 대한 준비는 고사하고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몇 편에 걸쳐서 하게 될 나의 20대 이야기를 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만약 나의 20대가 여느 다른 20대처럼 평범하게라도 흘러갔다면, 나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이따금씩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20대는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의 20대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실감하며 자유롭게 그 나이대의 생활을 즐기고 반짝이고 있을 때, 나는 비교되는 어둠 같은 현실 속에서 아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의무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 마음속에 가득 쌓여 있던 독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독은 미래로 향하는 길을 막아섰고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됐다.
뇌가 망가져버린 듯한 감각 속에서 깊은 무기력에 시달렸고, 끔찍한 기억들은 매일같이 머릿속에서 강제로 재생되었다. 악독한 마음을 가득 담은 말을 내뱉어대는 환영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순간에 날 공격하고 상처 입혔다. 정말 하루도 울지 않았던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고통에 삼켜진 채, 길을 잃고 헤매기만 했던 시간이었고, 그렇게 2년을 홀로 멈춰 있었다.
하지만 멈춘 시간은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만들었다. 어느 여름날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반짝임이,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연푸른색의 하늘과 포근해 보이는 구름의 풍경이, 컴컴하던 마음에 유일하게 깃드는 빛이 되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풍경들을 눈에 가득 담아 마음을 조금씩 밝혀가는 것이었다.
풍경의 찬란함을 보며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없을 때에는 외부의 자극을 최대한 차단한 채, 어지럽게 뒤엉킨 생각과 엉망진창이던 마음을 붙들고 풀어가려고 애썼다.
자연이 주는 치유와, 무기력하게 굳어버린 몸 아래에서 희미하게 발악하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를 완전히 뒤덮었던 독은 서서히 희석되어 갔다.
마침내 속박된 것처럼 벗어날 수 없던 침대를, 나갈 수 없을 것 같던 작은 내 방과 익숙한 집 너머로,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근육이 모조리 사라진 사람이 다시 처음부터 걷기 시작할 때 내딛는 몇 걸음처럼, 아주 사소한 일조차 몹시 위태로웠다.
단절된 시간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사람을 대하는 감각을 완전히 무뎌지게 만들었다.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아 숨어버렸던 나는, 사람을 마주해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져 버렸고 그만큼의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커다란 실패와 좌절을 딛고 겨우 일어섰지만,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만 같은 감각에서 오는 막막함과 불암함이 나를 참 많이도 쥐고 흔들었다.
그로 인해 어렵게 닿은 새로운 사람들과도 마음 아픈, 관계의 실패를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이때의 나는 결혼은커녕, 연애는 물론이고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것조차 할 수 있을까 하는 좌절이 뒤따랐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 산불 후, 잿더미가 되어버린 회색빛의 땅에서 겨우 고개를 든 새싹처럼 다시 처음부터 생장해야만 하는 나였다.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지 않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살아가던 중, 예기치 못하게 안부와 소소한 이야기 정도를 주고받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의 첫 연애이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일들로 꿈도 꾸기 힘들었던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많이 기뻤고 큰 안정감을 얻었다. 더불어 대학생들에 비해 조금 일찍 직장도 잡게 되면서 경제적인 수익도 생겨났다.
그로 인해, 이때까지의 실패를 만회할 만큼의 행복과, 잘 살지 못했던 날들보다 더 나은 날들이 올 거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너무 혼자서 희망으로만 들떠 있기만 했었던 걸까. 연애도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부푼 마음이 점차 작아지고서야 실감했다.
장거리와 학생과 직장인의 신분 차이, 잦았던 상대의 술자리 같은 것들이 결국 관계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원함과 서먹함이 점차 짙어져 가던 중, 상대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자꾸 첫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알려주며 보라고 졸랐다.
나는 단순히 그 영화를 주제로 공감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다른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2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뒤에 소감을 말해주고 재밌었고 알려줘서 고맙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이 충격적인 결말의 복선이었음을 얼마 못 가 알게 되었다.
장거리여서 자주 만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가 잦았던 상대가 결국, 첫사랑과 바람이 난 것이다.
그저 프로필 사진에 그 여자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대놓고 올려두는 것으로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만들었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일말의 예의도, 배려도 없는 행동이었다. 자기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어머니가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고 자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 내가 먼저 그 관계의 종지부를 찍고자, 올린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며 잘 가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했다. 분노를 터트리지 않고 겉으로야 덤덤하게 행동하였지만, 상처는 크게 입고 말았다.
그 후에 첫사랑이었던 그 여자가 기대 이하였던 건지, 뭐가 잘 안 맞았던 건지는 몰라도, 몇 개월도 못 가 금방 헤어지고 나에게 밤에 전화를 해서는 너만큼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말을 하는 것까지 참 최악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인 일을 훨씬 어리고 연약했던 나이에 겪으면서 후유증을 크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원망과 불신으로 무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관계를 단절하다시피 살았다.
여기에다, 어린 나이에 잡은 직장 역시 성격과 잘 맞지 않는 영업직이었고, 갈수록 심해지는 실적 압박까지 견디다 못해 퇴사하게 되면서 직장생활 또한 끝이 났다.
그 이후, 지속적이지 않은 짧은 알바라도 이어갔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마음속의 상실감과 좌절감은 아직 완전히 아물지 못했던 마음의 병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다시 집에 머무는 시간까지 전과 비슷하게 늘어나버리고 말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것 같은 모습에 허탈감과 무력감이 심했다. 더 나아가고 성장했다는 믿음과 희망 역시 산산조각 나서 사라졌다.
이렇게 나의 20대 초반은, 밑바닥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일어나 다시 걸음마를 시작했던 시간이었지만 다시 좌절이 닥쳐 무너진 시간이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처럼 피어났던 작은 꽃이 너무 빨리 바스러져 버린 탓에, 다시 주저앉은 채로 멈춘 듯한 시간이 흘러갔다.
무감각함 속에서 어느새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별다른 기대도 희망도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시점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미 최악이라고 생각한 삶 위에,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고난과 아픔이 덮쳐오게 될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