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단어
포부 넘치게 이제부터 결혼에 대한 글을 쓰겠노라고 예고했어도, 막상 시작하려니 다소 어려움을 느낀다. 결혼이라는 주제 자체보다는 어떤 순서로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서에 얽매이느라 많은 시간을 쓰고 적절함을 찾기 위해 너무 과하게 신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점에서 결혼과 관련된 기억을 회상해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나가는 글을 써보려는 것이니,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고 단순한 주제부터 시작해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면 나머지도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우선 시작해 보는 이야기의 주제는, '결혼이라는 단어'다.
단어를 이야기할 때 가장 정확한 기준점은 사전적 의미가 아닐까? 많은 책과 글 속에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주로 어떤 개념이나 사물에 대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제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덧붙이는 형태의 서술 방식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단어의 객관적인 풀이를 가져와 서술을 시작해 보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여기에는 정석적인 서술 방식인 만큼 진부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이유가 강하게 작용했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 보통의 다른 단어들에 대해서는 뜻이 모호하거나 짐작조차 못할 정도로 잘 모를 경우, 망설임 없이 바로 찾아보는 편이다.
그러나 '결혼'은 달랐다. 안지 상당히 오래된 단어임에도 사전적 의미는 물론, 구성하는 한자조차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무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볼 생각조차 여태껏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아주 익숙하고 잘 안다고 착각했지만 실제론 무지몽매했던 단어에 대해 언어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느꼈다. 가히 양심에 찔릴 정도였다.
그래서 차라리 나의 삶 속에서 보고, 듣고, 느껴서 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객관적인 풀이대신 살아 있는 경험의 단어로 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꽤 어렸을 때부터 결혼이라는 개념을 접했던 것 같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언어를 흡수한다는 말처럼, 이 시기에 접한 '결혼'이라는 단어도 선택하거나 배우기보다는 자연스레 흡수한 것에 가까웠다.
뭣도 몰랐지만, 결혼이란 건 엄마 아빠가 한 것이었다. 또, 엄마 아빠가 내게 밥먹듯이 "싫으면 시집가야지", "커서 결혼해야지." 같은 말을 너무 자주 했기 때문에, 나는 여자라서 시집을 가야 하고 결혼이란 건 어른이 돼서 하는 것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조금 더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 무렵, 엄마는 결혼식장에 날 자주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그 바람에 본격적으로 결혼이란 게 무엇인지 직접 보고 알게 되었는데, 정확히는 결혼의 과정 중 하나인 결혼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뜻을 몰라 주례가 참 지루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례사 중,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말은, 표현은 참 웃기지만 왠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으며, 결혼이란 건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오래도록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구나라고 받아들였다.
어린 나이에 자주 가게 된 결혼식은 지루함이 가득했지만, 가장 설레고 근사한 순간도 있었다. 바로 '신부 입장'의 순간이다. 풍성하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채 천천히 걸어 나오는 신부는 어린 눈에도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결혼은 여자가 가장 빛이 나는 순간이라고 감탄하며 나도 한 번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게 될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내가 보아온 어여쁜 신부들처럼 당연히 그 길을 걸어 같은 모습이 될 거라고 믿었다. 마치 운명으로 정해진 것처럼. 그 정도가 어린 나이에 접하고 알게 된 결혼이란 단어의 의미였다.
어느새 소녀로 자라나게 됐을 때, 꿈꾸게 된 것 중엔 결혼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녀 시절의 결혼이란 바람과 상상으로만 가득 찬 단어였다. 결혼을 언제 하는 게 좋을지 그래서 몇 월의 신부가 되고 싶은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같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결혼이란 건 어른이 된 여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순간이고, 결혼 후엔 새로운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그때의 어린 나를 돌이켜보면, 현실 하나 모르고 꿈같은 환상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모든 걸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학 착각 속에서 마냥 행복해하기만 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현실의 결혼을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누적된 지식은 나를 더 이상 달콤한 환상 속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화려한 결혼식과 결혼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 결혼은 우아함 뒤에 감춰진 발버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무겁고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결혼식은 산더미 같은 준비를 직접 해내야 하는 것이었고 결혼 후의 삶도 무조건적인 행복이 보장되지 않았다.
평생 변치 않을 것 같은 사랑으로 서약했음에도 이혼으로 끝이 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영원한 견고함을 가진 줄 알았던 결혼은 생각보다 훨씬 연약한 면이 많았다.
그때부터 결혼은 자연히 '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알아야 할 것도 갖춰야 할 것도 많았다.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도 머리 아프게 많았다. 그 상태로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고 이제는 굳어지다시피 했다.
결혼이 잘 준비해서 해내고 유지하기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되면서, 결혼의 사전적 의미 같은 건 흔적도 없이 덮여 의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현실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환상과 로망, 단어의 뜻 같은 것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뒤늦은 자각으로 겨우 발굴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에 와서 달라질 것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결혼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해도, 여전히 미혼인 내게 그것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가하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단어의 뜻만 제대로 안다고 무엇하겠는가.
그것은 과제를 완성하지도, 제출하지도 못한 채 '과제'라는 단어의 뜻만 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제 와서 굳이 찾아보고 숙지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단어란 때로는 그저 개념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어가 개념을 대신하기에 훨씬 부족해서 대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결혼도 그렇다.
결국 단어로 시작해 본 이 이야기는 오히려 단어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내용의 방대함을 증명해 준 것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모호함 속에서 좀 더 명확함이 생겨났고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던 순서의 고민도 어느 정도 해결 된 것 같다.
첫술을 뜨기 어려웠을 뿐,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좋을지 그 방향을 알 것 같다. 내가 결혼을 마주하며 했던 고민과 생각—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