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제 괜찮지만, 괜찮지 않아.

30대의 나와 새로운 직장

코로나 사태든, 나의 경제적 상황이든 점점 악화되던 중에 나의 20대는 힘없이 끝이 났고, 별로 즐겁지 않은 30대가 시작되었다.


조금 먼 과거에는 그래도 이 나이쯤 되었을 때 뭐라도 이루고 안정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3년 넘게 쉬지 않고 일했음에도 지출이 줄어들었긴커녕, 감당하지 못해 빚으로 불어나기까지 했다.

인생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엉켜만 가면서 사실 많이 암담했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20대까지만 해도 힘들었어도 남은 날들이 있었기에 희망이 있었는데, 20대가 완전히 끝나고 나니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기분이었다. 이제 내게는 어떤 기회도 없고 도약도 불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동안의 근속 역시 큰 의미는 없었다. 이직에 도움이 되는 커리어가 되려면 적어도 사무직에 어느 정도 직급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단순 반복 업무의 현장직이었고, 정직원이 아니라 도급 계약에 불과해 경력으로서의 메리트가 없었다. 여기에 나이까지 많으니 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한계이자 미래는 비슷한 현장직과 공장 따위를 전전하며 살다가 먼저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다가 따라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많이 우울했다.


앞으로의 나의 미래가 더 이상 아무런 발전 없이 막혀버렸다는 생각에 앞날이 막막했다. 20대 중반 이후로도 갖은 고생을 하며 점차 결혼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작아졌는데, 30대가 넘어가니 결혼에 대한 기대감은 소멸되고 의지까지 사라지는 듯했다.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가 큰일이었다.

여전한 코로나와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당장의 살 길이 막막해서 결혼 생각은 더욱 들지 않게 된 30대의 시작이었다.


여전히 지겹게 코로나는 계속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변이를 거듭하며 약해졌다. 타이밍이 재밌게도, 코로나가 꺾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기대 하나 없던 내 삶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며 희미한 빛이 비쳤다.


약화된 코로나로 각종 제한이 풀리고 취업시장도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직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때가 마침 그 직장에서 3년 차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4년 차까지 채워야 할지, 준비되는 대로 관둬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직장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인원감축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선은 남고 싶은 인원과 그만둘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부터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만둘 경우, 회사 사정으로 퇴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실업급여가 따라오는 조건에, 나는 고민하던 마음을 확실하게 굳혔다. 퇴직금과 더불어 실업급여까지 나온다면 금방 이직을 할 수 없대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동안 이직을 할 수 없었던 건 퇴사하고 나서 바로 재취업이 안 될 시,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달마다 백만 원이 넘게 나오는 실업급여라면 지출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직준비를 하고 재취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미련 없이 지긋지긋하던 고강도 저임금에서 드디어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후련하고 행복했다. 그동안의 고생과 고민 하나가 해결되는 기분이어서 몇 년 만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퇴사 후 일주일 동안은 정말 즐겁게 푹 쉬었다.


그 후 고용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설명을 들은 뒤,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했다. 혹시나 반려될까 봐 걱정스러웠지만 무사히 통과되고 실업급여가 지급되었다.


비록 실업급여를 통해 수입은 있었지만, 고정지출을 모두 해결할 순 없었다. 가지고 있는 퇴직금을 나눠서 같이 내야 했기 때문에 대략 5개월 후면 실업급여만으로도 충당이 안 됐다. 따라서 그 안에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 했다.

실업급여로 잠시나마 돈 걱정 없이 스펙을 쌓고자 했지만, 계산해 본 결과 생각보다 그 기간이 짧아서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중간중간 해야 하는 활동과 더불어 구직활동도 해야 했으므로 중간에 면접에 통과해 버리면 그대로 실업급여 생활은 중단되고 다시 출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4개월 만에 지원했던 생산직에 덜컥 붙어 버렸고 그렇게 실업급여 생활은 끝이 났다. 스펙을 갖추진 못했지만 나태하게 보내진 않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다. 도움이 될 만큼 능력을 갖추게 해 준 건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나마 만족스러웠다. 그건 아마 뭔가 조금이라도 준비를 해봤다는 만족감이었을 것이다.


사실 생산직 자체는 처음이었던 데다가 근무시간이 전 직장과 크게 달랐다. 전에 다녔던 직장은 오전 9시부터 근무 시작이라 7시쯤 일어나면 됐었는데, 이번 직장은 근무 시작시간이 7시여서 새벽 4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너무 이른 기상시간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한창 피크일 기간만 다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다짐했다.


입사하게 됐을 때가, 추석을 2달가량 앞둔 시기였고 물량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조금 다르긴 해도 역시 명절에 바쁜 건 현장직이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전 직장에서 비슷하게 바쁘고, 그 기간 동안 오래 일해 봤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긴 게 낯설지는 않았다. 많이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다.


그렇게 2달 정도만 다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적성에 잘 맞았고 사람들도 잘 대해주면서 빠른 적응을 했다. 동시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근무를 하면서 연장 수당도 많이 붙어서 급여도 셌다.

지난 직장이 돈도 적고 몸이 아파 힘들기도 했지만 특히 사람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나로서는 이번 직장이 짧게 다니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래의 계획을 바꿔 일단 다음 명절인 설날까지 다녀보기로 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급여와 좀 더 숙련되어 잘하게 된 일 덕분에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좋은 사람들과 친해진 사람들까지 생겨서 직장을 다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새벽 4-5시에 일어나는 것쯤을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곳이라면 오래 다녀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날까지 명절이 완전히 지나자, 비수기가 왔다. 비수기에는 연장근무를 거의 하지 않고 오후 4시라는 이른 시간까지는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줄어든 근무 시간으로 비록 급여는 줄었지만, 오히려 내겐 굉장히 좋았다.

퇴근 시간이 여섯 시인 것에 비해서, 훨씬 많아진 개인 시간으로 직장을 관두거나 옮기지 않아도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설날이 끝났는데도 관두지 않고 쭉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정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고용된 형태는 이전 직장처럼 아웃소싱 업체를 통한 계약직이었으므로 상당히 불안정한 고용 상태였다. 몇 달 전에 회사에 약간 문제와 피해를 줬던 계약직 직원이 결국 계약해지로 해고가 되는 걸 봤기 때문에, 나도 내심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해고가 어려워 보다 안정적이고 4대 보험 적용 및 상여금 등 여러 혜택과 더불어 경력에도 도움이 될 정직원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직원은 무조건 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여러 가지 평가에서 통과하고 자리가 생겨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1년이 되기 한 달 전, 갑자기 정직원에 대한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이건 기회라고 생각해서 정직원이 가능하다면 무조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딱 1년째가 되던 날, 드디어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정말 기쁘고 의미가 컸다. 새로운 직장에서 1년을 버티고,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지고, 계약직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추후에 좀 더 인정받을만한 경력까지 생긴 것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직장에서 1년 만에 얻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이제 꾸준히 돈을 벌면서 채무만 해결해 가면 될 것이었다.


조금 안정이 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30대 초반이라는 나이 때문에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자꾸 듣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번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지금의 나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택도 없다고 생각했다.


20대의 수많은 고난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직장에서의 안정도 얻을 수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채무가 역시 문제였다. 모은 돈도 없는 데다가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지출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계속 몸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현장직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아픈 곳도 점차 많아져 나가는 병원비마저 늘어나 버렸다.


현재 나의 상태가 겨우 나 혼자 건사할 수준밖에 안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결혼자금이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빚까지 있으니.. 이런 나를 누가 원하겠는가.

그럼에도 누가 날 좋아한다고 괜찮다고 해도, 나 스스로도 그건 상대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혼자 쓸쓸하게 늙어 죽더라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고생시키거나 이용하는 짓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는 건 역시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나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혼자로의 나의 미래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20대 땐 몰아치는 현실에 끼어들 수 없어 결혼이 멀게 느껴졌다면, 30대엔 상황이 좀 더 나아졌지만 가진 게 너무 없어 체념하게 되느라 마음이 떴다.


하지만 경제적인 상황과 수준보다 더 자신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연애였다. 정말 어려웠던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드물게 한 번씩 연애의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서는 결혼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혼자서 결혼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처럼 모두 실패를 끝이 나고 말았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결혼이란 걸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애초에 결혼이 맞지 않은 사람인 건가? 그 고민 속에서 지난 과거의 실패를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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