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럼에도 결혼을 할 수 있다면.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들과 소박한 바람

굳이 단어 뜻을 찾아보지 않게 될 정도로 익숙한 결혼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처음에 가벼웠고 자신만만했던 마음과 달리 결혼은 나에게 상당히 무겁고, 아프고, 고민스러운 문제였다는 걸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여태까지 풀어온 이야기에서처럼, 현재의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쪽에 치우쳐져 있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수많은 재앙들이 내가 결혼할 수 없고 하기 힘든 이유들이라면, 가장 밑바닥에 깔린 희망 하나 정도가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다. 그만큼 너무나 많은 이유들로 나의 결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내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이고, 나는 그 앞에서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나의 결혼에 대한 마지막 생각과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흔히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배우자의 조건을 말하곤 한다. 나의 배우가 어땠으면 좋겠다, 어떤 걸 갖췄으면 좋겠다는 것 따위다.


당연히 바라는 것이 없을 순 없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고 과하면 그저 폭력적인 탐욕밖엔 되지 않는다.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다가 결혼을 못하게 되거나 어렵사리 찾는다고 해도 그 결혼은 조건에 눈이 멀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등한시했으므로 얼마 못 가 깨지기 쉬워질 것이다. 바로 사랑의 부재로 인해서.


때문에 특히나 외모나 경제력, 직업같이 화려하지만 표면적인 것들에 지나치게 집중할수록 오히려 결혼은 실패하기 쉬워진다. 사실 연애조차 그렇게 하면 얼마 못 가 깨지는데 결혼은 오죽하겠는가.

결혼은 함께 긴 시간 동안 걸어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는 행복한 순도 있겠지만 어렵고 힘들고 무난한 시간들이 대부분인데, 선하고 아끼는 마음 없이는 버텨나갈 수 없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조건이란 다를지라도 '내가 어떤 사람과 같이 함께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즐거우려면 무엇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내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처럼 책을 좋아하거나 최소한 책을 좋아하는 나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해박한 지식이 있지만, 인간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존중해서 계산이지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일일지라도 안타까워해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할 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핀잔을 주지 않고 너는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즐겁게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사람이란 나와 비슷한 생각과 수준이면서 대화가 잘 통하는 따뜻한 사람이겠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결혼에는 비용이 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변변치 않은 경제적 사정을 가졌기에, 상대에게 차마 미안해서 결혼 자체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부담을 지어주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내가 괜찮다며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마찬가지로 채무가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오히려 이제 가족이니까 같이 그 채무를 갚아나가자고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하는데에 있어서도 지속하는 데 있어서도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지만, 나에겐 결코 필수적이지 않다.

상대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가 그 돈을 잃게 되었을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상대가 한순간에 거지가 되어버리더라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옆에서 지탱해 주는 내가 되고 싶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난 삶 속에서 이미 증명해 냈다. 나의 삶과 시간, 기회를 희생하는 대가로 말이다.


지금에 나에겐 결혼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포기하고 혼자서 살아가는 편을 강구하고 대비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을 할 수 있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며 존중하고, 서로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며 힘들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탱해 주는 내가 될 것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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