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5cm의 거대한 벽

아버지와 딸 사이에 생겨났던 거리감

이전까지 현재의 아버지를 살펴보고 생각하는 애틋한 분위기의 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분위기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제 가벼운 것에서 조금 더 깊고 무겁게 들어가 보기 위해 봐야 할 어둠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사랑과 다정함, 그에 대한 큰 애착으로 끈끈하기만 한 채, 언제나 따뜻하고 밝았던 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어둡고 멀며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던 거리가 존재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사를 오게 되고 일 때문에 아버지와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면서 큰 거리감 속에 오랜 공백이 있다가 현재는 다시 그 거리감이 좁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를 위해 이미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를 참 좋아했다.


먼 옛날이지만 아버지가 정말 많이 날 사랑해주었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껌딱지처럼 찰싹 붙어 있었고, 도망쳐서 폭 안기는 곳은 언제나 아버지 품이었으며 아버지가 움직이기 힘들게 다리에 매달렸다. 그런 어린아이의 곤란한 어리광도 아버지는 딸이라며 참 한 없이도 잘 받아주셨다. 연탄을 떼던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오래된 단칸방이었어도, 어린아이에게 무겁고 낡은 솜이불을 덮고 자야만 했어도 아버지와 함께 붙어 잘 수 있었고 아버지는 매일 손을 꼭 잡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즐거운 이불 놀이를 하며 나는 시끌벅쩍하게 크게 웃었고 매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후 사람들의 많은 축하를 받았다. 좋은 집이 좋았다. 그리고 내 방도 생겨났는데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혼자 자게 되는 건 사실 좀 많이 무서워서 이불을 끝까지 덮어쓰고 자야 했다. 꼭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서 나의 존재를 숨기려 그렇게 했다. 그것까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매일 보던 아버지는 가게가 아닌 일을 나가야 했기에, 이제는 한참을 볼 수 없게 됐다. 엄마와 단 둘이 남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도 엄마가 외출하고 그 시간이 조금 길어져 버렸을 때, 어린 마음에 텅 빈 집이 무서워 혼자 엉엉 울고 말았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매일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정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버지를 한 달에 몇 번이 아니라, 매일 볼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밝게 지내고 더 바르게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배울 점 많고 좋은 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느덧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것도 익숙해졌다. 오히려 아버지가 한 번씩 집에 오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 시점쯤 나도 마냥 어린아이는 아니어서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다가가 엉겨 붙는 건 잘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아버지도 그런 나를 쉽게 대하지 못했기에 서로 어색해버렸던 것 같다. 또, 힘들고 거친 일을 하면서 아버지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어두워졌으리라. 그때는 그저 어느새 아버지가 다정하기보단 과묵하다고만 생각해 어렵다 느끼기만 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부재에 대한 오랜 익숙함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 방에 혼자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오히려 편해졌다. 간섭과 잔소리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집에 오는 날이 어쩌다 한 번이었을 아버지의 눈엔 결점도 많이 보였겠지만, 자신이 곁에서 자주 봐주지 못하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잔소리 같은 형태의 표현과 관심을 보였지만, 아직 어리기만 한 딸은 그 뜻을 헤아리는 데 부족함이 많아 듣기 싫다며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 친밀하고 다정했던 부녀 사이에는 어느새 거리감이 자리 잡았고 그 경계의 벽은 고작 3.5cm가량의 나무 문이었을 줄 먼 옛날 행복했던 단칸방 시절엔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 나무 벽을 사이로 나는 내 방 안쪽에 아버지는 바깥 거실에 각자 떨어져 머물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가 아버지가 가장 힘들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밝고 아빠 아빠 거리며 잘 따랐던 딸은 자신을 어색해 가고 방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 이야기를 해도 듣기만 싫어하니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다. 그런 딸을 위해 그 거칠고 힘든 일을 계속하는데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어쩌면 회의감도 느끼고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수십 번이셨을 것이다. 거기에다 경기도 나빠지고 분명 적지 않게 범에도 나가는 돈이 많아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도 심했을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눌러 참으면서도 계속해야만 했기에, 결국 날카롭게 한 번씩 표출해 버리면 딸은 또 그 모습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점점 더 거리는 멀어져 가고, 큰 사고는 치지 않아도 그 힘든 일을 견딜 만큼의 훌륭한 성과나 결과는 없는 상태에서 일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이 없게 느껴지셨을까. 아마 가장의 무게와 남자라는 이유로 드러내진 않았어도 마음에 멍이 많이 들어 많이 우울하셨을 것 같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정말 책임감 하나로 포기하지 않고 그 시기를 잘 견뎌 오셨다. 하지만 많이 외로우셨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집보다는 차라리 바깥이, 사회가, 친구들이 더 편했으리라. 나는 집에 아버지는 밖에, 나는 방에 아버지는 거실에. 그런 거리감을 가진 채 한참을 지낸 게 나의 청소년기였고, 그 시기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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