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자주 오지 못하는 아버지가 보따리 형태로 들고 오는 간식거리 같은 것이 아니어도 아버지는 한 번씩 내게 선물을 주신다. 선물이라는 생색 한번 내지 않고 당연하게 주시는 바람에 나도 그게 한 번씩은 선물인지 까먹을 때가 많을 정도다.
어제는 웬 블루투스 키보드를 받았다. 거치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건 아쉬웠지만 기존의 가지고 다니기 무거웠던 블루투스 키보드에 비해서 훨씬 가벼워서 마음에 들었다. 한 번씩 아버지 앞에서 구식 노트북을 쓴 적이 있는데, 줄 때 별 말은 안 하셨어도 왠지 저런 게 딸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서 구해오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하필 키보드라는 점에서 글을 쓰는 것과도 관련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아버지도 내가 글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잘 쓰는 편인 것쯤은 알고 계신다. 어릴 적에 상장도 많이 받았었고, 남들한테 잘 쓴다는 인정을 받는 모습은 잘 못 보셨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공책을 많이 쓴다 정도는 알고 계시는 것 같다. 한 번씩 글을 보여주면 아빠는 이런 거 어려워서 몰라하면서 손사래 치시긴 하시지만 무관심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미 예전에도 그와 관련된 선물을 받기도 했고 그것이 나의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
그 선물을 받았던 때는, 아마 외출 겸 나들이도 하고 싶으셨던 건지 한 시간 거리의 서울 청계천을 가셔서 그곳에서 싼 물건들을 잔뜩 사 오셨을 때였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하시는 만큼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척 강하시다. 그래서 과소비를 하는 것 같으면 잔소리도 많이 하시는 편이고 물건을 살 때도 품질보다는 싼 가격을 선호하신다.
그런데도 그중엔 나를 위해 공책도 함께 사 오신 것이다. 물론 공책 자체가 비싸지 않은 것도 있지만 순전히 글을 쓰는 나를 위해서 사 오신 물건이었다. 비록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공책과 종류와 취향은 다른 물건이었긴 했다. 속지는 마치 어린 소녀에게나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종이의 두께도 얇았다. 그러나 아빠 마음에 들고 내가 생각나서 그 마음을 담을 손길로 내게 전해진 공책이었다.
선물 받은 공책은 사실 하나 더 있었다. 일 때문에 기술적 교육을 받으러 회사에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다른 선물과 함께 또 밴드가 달린 좋은 공책 하나를 사 오셨다. 멀리 외국까지 가셔서도 내 생각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은 마음으로 한 번 더 의미 있는 선물을 사 오신 것이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단 다짐을 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그 공책들이 생각나서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그 공책을 찼았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왠지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종이의 두께가 얇기도 했다. 그림은 아빠와 딸에 어울리기도 했지만 청계천에서 사 오신 공책은 종이의 두께가 얇아서 습작용 외에는 적절하지 않았고, 또 이미 앞부분을 습작용으로 써버렸기도 했다.
다른 공책은 두께도 적당하고 공책 자체도 괜찮았지만 어쩐지 조금 투박한 느낌이 들어 선물로 전하기에는 아쉬운 기분이었다. 예쁜 공책도 많으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아버지에 대한 글이 얼만큼 나올지도 알 수 없었기에 시중에 파는 공책을 사다 하게 되면 많이 남거나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분량적 문제로 만족스러운 책을 만들어 드리기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분량 조절과 수정이 쉬운 인터넷에 글을 올려둔다면 나중에 따로 제작하기도 훨씬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공책에 글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지만, 견고하지 않거나 투박하니 책을 선물하고자 한다면 그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좀 더 예쁘고 좋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에 말이다.
거기에다 조용한 긴 세월에 대한 보상처럼 많은 사람에게 아버지를 알리고 싶기도 했다. 그 세월 동안 아버지는 생색 같은 것도 내지 않고 묵묵히 책임을 다해 살아오셨으니까, 그런 사람의 노고는 마땅히 알아드려야 하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흔한 아버지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나의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글을 써가는 동안에 아버지가 참 대단하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라고, 이런 글을 모아 만든 책을 자식에게 선물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선물은 비싸진 않아도 그보다 값진 의미가 담긴 것들이며 그 의미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또한 나는 그 마음에 비해서 제대로 부흥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이 걸렸기에 그만큼 부흥을 하고 더 정성을 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받은 선물과 마음에 대한 보답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