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버지의 보따리

두 손에 한가득 가져오는 마음

아버지의 깊숙한 부분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고 아는 것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그것이 가장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니까.


평일엔 나도 일을 하느라 바쁘고 하루하루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느라 아버지를 잊고 지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잘 계시겠지 하며 다소 소홀해지는 것이다. 한 번씩 전화를 하긴 하지만 매일 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 주된 내용은 언제 오냐는 것 정도이니 거의 확인차 전화를 하는 것이고 간단히 무엇을 하고 있냐, 저녁은 드셨냐 정도의 간단한 내용이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도 참 짧고 간결하게 먹었거나 먹고 있다. 아버지 특유의 말투로 "테레비 보고 있지"라는 말을 하신다. 그 시간을 지나 주말쯤 되면 나는 엄마에게 먼저 묻는다. 아버지가 언제 오냐면서, 이번 주말에도 오냐면서 물으면 엄마가 그게 언제냐고 말해주거나 아직 모른다고 말을 해준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토요일 정도가 되면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거실에 짐을 풀어놓는다.

아버지가 항상 가지고 다니시는 짐가방(오른쪽)과 과자들(왼쪽)

늘 옷가지 등을 넣어 들고 다니시는 가방을 두고 가끔 다른 짐도 같이 놓으신다.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고 없는 날도 있는데, 거기엔 주로 숙소에서 남은 것들이나 받은 물건들, 과자 같은 것이다.

과자는 요새 들어 자주 가져오시는데 동료분이 사주시는 것도 있고 남은 것들도 있다. 내가 먹거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으라며 잔뜩 가져오신다. 그래서 꼭 과자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시는 길에 짐이 한 보따리인데 그건 자신의 짐이 아니라 주기 위한 짐이다.

이번에 같이 가져오신 김

이번에는 숙소에서 배달을 시키고 먹지 않은 채 쌓여만 가던 김을 잔뜩 모아 차곡차곡 모아 오셨다. 너 먹어라 하고 식탁에 탁 하고 올려 두었는데, 내가 김을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모아서 가져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이런 식이다. 생각해서 모으고 가져와서 준다. 나는 그것이 뭐라도 하나 더 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임을 안다.


아버지의 보따리는 짐가방과 이렇게 숙소에서 남은 것들이나 남한테 받은 것들만이 아니다. 짐가방 외에 다른 것을 가져오시지 않더라도 꼭 챙기는 다른 것이 있다.

아버지의 약

아버지는 고혈압이 있으시다. 그래서 약도 한 뭉치이다. 이 한 뭉치의 약을 매일 드셔야만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웬만하면 집에 잘 오시지 않으시면서도 혈압약이 떨어지면 타러 오실 정도다. 아버지는 약을 드시면서도 일을 하신다.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일주일치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도 힘든데, 약봉지에 새겨진 숫자가 69가 넘어갈 정도의 많은 약을 늘 드셔야만 한다. 아버지가 일을 더 하지 않으셔도 이 약은 꾸준히 먹어야만 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약을 드시면서 일까지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건강만 챙기는 게 나을 것이다.


약봉지를 보다 보면 일을 하셔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게 약을 먹는 일이 생겨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무거움이 마음에 얹어진다. 어릴 때는 잘 몰라서, 내 행복에만 취해 살아서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약을 타러 가는 모습도 약을 먹는 모습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 이사를 오게 된 후에 거친 일을 하게 되신 후의 모습들인 것이다. 생계를 위해 해야 했던 험한 일은 일하는 당시에만 힘든 것이 아니라 누적된 힘듦이 몸까지 서서히 망가트려서 더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외국에 비해 돈도 그렇게 많이 받지도 못하는 거니까. 그래서 사람들도 천대하진 않더라도 일자리로서는 웬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뛰어들었다. 그래도 무책임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라는 건 자랑스럽지만, 그것이 아버지에게 불편과 힘듦을 주기에 마음 아픈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짐가방과 약봉지 정도로 자신의 짐은 간단하지만, 식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챙겨주려는 짐은 한가득이다. 아버지의 보따리는 꼭 아버지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이전 03화2. 작은 실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