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침이 울린 경종
나는 본가에서 부모님께 함께 살며, 주 5일제의 직장을 다닌다. 엄마는 하루에 짧게라도 매일 보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못하다. 아버지도 일을 하시는데, 현장에서 하시는 힘든 일인 데다 집을 떠나 객지에 머물며 숙식하시기 때문이다. 거리도 멀고 일의 일정에 따라 집에 못 오는 날이 많다 보니, 평균으로 따진다면 일주일에 주말 정도 보거나 한 달에 겨우 몇 번 보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부터 아버지가 이렇게 일을 하셨던 건 아니었다.
9살이 되던 해, 개발사업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구멍가게를 정리하고 떠나야만 했다. 그래도 그 작은 구멍가게를 착실히 잘 운영하셔서, 우리는 가게에 방 한 칸 딸린 작은 집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조금 더 커진 집에서 걱정이 없을 줄만 알았지만 이때부터 아버지는 거친 현장에서의 일을 시작하셔여야만 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9살이 되던 해까지 아버지는 가게를 운영하셨고 다시 가게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면 커가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일하기 위해 뛰어들어야만 했던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거친 현장에서, 가족과 떨어져 숙식을 하면서까지 일을 하신지는 정말 오래되었다. 미성년자이던 시절은 물론, 사회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그 일을 하시며 아버지는 쉬지 않으셨다. 나는 그것이 가족의 부양을 위한 아버지의 큰 책임이었으며, 그 긴 세월 동안의 꾸준한 근속으로 아주 훌륭히 증명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진정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항상 늘 멀리 떨어져 얼굴 보는 날이 손에 꼽히게 살아왔지만, 요새는 그래도 아버지가 주말 정도는 집에 머물며 쉬기 위해 금요일 저녁쯤이나 토요일 오전이나 오후에 일정하게 집에 오신다. 그것만 해도 반갑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월요일 새벽 일찍 바로 일을 다시 가시기도 하고 하루 이틀 정도 후에 가신다. 집을 떠나 멀리 다시 내려가시는 것이다.
다음 날 일을 가지 않아도 되는 날엔 아버지는 내가 잠이 들기 전까지 늦게 까지 거실에서 tv나 영상을 보시기 때문에 작은 소음을 들으며 먼저 잠에 들지만, 그렇게 내려가시기 전날 밤이면 거실은 유독 조용해서 작은 소리가 잘 들린다. 일찍 일어나셔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에 드시는 것이다. 이 때도 아버지의 잠자리는 거실 소파이다. 그렇게 거실이 나보다 먼저 조용해지는 밤이 되면 방문이 닫혀 있어도 작은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몇 해전부터인가, 그 거실의 적막이 한 번씩 깨지는 소리가 생겨났다. 바로 아버지의 기침소리이다. 그것을 처음 듣기 시작할 때만 해도 흔한 잔기침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깜짝 놀라 걱정이 될 정도로 크고 심해졌다. 수면 중에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듯한 그 기침소리는 언젠가 찾아올 이별이 생각보다 그리 머지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예사롭지 않았다.
새벽에 깨어 있을 때 듣는 여러 번의 기침소리에 나는 위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나한테 자꾸 경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근속을 하신 아버지였기에 나는 아버지는 언제나 계속 있어줄 거란 생각을 해 온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고, 그건 착각이라고 내게 경고를 하던 건 아버지의 기침이었다.
그 기침이 나를 불안하게도 했지만, 아버지의 무상함을 알게 했고 조급한 마음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더 늦어서는 안 되겠다는,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조급함을, 외면해 버리면 큰 후회로 남을 것이라는 경종을 울렸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이제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고 부양하고 싶다. 일 이제 그만하시고 건강 챙기시라고. 하지만 막상 당장이라도 아버지가 일을 관두시게 된다면 사실 많이 막막하다.
세 식구의 생활비 감당은커녕, 내게 미처 다 말씀하지 않으신 빚까지 모두 감당하기엔 내 벌이로는 아직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만으론 아버지가 쉬셨으면 하다가도 아직은 턱 없이 부족한 내 경제능력으로 인해, 나는 차마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어 마음이 늘 무겁다. 나의 부족으로 아버지가 악화되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만 하는 심정은 때로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다른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떠올려 보니, 아버지는 단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경제적 부양을 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로서 사랑으로 많은 것을 내게 주었고 나는 자식이라며 거의 받기만 했다.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또 많은 것을 되돌려 드리지 못하고 살아왔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을 아버지만을 위해서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아버지만을 위한 글, 딸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써보리라. 더는 미루지 않으리라. 그것으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말이 없어 고독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라도 알아드리고 싶다. 이제는 마음속에만 꼭 쥐고 있던 것을 내보여야만 한다. 더 늦기 전에, 언제나 계속 존재할 것만 같은 아버지가 아니기에 이제는 글을 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