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럴 필요가 없었던 건데
조급함은 때로는 평소와 다른 어색함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왜 내내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나 싶은 행동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결심하고 행동을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만 작은 실랑이가 생기기도 했다.
아버지를 소재로 한 글을 쓰겠다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일단 방문을 열고 거실에서 홀로 tv를 보고 계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나서 질문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의미 있는 물건이나 아버지를 나타내는(상징하는) 물건이 있냐고 먼저 물었다. 그 말에 아버지는 금방 모른다는 대답을 하셨다.
나는 그게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만 같이 느껴서 마치 보채듯이 왜 그런 게 없냐면서 다시 말씀을 해달라 했고 이에 아버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고 다시 tv로 눈을 돌리셨다.
결심이 무색하게 작은 실랑이를 끝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tv 소리가 멎고 아버지의 쿵쿵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나가셨나, 어디 가시나 해서 조금 있다가 천천히 방을 나와 현관문을 열어 보니 마당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 걸려오는 전화를 호쾌하게 받으면서 주변 사람을 챙기며 즐겁게 통화하는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한 가지 마음에 밀려오는 것이 생겨났다.
그래, 아버지는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자신보다는 바깥으로 주변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다른 이들을 챙기고 위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기에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안다고 한다한들 그것이 흐릿해질 만큼 자기 자신을 챙길 수 없이 살아온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미치자, 나는 밝고 성실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음 아프게 다가와서 그만 더 못 보고 방에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애초에, 내가 더 잘 알았더라면 될 일이었다. 실랑이할 것도 없었고 캐묻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탓이나 잘못이 아니었다. 나의 소홀함의 문제였고 뒤늦음의 문제였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직접 묻지 않기로 하고 스스로 찾아보기로 했다. 애정이 있다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보고 알아보려 하게 된다. 나는 그만 너무나 익숙해져서 아버지에게는 그러지 못해 온 것이었다. 남들이나 이성에게는 잘도 했으면서. 아버지 자신도 잊고 살던 모습을 발견해서 보여주는 것 역시 내가 해야만 일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