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춘기 시기에는 방 문을 닫고 방에 틀어 박혀 있는 모습이 생겨나지만, 나는 그 시기가 훨씬 길었을 뿐만 아니라 사춘기 시기를 한참 지난 현재까지도 집에 있는 날이면 꼭 방 안에 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들이 많다. 사춘기 때, 발현한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어느새 정착해 쭉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인데, 사실 그 편이 이래저래 편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방이 어질러지고 조금 있다 해야지 하며 미루기 십상인데, 방문이 열려 있으면 그 상태를 보고 부모님이 방이 더럽다며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급하게 할 일이 있어도 청소부터 해야 하다 보니 피곤해서 문을 닫고 지내게 됐다.
또 문이 열려 있다 보면 중요한 물건인지 모르고 엄마가 방이 좁다며 몰래 갖다 버린 적도 한 번씩 있어서 마치 투쟁을 하듯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사춘기 시절에는 방문을 닫고 지내긴 했어도, 방문 밖으로 지금보다는 잘 나왔던 것 같다. 한창 좋아하는 드라마에 빠져 살았을 때인데 tv는 거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몇 시간 머물다가 다시 방에 들어가곤 했다.
이때, 아버지는 일을 하시느라 집에 안 계셔서 알게 모르게 엄마를 보는 시간도 늘어날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객지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보는 시간이 늘었을 것 같다. 물론 한 번씩 집에 오신 아버지는 내가 tv에 너무 빠져 사는 게 걱정되어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말을 유독 많이 하시곤 했다. 물론 방에 들어간다고 공부를 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글을 쓰며 노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나와서 tv를 보는 것보다는 뭐라도 할 테니 낫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방에 들어가라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나도 그 말에 익숙해지고 또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정당화를 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점차 드라마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소모되어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드라마를 멀리하기 시작하자 방 문밖으로 나가는 일도 대폭 줄어들었다. 방을 나가게 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고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으니 굳이 나가지 않게 된 것이다. 아버지도 방에서도 뭘 하라고 많이 하셨기도 했기에 방을 나가지 않는 이유는 많아졌다. 그래서 나가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래도 같은 집에 있고, 어쩌다 한 번 보는 딸이 방에 자신을 꽁꽁 숨기고 보여주지 않아 궁금하기도 하고 한 번씩은 서운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는 비록 거리감이 있긴 했어도, 내가 방에 틀어박히다 시 피한 건 아버지와의 거리감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셨대도 할 말은 없다. 이 시기의 나는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항상 현관문 사이에 중문 같은 미닫이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고 열리며 엄마보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짐 소리가 난다. 그때도 방에서 바로 나가지 않고 있으면 방문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아빠가 왔는데 나와서 인사도 안 하냐?"
문장만 보면 약간 권위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인데, 아버지는 표현은 권위적인 것처럼 해도 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장난치듯이 약간은 서운하다는 듯이 말을 한다. 나는 그게 아빠 나름의 닫힌 문을 향한 두드림이자 매번 아버지가 먼저 내미는 손길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거리감이 있어도 아버지도 그 거리감이 계속되길 또 그대로 더 멀어지길 원치 않았기에, 과묵하심에도 한 번씩 어려워진 딸을 향해 말을 건넸다.
이제는 드라마도 보지 않아 더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게 된 딸을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도 하셨을 것이다. 그 와중에 뭔가를 챙겨주고는 싶은 마음은 있었기에, 아버지는 고민하셨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닫힌 방문을 향해 가장 많이 하신 말이 있었다.
"딸, 나와서 이것 좀 먹어라."
"밥 먹어라. 밥 안 먹냐."
그럼 나는 그때 아버지가 손수 깎아 놓은 사과나 참외 따위를 한 두 조각 집어가며 금세 방에 들어가 버린다. 정말 아버지가 한 말 그대로 먹고만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한 게 아니라 그걸로 이야기도 하고 얼굴도 좀 보고 싶었을 것인데, 딸은 정말 철이 없었고 자기중심적이라 아버지는 마지못해 아쉬운 만족을 하셨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가난하고 배고픈 시기에 태어나 많은 고생을 하셨어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이 깊게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딸과 같은 주변 사람에 대해 꼭 챙겨야 하는 요소였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음식을 잘 챙겨 먹길 바라는 마음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으레 우리가 인사와 안부로 밥을 먹었냐는 에둘러하는 표현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으레 걱정하면서 왜 밥을 안 먹었냐는 말이 따라오는 의미의 관심 표현, 그걸 아버지는 내게 하고 계셨다. 단절된 듯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단절을 끊기 위해, 그 너머에 있는 딸을 불러보는 서툴고 어색한 아버지식의 관심과 애정표현이었다.
아버지는 아마 외로웠던 와중에도 아버지라서 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테지, 딸인 나는 그저 잡기만 해온 것이다. 먼저 내밀지는 못하고 말이다. 이 것은 지금까지도 하고 계신 아버지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때보다는 거리가 가까워졌으니 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전한 것을 보면 확실히 여전한 관심과 애정표현이다.
이제는 말 안에 있는 의미를 헤아릴 줄 알아서, 그렇게 나와서 가져갈 때 꼭 한마디라도 더하고 몇 분이라도 더 있다가 들어간다. 과일이 맛있다거나 아버지가 과일을 참 잘 깎는다던가, 다른 이야깃거리를 무엇이든 조금 더 하고 머물렀다 들어간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이걸로 아버지는 그때보단 조금이라도 더 만족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서툰 딸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조금씩 더 잘하려 해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