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대 초중반만 해도, 여전히 남녀의 역할의 구분이 심했고 특히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를 다녀오고 나서 이미 틀어진 TV에서 흘러나오던 말 중에서도 그 분위기를 반영하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표현을 잘 못하고 무뚝뚝한 게 정말 제대로 한국 남자인 거죠."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감정, 특히 약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암묵적인 제한이 심했고, 경제 활동은 거의 분담해 도맡는 가장으로의 역할이 강요되었다. 과묵하고 표현이 서툴고 가족을 위한 경제적 희생을 하는 그 모습들을 한국 남자라고 지칭할 만큼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요구되고 형성된 획일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당시의 우리 아버지도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 남자는 어때야 한다 혹은 남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말들이 나오는 때는 보통 일이나 돈에 대한 것, 의무,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한 것이었기에 확실히 사회 분위기에 물들어 계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술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그런 감정적 억압으로 인해, 그나마 술을 핑계를 삼아 해소하고 실수를 해도 오히려 같은 이유에서 관대하게 봐주는 사회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미 자세히 말했었지만, 그러니 아버지도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고 하시다가 술을 마시었을 때만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은 슬픈 것이었다. 사회의 단위로 형성된 거대한 분위기야 개인이 없애거나 바꿀 순 없는 것이지만 가정 같은 사회의 바깥에선 그것이 해소되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아버지의 감정 해소법은 주로 술인 듯 보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상태일 때도 한 번씩 나는 그 모습을 보곤 했다.
주말 저녁, 한가롭다 싶은 시간대의 8-9시쯤엔 다음 tv 프로그램을 하기 전 광고를 하는 시간 동안 채널을 거쳐가다 잠깐 보게 되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그 음악 프로그램은 신세대의 요즘 유행하는 가요보다는 세월이 지나도 두고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곡들을 중년 가수들이 나와 부르는 노래다.
마침 잠깐 보게 되는 그 시점의 타이밍인 것인지, 원래 그 프로그램이 그런 류의 노래를 주로 선곡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슬프거나 삶의 애환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거실에서 평소에 조용히 TV를 보시는 편의 아버지는 애환이 묻어나는 노래가 나올 때면 그 노래 가사를 소리 내어 따라 부른다. 그때의 아버지는 분명 술 한자 먹지 않은 상태임에도 목소리에 구슬픔이 잔뜩 묻어난다. 몇 마디를 따라 부르고선 노래가 끝이 나면 별 일이 없었다는 듯 조용히 채널을 돌리신다. 그래도 그 여운이 남아서 나는 방에 들어와서도 그 모습으로부터 술을 드셨을 때 한 번씩 보게 되는 그림자의 모습을 또 보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가 집에 머무실 때면 TV를 정말 많이 보신다. 다음 날 일을 가시지 않으면 늦은 시간까지 보는데 소리를 가장 작게 해 놔서, 조용한 밤에는 그게 백색소음처럼 느껴지고 그걸 들으면서 나는 먼저 잠에 들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tv를 본다기보다 틀어 두고서 잠에 드는 용으로 활용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에 잠에 드신줄 알고 거실에서 나와 tv를 끄기라도 하면 눈을 감고 있던 아버지가 눈을 뜨며 왜 끄냐면서 다시 키라고 하신다. 그렇게 tv소리가 없으면 잠에 드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tv가 감정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거고, 또 다르게는 tv 말고는 편하게 잠도 잘 들 수 없다는 마음 상태라는 소리가 든다. 거기엔 걱정도 있고 외로움도 있고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이 얽혀 있으리라.
언제 일을 하다가 내가 아버지께서 tv를 많이 보신다고 이야기를 하자. 엄마뻘쯤 되는 직장동료분께서 그걸 듣더니, 사실 tv를 많이 본다는 건 심심하다는 뜻인 거라는 말을 내게 하였다.
재밌어서가 아니라 무료하기 때문에 많이 보게 된다는 그 말을 듣고서 그건 사실 재미없는 삶에 대한 아버지의 헛헛함의 모습이었구나 싶어 별생각 없이 말을 하던 나는 허를 찔린 듯, 순간적으로 말을 잃고 말았었다.
마치 술처럼 아버지는 tv를 볼 때에만 웃고, 슬픔은 노래를 따라 부를 때만 드러내신다. 술처럼 tv를 핑계 삼아 안고 있던 감정을 흘러 내보내시는 것 같았다. 밤 중 작게 흘러나오는 소리와 작은 불빛에 비치는 아버지는 가끔씩 작아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핸드폰과 인터넷이 많이 발달해 tv보다는 영상을 많이 보시다 잠에 드신다. 아버지의 작은 낙. 그걸 보다 보면 다른 행복이 있다면 어쩌면 아버지는 저런 모습이 아닐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런 수단을 핑계 삼지 않아도 드러내 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내가 해주어야 하는 것일 텐데, 하는 마음 아픈 생각이 들며 마음이 또 무거워지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