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리, 이제 다시 그 거리감을 좁혀가요
아버지와 딸의 멀어졌던 거리 좁히기
by 언 초원에서 피어난 꽃 Oct 10. 2022
이사와 바뀐 일자리, 어려워진 경제 사정, 사춘기 등을 많은 고비가 되는 이유들로 비록 아주 어렸을 때와는 다른 먼 거리가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서툴지만 무관심하진 않던 표현과 노력들 그리고 나도 커가면서 점차 깨닫는 것들로 인해 아버지와 나 사이는 더 이상 벌어지지만은 않고 최소한 그 거리가 유지되며 좁혀질 일만 남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서로 마음적으로는 이대로는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그 필요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결정적인 전환점은 없던 때였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도 각자의 생활대로 지내면서 예전만큼 큰 갈등이나 부딪힘은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그저 서로 말은 안 해도 마음에 걸리는 무거움을 안은 채로. 그러다 결국, 그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여전히 왕래하시며 사이가 돈독하시고 즐겁게 잘 노시기 때문에 한 번씩 집에까지 친구들을 초대하신다. 술을 드시고 기분이 좋아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거실은 정말이지 엄청 시끄럽다. 그래도 밤이 깊으면 피곤에 못 이겨 결국 잠에 들어 버리게 되는데,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은 갑자기 잠에서 깼던 것이다. 아마 잠을 깨울 만큼 어떤 큰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인 것 같았다. 아무튼 비몽사몽 한 채로 여전히 시끄러워 다시 자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잠에 취한 채, 덜 깬 피곤한 정신과 몸으로 눈만 깜빡거리고 누워 있던 새벽이었다. 그렇게나 즐거우신가.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만나면 재미있긴 하겠다 같은 생각 따위 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시끄럽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웬일인지 갑자기 떠들썩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말하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때는 아마 내가 미성년자를 지나 성인이 된 지 몇 년 안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학생 때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던 것이었는데, 내가 청소년 때, 그 나이 아이들이 할 법한 투정이나 사달라고 조르는 짓을 안 했다는 것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만해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외투나 패딩에 대한 유행이 열풍처럼 불어 그 어린아이들이 값비싼 메이커 패딩을 걸치고 뽐내고 다니는 허영이 심했다. 당연히 나는 아버지의 힘듦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 집이 어려워 필수적인 교통비를 받는 것 외에 필요한 물건인, 지우개 하나 문제집 하나 사는 것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 그런 고가의 물건에 대해선 눈이 가면서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관심조차 갖지 않으려 했고 당연히 말은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셨듯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 혼자만 마음에 담고 있고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을 눈치채고서도 따로 드러내지 않고, 잠에 들어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때에 마음 편한 친구들에게나 겨우 그 이야기를 꺼내던 것이었다. 어려웠던 시기에 그 흔한 비싼 패딩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무척이나 고마웠다는 말을, 속 깊은 딸이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거기에 미안한 마음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는 늘 부족한 것만 지적하고 칭찬 한 번 해주지 않는다며 아버지에게 볼멘소리로 한 번씩 말한 적 있었을 정도로 아버지는 내 결정만 보려 한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도 속이 깊어 그걸 알고 있었구나. 그게 슬프면서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저런 사람이 내 아버지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 생각과 함께 졸리지만 마음이 찡해져서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잠에 들었던 밤이었다.
그러고 나서 사는 게 바빠 그때를 잠시 잊고 지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행히 옛 추억으로 다시 떠오르면서 이제는 생각만 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멀어진 거리를 다시 좁혀 가까워져야겠다는 결심을 조용히 마음에 품었다. 이제는 행동으로까지 옮겨서 구체적인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겠다면서.
아버지의 좋은 면을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아버지를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봐야겠다. 어린아이였을 때만큼 가까워질 순 없대도 서먹할 만큼 떨어져 지내는 건 이제 끝을 내야겠다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