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나라도 더.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아가는 일

결심한 뒤로부터 행동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행동이 생각보다 느린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행동을 할 때쯤이 되면 언제나 생각했던 시기보다 한참이 지나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동안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빠르게 행동하기 힘들어져서가 아닐까.


그래도 해야 했다. 속도는 느려도 나아가고 헤매어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되는 거였으니까.


ㅁ 거리가 멀 때는 따로 떨어져서 각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니, 반대로 거리가 가까울 때는 함께로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것이므로 함께인 시간을 늘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가장 쉽고 간단한 건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식사를 하는 일이었다. 귀찮아서 저녁을 거르거나 따로 혼자 먹는 일이 많긴 하지만 같이 밥 먹는 걸 자체를 불편해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아버지와 거리가 있을 때도 밥은 같이 잘 먹었고 그때가 그래도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때였다.

아버지가 밥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면 나는 그걸 받아 대화해보기도 하는 식으로 이미 해봤고 해오고 있던 것이니까, 그 시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또 많이 늘리면 될 일이었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아버지도 일정하게 주말에 집에 머무르시게 돼서 같이 밥 먹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또 아침이야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나 할 일로 어긋나지만 느긋한 주말의 점심은 겹칠 수밖에 없는 때였으니까.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이 느긋한 점심시간엔 뭘 먹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와 마침 같이 있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꼭 라면을 먹게 되었다. 웃긴 건 집에 먹을거리, 반찬거리가 있더라도 말이다.

물론 한 번씩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한다. 내가 할 때는 간단한 파스타나 치즈를 올린 양식류의 음식을 하고 아버지가 할 때는 볶음밥이라던가 다른 한식류를 맛있으니 먹어보라며 해주신다.

하지만 마땅히 재료도 없이 간단히 때울 땐 역시 사다 놓은 라면이다.


특별히 라면이 좋다기보다는 그냥 아버지랑 같이 먹을 수 있어서 같다. 아버지도 나도 각자 라면은 많이 먹어 왔을 텐데 말이다. 이때 많은 대화는 없지만 그래도 같이 밥 먹는 기억을 쌓아 추억도 하나 더 쌓을 수 있는 것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같이 거실에 마주 앉아 먹다 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짜장라면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직접 끓여주시던 추억도 함께 생각이 나서 평범하지만 소소하게 좋은 시간이 된다.


요즘 들어선 함께하려는 시간을 늘리는 것 외에도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문득 핸드폰의 사진들을 정리를 하다 보면, 아버지의 사진 같은 게 정말 적구 나하고 느낀 후로, 주기적으로 정리하면서 확보된 용량에 아버지의 사진이나 영상을 쌓는다.


이건, 단지 나의 깨달음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고, 외부로부터 여러 자극을 받다가 비로소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별생각 없이 하고 있던 인터넷에서 어떤 이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조언 형식으로 올려 둔 걸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다.


"부모님 사진이나 영상 최대한 많이 찍고 남겨놔. 왜 그런 줄은 알지?"


굳이 상세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나이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노래 같은 걸 듣다가도 가사 중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 아빠와 함께할 시간도 줄어들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 어서 성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참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생각만 하던 것들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 해지는 것만 커졌다.


결국 그런 식으로 자극받아 누적된 것이 쌓이다 못해 행동으로 뭐라도 하게끔 터져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전보다 아버지의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강아지와 놀아주는 모습이나 텃밭을 가구 거나 그저 거실에서 TV를 보는 모습같이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까지도 말이다.


한 번씩 그렇게 조금 떨어져서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담고 있을 때면,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기분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는 아직 어린 나에게서 희망찬 미래를 보며 흐뭇해했을 것이지만 나는 점차 나이가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보며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며 먹먹한 모습으로 그래도 아직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겠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건 나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 그리움의 시간을 버티려 나는 하나씩 아버지의 모습을 붙잡아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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