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장 가까운 20분
아버지와 함께하는 20분의 출근길
by 언 초원에서 피어난 꽃 Oct 12. 2022
아버지와 확실히 같이 있는 때는 일주일 중 주말이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버지 직업의 특성상 날씨가 궃다 보면 평일임에도 일을 나가지 못하실 때가 있다.
그런 평일이면 집에 계시게 되니, 한 번씩 직장까지 아버지가 출근할 때 태워다 주시곤 했는데 그게 어느새 고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덕분에 아침에 7시 40분에 급하게 준비해 나가지 않고 8시에 다소 여유롭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할 수 있을 때 좋은 것은 시간적 여유와 몸의 편함만은 아니었다. 이걸 핑계 삼아 아버지와 둘이서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 눈엔 나이가 있는데도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간다며 안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더 가까이 그리고 자연스레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언제나 계속될 것 같은 이 시간 역시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런 식의 시선은 아무래도 더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차를 타고 출발을 하게 되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교통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다. 월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히네 같은 이야기들을 말이다. 거기까지는 사실 어색함에 던지듯이 하는 말에 불과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을 이야깃거리에 삼아 보는 것이다. 그래서 큰 의미는 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말은 솔직히 생판 처음 보는 남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도 말을 꺼내면서도 이것만으론 안 된다는 생각에, 다른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출근길을 핑계로 아버지와 좀 더 같이 있고 그 기회를 잘 살려 대화 시간이라도 늘리려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 거리감을 좁히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선 단지 물리적으로 가깝기만 한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집에 있는데도 그렇게 큰 거리감이 생겨나고 좁혀지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거리감이란 심적인 거리가 좁혀져야 하는 것이고 친밀감, 친근함, 접점이 있어야만 하는 것을 뜻했다. 따라서 별 이야깃거리가 안 되는 것들 말고,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대화에 적합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출근 길마다 지나가게 되는 사거리에는, 기존의 땅에 도로를 내느라 경계를 짓기 위해서인지 귀퉁이에 벽돌벽을 쌓아둔 곳이 있다. 그 경계의 좁은 안쪽에 나무 하나가 부자연스럽게 있는 것을 몇 번 보며 의아했다. 거기에다 그 나무엔 오색천이 잔뜩 감겨 있어,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라는 생각만 한 채 지나쳤는데, 하루는 그걸 아버지에게 물어봄으로써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나의 물음에 신호대기 중이었던 아버지도 그 나무를 인지하고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무에 대해서 이미 알고 계셨는지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저런 나무는 무당들이 신을 모시는 나무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는 거라고 하셨다. 아마 훨씬 옛날부터 있었을 거라면서. 그래서 아무리 도로를 내고 개발이 되더라도 건들면 큰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함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건들지 않아 저런 형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길게 답변을 해 주셨다. 꼭 모르는 걸 물어보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듯이 말이다.
이야깃거리로 괜찮을까 싶었던 사소한 소재로 생각지도 못하게 아버지와 평소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내가 잘 모르는 옛 것에 대해선 확실히 아버지가 잘 아셨고 술술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몰랐던 아버지의 지혜와 앎을 듣는 기분이었다.
또 한 번은, 조용히 가다가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데, 이동을 하는 중에 대중교통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자지러지는 어린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상당히 짜증이 났던 기억이었다. 물론 애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꾹 참는 편이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기억이 출근길에, 옆에 아버지가 있을 때 떠올랐던 것이었다 보니 문득 다른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나는 애였을 때 어떤 모습이었까? 나도 저렇게 시끄러워서 아버지를 많이 곤란하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이였을 때의 모습을 전부 보고 겪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물었다.
"아빠, 나 어릴 때 말 잘 들었어?"
"응. 너 그래도 순했어. 울어도 우유만 물려주면 금방 그치고."
"나 키울 때 정말 고생 안 했어? 정말로? 대중교통 같은 데서 막 소리 지르고 식당 같은 데서 위험하게 뛰어다니지는 않았어?"
"응. 너는 얌전했어.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얌전히 잘 앉아 있고."
혹시 아버지가 안심하라고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은 다행히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아버지를 애먹이고 곤란하게 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그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말이 나를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버지가 또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올랐는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너는 오히려 식당에 갔을 때, 옆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들한테 가서 거기 어른들한테 귀여움이나 떨고 음식이나 잘 얻어먹고 왔지."
그 말을 듣자마자 기억에도 전혀 없고 상상도 못 한 내 모습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겨서 웃음이 터져 버렸다. 지금의 나와 너무나 다른 스스럼없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억하고서 흐뭇해하셨다. 아버지에겐 그런 모습이 참 예쁘고 귀엽게 느껴졌다는 듯이. 만약 내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나의 그런 모습도, 그걸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도 알지 못했겠지.
그래서 그날의 물음도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기분 좋은 출근길과 기분 좋은 추억 하나를 더 쌓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길을 함께하는 20분 동안 어색하고 오늘은 무슨 말을 꺼내는 게 좋을지 고민도 많이 하게 되지만, 그래도 아빠와 단둘이 20분만이라도 함께 같이 갈 수 있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즐거웠다.
나는 이 대화에서 어쩌면 여태껏 혼자 관찰하거나 한 번씩 드문드문 묻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단순히 몰랐던 정보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깊숙이 보고 알게 되는 것이다.
출근길도 그렇지만, 한 번씩 9시까지 밤늦게 야근을 할 때면 아버지에게 미리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차 시간이 맞지 않아 밖에서 30분을 꼬박 기다렸다 타느라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할 일 없이 9시 20분쯤에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야근을 할 때는, 밤도 깊고 나도 피곤해 말을 거의 하진 않는 날도 많지만, 일부러 아버지가 즐겁길 바라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중 재미났던 일화를 이야기하거나, 아버지가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즐겁게 떠든다. 집까지 가는 20분이 덜 지루할 수 있도록 말이다.
편하고 시간도 단축되는 만큼 한 번씩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아버지의 수고와 존재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아침에 출근할 때와 야근할 때는 한 번씩만이긴 하지만, 그렇게 아버지 차를 타는 것으로 나는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기도 했다.
말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짧은 20분 남짓의 웃고 떠드는 즐거운 대화를 하나씩 많이 쌓았고 요즘도 쌓아가고 있다. 아마 나중에 그리워지는 순간 속에는 이 20분의 시간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중에 아버지가 떠나고 나시면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으로, 찍어 두었던 사진이나 영상과 함께 아버지 차의 블랙박스 속 대화들 역시 돌려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함께 나누었던 즐거운 추억의 그 대화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