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산소

나는 친할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존재로의 사실 정도는 알고 그 모습도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할아버지와의 추억은커녕 기억조차 하나 없다. 살아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사진을 보더라도 할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면 그 얼굴이 흐릿한 모습일 뿐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적부터 그것이 늘 아쉬웠다.

개인적인 아쉬움뿐만 아니라, 내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과 추억을 함께 좀 더 잘 나눠줄 수 없기 때문이다.


친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나를 어떻게 대하고 바라봐 주셨을까. 그래도 손녀니까 많이 예뻐하셨을까? 할아버지는 무엇을 좋아하셨을까? 어떤 성격이셨을까? 궁금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쉽게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간단히 대답하였다. 잔소리는 심했는데 손지검은 안 하셨다는 말을 했다.

TV를 보다 보면 옛날 할머니들이 인터뷰할 때 남편인 할아버지들이 참 나쁘게 했다, 잘못을 많이 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걸 알 수 있었는데, 거기엔 폭행이나 바람 같은 것들이 많았고 그게 그 시대의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몹시도 팽배한 모습이었던듯하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가 하신 대답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그런 나쁜 일반적인 모습은 없었다는 의미로 하신 게 아닐까 싶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어도 아버지를 보면 그건 확실한 것 같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니 말이다.


비록 할아버지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아는 것은 부모님뿐이지만,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산소가 있어 찾아 뵐 수도 있다. 사후의 모습으로서 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할 뿐이었다.


산소라는 건 무덤이지만 으스스하거나 꺼려지진 않았다. 오히려 정겹기도 했는데 그건 산소가 위치한 산과 주변 자연환경을 좋아해서였던 것 같다.

우선 산소가 있는 산은 차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 입구부터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차를 세운 뒤 입구에서 걸어 들어갈 때 산길을 걷게 된다. 언덕이 져 있고 왼 편엔 작은 개울이 흐르는 자연적이고 예쁜 산이다.

저벅저벅 오래전부터 쌓여왔을 낙엽길을 밟고 주변 나무가 내뿜는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고개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산소가 보이는 입구에 도달을 한다. 그리고 나면 동그란 무덤 형태의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간단히 제사를 위해, 돗자리부터 깔고 무덤 앞 돌상에 사 온 과일 등을 약소하게 깔고 소주와 담배를 준비한다. 그 후 돗자리 위에서 절을 한 뒤에 잔에 술을 담은 뒤 빙빙 돌려 할어버지의 무덤에 뿌리고 담배로 불을 붙여 무덤에 꽂아 두었다가 빼낸다.

어릴 때, 왜 그런 걸 하는 거냐고 묻자 어른들은, 할아버지도 술도 잡수시고 싶고 담배도 태우고 싶으실 테니까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왠지 그게 여전히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위해주는 후손들의 마음인 거 같아서 마음이 되게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 모습을 어릴 때 볼 수 있던 건 정서 형성에도 상당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렇게 인사 같은 제사의식이 끝이 나게 되면 상을 치우면서 음식들을 나눠 먹고 절을 하던 돗자리에 앉아 즐겁게 떠들다 시간을 보내다 가는데, 그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아버지는 아쉽다듯 그래도 좋았다는 듯 항상 무덤을 한 번 더 돌아보며 인사를 하고 가셨던 것 같다.


"아버지 이제 갈게요"


이번에도 왔다 가고, 다음에도 다시 또 오겠다는 의미를 담은 그런 인사를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없듯이 잘 감춰왔던 그리움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아진다. 아버지도 가족의 버팀이 되시느라 조용히 그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며 내색하진 않으셨어도 많이 그리우시겠지. 말하지 않았기에 더 덜어지지 못했을 그 무게를 감히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할아버지 산소와 관련해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몇 년 전, 할아버지의 산소의 이장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한사코 반대를 했다. 절대 안 된다고, 이장은 물론 화장으로 바꾸어 모시는 것 역시 안된다고.

그때는 관리적 측면에서 산소보다는 화장도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뉴스를 보고서 어쩌면 아버지가 이런 걸 예상하고 반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 잘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홍수가 났을 때, 어느 장례문화원의 직원들이 다시 살 수 있는 전자기기만 챙기느라 소실되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유족들의 유골은 무책임하게 방치해버려 결국 그 유골들이 빗물에 흘러가버리거나 마구 뒤섞이는 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당해버린 일이 있었다.

만약 그 직원들이 유족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렸다면 그렇게나 무책임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의 몸과 재산만을 중요시하는 그 이기적인 꼴들, 소중한 사람을 맡긴 사람들의 마음이나 입장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그 무책임한 모습들은 정말이지 혐오스러웠을 지경이었다.

관리의 어려움이나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만약 바꾸어 모시게 됐다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생길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다행이면서도 아찔했다


여하튼 아버지는 계속 안된다고 하시면서 못을 박으시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여 강조했다.


"아버지 산소를 왜 옮겨, 거긴 내 힐링 장소야, 나는 거기에서 힐링을 하고 온다고."


아버지가 명절이 아니어도 한 번씩 산소에 가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고 새삼 아버지가 산소에서 발길을 돌릴 때,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듯 인사를 하던 모습에서 묻어나던 그리움이 겹쳐 떠올랐다.

그래, 할아버지의 산소는 단지 의무만을 가지고 자손으로서 관리를 할 뿐인 곳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리운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곳이다.

가족의 버팀이 되어야 했던 아버지였기에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그리움으로 찾아가는 장소였던 것이다.


지치고 힘든 삶과 시끄럽고 복잡한 곳에서 떨어진 예쁜 산의 예쁜 낙엽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비록 생전의 모습은 마음속에만 있대도 무덤이란 형태로 존재는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며 자신을 맞이 해주니, 그 여전함에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반가울까. 떠났지만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그 모습이.


거기에 무덤을 둘러싼 조용하고 한적한 자연까지, 아마 아버지가 tv나 술 같은 물질적인 것 없이도 온전한 정신으로 가장 마음 편히 쉬었다 올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아버지의 말대로, 과장 하나 없이 아버지는 그곳에서 치유를 하셨을 것이다.

특히나 한창 외로우셨을 때도, 아버지 가슴속에 담겨 있을 추억과 그리움으로 많이 찾아가셨겠지. 그리고 치유받고 오셨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마음과 어깨에 얹힌 무게가 많은 부모나 가장이 아니라 자식, 아들로서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기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산소는 아버지가 떠난 아버지를 다시 보러 가는 곳이며 그래서 많은 짐을 내려놓고 쉬다 올 수 있는, 아버지의 소중한 안식처일 것이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보고 싶고 소중할 테니 말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다 보면 그 심정을 알 것 같으면서도 그 모습에서 나의 미래 모습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할 딸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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