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한 가지 면으로 사람의 성격을 단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의 성격 안에는 조금씩 다른 면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입체를 이루는 각기 다른 면들은 같은 계열의 색처럼 구분이 될 정도로 다르면서도 한 종류로 묶을 수 있을 만큼 비슷하기도 하지만, 가끔씩 정반대의 면이라도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환경적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는 등 다양한 이유로 형성된 것이겠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 사람이 정반대에 가까운 면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일찍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어릴 때는 참 신기하면서도 의아했는데, 지금은 성인을 지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여느 사람들처럼 안과 밖, 즉 사회와 가정에서의 모습과 태도가 다를 뿐인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확실히 과묵하고 내색하지 않고서도 묵묵히 잘해 나아가는 면이 있다. 그런데 또 그렇지만은 않고 정반대의 성격으로 상당히 유쾌하고 활달하신 면도 같이 갖추고 있다.
어쩌면 아버지의 타고난 성격은 과묵한 편이지만 사회적인 성격이 잘 발달되었기 때문에 정반대의 면 일지라도 함께 갖추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워낙 외출도 잘하시고 약속도 많고 밖에서 친밀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얻기도 하셔서 외향적이기만 하신 것 같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또 많이 쓰기도 하셔서인지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는 말이 거의 없어지신다. 아마 회복과 충전을 하시고 싶어 더 말이 없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그때는 보통 깨어 있기보다는 잠든 모습을 많이 보게 되기도 한다. 그 모습이 가끔은 기운 없고 삶의 재미가 없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집과 사회 모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아버지의 특징도 있다. 우리 아버지의 재미난 특징 중 하나인 것인데, 말로 드러나는 아버지만의 유머감각과 센스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난 표현으로 드러나는 재치 있고 밝은 성격의 것이다.
아버지는 유머 감각이 있고 익살스러운 특유의 표현이 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자주 사용을 하셔서 들어온 말이라, 속담처럼 원래 그런 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만 사용하는 고유의 표현이었거나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은어처럼 사용하는 것이었기도 했다. 최근만 해도, 아버지는 내가 책에 첨부할 사진을 찍기 위해 평소보다 사진을 자주 찍는 모습을 보더니, 왜 이렇게 찍어대, 지엄마 닮아가나.라는 식으로 툭 던지는 식의 말을 했다. 그런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말임에도 몹시 웃겼더랬다.
아버지의 이런 유머적인 표현의 특징은 폭력적이거나 나쁜 말 그리고 비속어를 의미를 살리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드는 언어로 순화한다는 것이다.
헛소리 혹은 비속어로는 개소리라고 하는 말 대신, 개똥 같은 소리라고 하신다. 나는 그 말을 7살부터 들어왔는데 커오는 내내 그 말을 쓰는 사람을 아이 어른 통틀어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 어떤 개그맨이 그 말을 방송에서 쓰는 걸 보고 꽤나 깜짝 놀랐다. 내 주변이나 거리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을 개그맨이 쓰는 걸 보면 아버지만의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원조일 것이라는 묘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또 아버지는 바보 같거나 멍청하다는 말 대신 순화해서 밥통이라는 말을 하신다. 가볍게 나무라실 때, 어유- 이 밥통. 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알려주신다. 거기엔 놀리는 의미는 있지만 노골적인 무시와 폭력은 없어서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웃음이 난다. 약간 못난이 같은 말인 것이다. 칭찬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정이 담겨 있는 게 느껴지는 말인 것이다.
한 창 살이 쪘을 때는, 엄마와 고구마를 까먹고 있으니까 가만히 바라보다가, 돼지 두 마리 고구마 까먹네.라고 하기도 했다.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웃겨서 웃게 되는 말이다.
또, 아버지 근처에서 방귀를 뀌게 되었는데 큰 소리가 났을 때에는 "팬티에 빵구 나겠네."라고 한 마디 하셨던 재미난 기억도 있다. 참 이상하게도 다소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 아버지가 하시면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머가 담긴 말의 특징은, 분명 친절하거나 따뜻하지만은 않은 툭 던지는 말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기분을 나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웃게 만드는 것이 있다.
이렇게 직접적인 농담의 형태로 전하는 표현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실 때도 쓰시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길을 걷다가 외국인 출입국사무소가 어디 있냐고 묻는 한국말이 유창한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자, 그 외국인이 부탁 하나 할 게 있다며 몇 분간 뜸을 들이더니 대뜸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친절한 것 같아 그런데 결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돈을 잘 번다는 어필도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건 어렵겠다고 하며 거절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그 이야길 하자, 아버지는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지 그랬어. 어디 아프냐 인마?"
그 말을 듣고 아버지의 적절한 센스에 감탄을 하며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사람에게도 심한 욕도, 그렇다고 부드러운 말씨도 아닌데도 명확한 의미가 드러나면서 웃음을 주는 말들은 정말 즐겁게 감탄을 자아낸다.
또 저번에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내가 애교 부린다는 표현을 귀여움을 떤다라고 하신 것도 아버지의 재치 있는 표현이다. 물론 그 말은 어쩌면 시대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로부터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아버지의 표현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재주는 평범한 이야기일지라도 특유의 표현을 통해 훨씬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표현만 들어도 재밌을 때가 많다. 나의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이 정도로 훌륭한 재치 있는 언어적 재주를 가진 사람을 살아오면서 본 적이 거의 없다. 거의 미국 스탠딩 코미디언 정도에 비견된다고 느껴질 정도다. 미국에서 태어나셨다면 정말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지 않으셨을까? 조금 아쉬울 정도다.
이런 재능은 역시 타고난 재능인 것 같기도 하지만, 유머는 슬픔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아버지는 힘든 삶을 살아오시기도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떠올려 보면 한편으로는 자아내는 웃음의 크기는 슬픔의 깊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말에는 물론 이런 유머적인 유쾌한 농담과 재미난 표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사실 잔소리도 많이 하신다. 웃음기를 모두 빼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그중에는 늘 반복되는 잔소리가 있는데, 주로 검소함과 청결, 시간 약속, 배려에 대한 말들이다.
이미 여러 번 들어봤고,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 잔소리들이 싫지만은 않다. 듣기는 조금 지겨울지는 모르나, 잔소리 안의 내용들은 실제로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들어서 손해 볼 것은 없는 좋은 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유머든 잔소리이든 아버지의 말 안에는 아버지의 삶에 대한 생각과 삶 자체가 담겨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잔소리의 경우가 좀 더 아버지란 사람과 삶이 더 담겨 있는 것이었다.
청결과 검소함의 경우는 나라는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해야 할 것들로, 청결은 내 생활의 질을 높여주고 검소함은 삶의 위험을 줄여준다.
청결하면 물건 찾기에도 좋지만 기분 자체도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 아버지만큼 부지런하고 청결하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 일찍 눈이 떠진 주말 아침이면 청소한 버릇이 생기고 나니, 아침에 잠을 깨기에도 좋고 하루의 좋은 시작이 된다. 청소로 시작하는 하루는 거의 대부분 굉장히 알찬 하루가 되었다. 하루의 시작을 부지런하게 잘 시작하면 그게 결국 하루 전반의 모습이 되기도 하는 듯했다.
검소함의 경우는 낭비를 줄여서 필요할 때 돈이 부족하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대비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늘 젊고, 안전하고, 평탄한 삶을 살지 않으니 말이다. 갑자기 큰일이 생겨 큰돈이 필요할 때도 있고, 정말 좋은 물건을 늦지 않게 사야 할 때도 있고, 기회를 잡아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른 잔소리인 시간 약속과 배려는 타인에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다. 늘 시간 약속을 철저히 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나는 약속만큼은 어릴 때부터 잘 지켰고 결국 그것이 굳어져 약속만큼은 철저히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 면을 갖추게 된 것은 아버지의 덕이 컸고 정말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약속 시간 몇 십분 전에 꼭 미리 가있으라고 하셨다. 미리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일찍 나가 버릇하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교통 상황 등이 안 좋아서 늦게 도착해도 약속을 어기게 되는 일은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가 되기 때문에 더 잘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를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배려의 경우는 결국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겠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로 타인에 대한 의식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실 자세하게 방법적으로는 알려주지 않으셨긴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 눈에 띌 정도로 잘하긴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뒤에서 몰래 나한테 남을 배려하라는 말을 많이 하긴 했어도 정작 자신이 그러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이미 내가 잘하고 있었다며 놀라워하기도 하고 대견해하며 칭찬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꼭 나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아버지이다.
그런데 사실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를 넘어서는 배려나 이타적인 모습들은 나 스스로가 그런 성향을 타고났고 단순한 가르침에 청출 어람하듯 잘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건 아버지의 덕이 크다. 비록 아버지가 하나하나 말로 상세히 가르쳐주시진 않았어도 행동과 삶의 형태로 보여 왔던 것이었다. 나는 그걸 보고 배웠을 뿐이다. 아버지란 사람 자체가, 살아온 그 삶의 모습 자체가 결국 가르침이었고 나는 그걸 답습했을 뿐이었기에 훌륭한 사람은 오히려 아버지였다.
그건 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알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