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버지를 만든 것

봉사, 나눔, 생명에 대한 애정

말은 려하거나 유창할 순 있어도 강하진 못하다. 고작 사고, 가치관, 의지 등을 드러낼 뿐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을 타오르게 할 만큼 격정적이어도, 모든 진심을 담아도 배신의 행위 한 번으로도 그 말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말 혼자만으론 힘이 없어 수 없이 많은 말도 그렇게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언제나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행동이 바뀐다는 표현보다 말이 바뀐다는 표현이 훨씬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은 거짓이며, 그래서 말을 행동의 화룡점정이 될 뿐인 것이다. 그만큼 말보단 언제나 행동이 중요하다. 그 무엇이든 행동만이 결국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말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것이 결국 아버지라는 사람과 아버지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의 이야기가 될 테니 말이다. 사람은 결국 해 온 행동이 자신이 되고 삶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행동으로부터 되짚어가며 깊이 있게 생각하면 된다. 또한 행동의 끝은 말로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말부터 시작될 수 있겠다.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긴 해도, 간단히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이타적인 편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말로부터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아버지의 잔소리에서 드러나는 인생관 속에는 개인의 행동과 삶을 잘 관리하고 가다듬어야 한다는 의식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점이 되는 것은 타인에 관한 것들이었다. 말에서도 타인에 대해서 특히나 더 강조를 한다는 것에서 그걸 알 수 있다.


말을 다음으로 아버지가 해온 행동들을 생각해봐도 확실히 이타적인 행동들임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확실히 이타적인 편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그 속에서 해온 행동들이, 더 나아가 삶이 모두 그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웃들이나 친구 가족들과도 기본적으로 잘 나눌고 베풀며 살아오셨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단체의 형태로도 더 넓 많은 이타적인 행동들을 역시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오래 해오셨다.

바로 의용소방대를 통한 봉사활동이다.


지금은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 하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의용소방대를 20년은 하셨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셨고 동네의 선후배들과 함께 좋은 일을,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던 게 의용소방대 지속적으로 해온 가장 큰 이유라고 하셨다. 대원의 직급에서 부대장 그리고 대장의 자리까지 오른 뒤에 내려오시기도 했다. 그 뒤 이임식을 끝으로 정식적인 의용소방대 활동은 끝이 났다.


보통은 그렇게 단체를 나가게 되면 이제 상관없는 일이라며 하는 일에 대해 관여를 하지 않게 되기 쉬운데도, 아버지는 그래도 단체에서 나오게 되신 후에도 의용소방대에 가서 일손을 도우시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셨다.

오래 몸을 담았던 단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동네 선후배들 중 여전히 활동 중인 사람들이 있어서였을까. 아니, 사실 그런 이유들이 아니어도 여전히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일이 적어지는 겨울철에,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두꺼운 옷 하나를 챙겨 입고서 동절기 논을 개량해서 만든 얼음 썰매장으로 향하셨다. 의용소방대에서 만들었고 썰매도 일일이 만들어 제공하고 따로 입장료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옛날 방식의 얼음 썰매장이었다. 단지 식사가 되는 것들을 조금 값을 올려 팔아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식이었다.

거기에서 아버지는 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언덕에서 호루라기를 불어 질서 있게 내려갈 수 있도록 통솔하였고, 썰매장에서 필요하고 해야 할 일들을 거드는 식으로 썰매장의 운영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봉사를 하신 것이다.

그 모두 보수나 대가는 따로 받지 않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즐겁게 하시던 봉사였다. 이익이 되지 않아도 시간을 내서 기꺼이 남을 돕던 그 모습은 청소년 시절,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마찬가지로 의용소방대라는 봉사 단체를 나오시게 된 이후였던 것 같다. 그때쯤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겨나셨는데 바로 뽑기였다. 인형 뽑기 할 때 그 뽑기 말이다.

그 시기는 한창 아버지가 힘들실만하다고 느꼈던 시기였을 테니 적적함이든 다른 어떤 좋지 못한 감정이든 해소하기 위한 삶의 작은 재미로 삼은 것이 아닐까 했다. 다른 것들과 달리, 잘하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그래도 비교적 빨리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아버지에겐 좀 더 큰 기쁨과 위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한창 갑자기 인형 뽑기에 대한 열풍이 일어 전국에 뽑기 방과 뽑기 기계가 생겨날 때쯤에 아버지도 인형을 하나씩 뽑아오셨다. 그러더니 인형이 너무 많아지자 주변의 아이에게 주는 식으로 나눠 주다가, 인형 대신 조금 더 쓸모가 있는 물건들을 뽑아 오시게 되었다.

물건들 역시 점차 많아지자 이미 있는 똑같은 물건들 역시 많아졌다. 나는 그래도 돈을 들여 뽑은 것들이니 그 물건들을 파시라고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뭘 이런 걸 파냐고 하셨다. 넉넉하지 않으셨음에도 말이다. 그때 확실히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둔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물건들을 팔지 않기로 한 아버지는 그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주기 시작했다. 물건 중에는 간단하고 저렴한 것도 있었지만 꽤나 값이 나가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걸 그냥 남에게 주는 게 아깝다고 생각한 엄마가 왜 이런 걸 남을 주냐고 하자 아버지는 쓰지도 않고 이미 있는 걸 갖고만 있어서 뭘 할 거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실랑이 중에 엄마의 욕심을 지적하면서 아버지가 강조했던 말이 인상 깊었는데,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나누고 인심이라도 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심, 그 얼마나 요즘 시대에 희미한 말이던가.


나는 이때 아버지가 좋은 의미로의 옛날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사람 사이의 정이 넘쳐 손익을 따지지 않고 인심을 쓰는 것이 당연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자취를 감추듯 사라진 것일까. 나는 그 희미해진 가치를 아버지를 통해 다시 떠올렸고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가 좋았으며 아직 그런 아버지가 존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뽑기는 외롭고 힘들던 때에 마음을 달래려다 보니 시작한 것이었겠지만, 결국 그 행동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이 오래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득하게 하고 계시는 취미이다. 그렇게 뽑은 물건들을 가족, 이웃, 친구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주신다.


아버지는 참 나눔과 배려가 가득한 사람이다. 요즘 왕래하며 지내시는 이웃집을 보며 그걸 또 한 번 느낀다. 서로 음식과 농작물을 나누시는 게 일상일 정도이다. 그리고 이웃집에 가서도 즐겁게 놀다 오신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웃사촌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이웃 뒤에 붙던 사촌이라는 말도 인심만큼 요즘 시대엔 희미해진 단어인데, 나는 아직 아버지를 통해 그것을 선명하게 알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끈끈함이 넘치는 사람 사는 모습이 보기가 좋고 볼 수 있기에 행운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나눔과 베풂의 정신은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애정은 비단 사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했다. 사람을 위하고 애정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어도 생명을 가진 다른 개체에게도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연이나 동물 따위 말이다.

이것은 그 반대가 되는 동물학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데, 동물학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생명을 경시하고 폭력적이며 생물을 고통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경험이 바탕이 되고 파괴된 정서로 인해 높은 확률로 결국 사람 역시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사람만 사랑한 것은 아닌 건 당연했다. 그 애정은 동물과 자연에도 정도는 조금 달라도 마찬가지로 향했다. 비록 사람보단 우선이 될 순 없다는 생각이 강하셨지만 그래도 같은 생명으로서 함부로 취급하진 않으셨다.

짐승이 어떻게 사람보다 우선이 될 수 있냐고 하시면서 마당에서 키우는 우리 집 개도 집 지키는 용이라며 무심하고 소홀한 것처럼 말하시지만, 우리 집에서 개를 가장 잘 챙기는 것은 또 아버지이다. 사료를 안 먹어 삐쩍 말랐다며 짜증을 내시면서도 걱정하시고, 어떻게든 밥을 먹게 하려고 특식처럼 만들어 주기도 하신다. 또 아직 묶어두기 전에 집 앞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은 강아지가 많았던 탓에 풀어 두지는 못해도, 더 넓게 움직일 수 있게 현장에서 부품 같은 걸 가져와서 줄의 길이가 늘어나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장치를 만들어주셨다. 늘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애정이 담긴 행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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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개집 옆에 있는 나무에 웬 바구니가 걸려 있길래 물었더니, 오다가다 하는 새들 먹으라고 새 모이를 담아두었다고 하셨다. 마치 까치밥이라며 감나무 꼭대기 쪽에 감 몇 개를 남겨두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챙기는 범위는 울타리 안만이 아니라 안팎을 모두 아우르는 듯하다.


아버지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무엇일까? 아버지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고 형제들과 함께 자라며 형성되어 있던 집안 분위기의 영향, 즉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환경적 요소가 어떻고 타고난 성격이 어떻든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후에 형성된 자아로 결국 자신이 선택해 가며 그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비록 성향이나 계기가 된 좋은 감정 같은 것은 주변이 되어준 환경으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지 몰라도 말 그대로 틀과 방향을 잡아줄 뿐 키워주는 것은 아니다. 결정하고 나아가는 것은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하는 것이다. 즉 그래서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길을 가는 삶은 산 건 온전히 아버지 스스로의 선택의 결과이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기에 태어나 하신 고생을 오히려 배려를 하는 이유와 베풀고 사는 삶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도 순전히 아버지의 선택이다. 가난과 결핍만을 이유로 아버지처럼 살기는 힘들다.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으며 악행을 저지르는 핑계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악한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악해지지 않기가 더 어려운데도 말이다. 나는 그 점만으로도 아버지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환경적인 부분을 선한 행동의 뿌리로까지 삼아 열심히 살아오신 건 결국 아버지의 결심이자 의지 같은 것이었고, 또한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버지가 사람에 대한 애정도 가득하셨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애정으로 아버지는 많은 사람을 예뻐하셨고, 사람 하나하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으며 성실할 만큼 베풀고 나누고 잘해주셨다. 그 덕분에 그 애정을 받은 사람들이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 애정을 되돌려 주시며 예뻐해 주셨다. 받은 그 애정의 크기가 결국 아버지가 이때까지 사람들에게 주며 살아온 애정이었으며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하실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해도, 아버지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대답하실 뿐이겠기에 질문보단 곰곰이 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을 만큼 아버지는 뚜렷하고 바르게 잘 살아오셨다. 아버지란 사람과 아버지의 삶을 만든 건 아버지 마음속의 커다란 애정과 주체적인 행동과 삶의 태도가 담긴 이타적인 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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