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시대가 많이 바뀌고, 과도기의 진통을 거처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가사의 분담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해졌지만,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상당히 팽배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가장 갈등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가사의 분담이었다. 가사를 여자의 일로만 정하지 말고 남자도 함께 하자고 하면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데 왜 집에서까지 집안일을 또 나눠서 해야 하느냐 라는 식의 갈등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도 가부장제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살아오셨기에,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는 것이 가장으로의 역할이고 엄마는 집에서 그 돈을 관리하며 집안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역할적 생각이 강하셨다.
그래서 빨래나 요리 같은 여자의 일로 여겨져 왔던 집안일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밖의 집에 관한 일들은 도맡아서 많이 하셨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형태로 일을 돕고는 있으셨던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따져보면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와 다르게 집안일도 많이 하신 것이다. 잘하는 편이었는 데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엄마도 별 다른 불만이나 집안일도 좀 도와달라는 요구가 없던 것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집안일은 아버지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시고 난 후부터 거의 곧바로 시작되는 것 같다. 저녁이나 늦은 오후에 오시면 좀 쉬시다가 바로 잠자리에 드시긴 하지만, 환할 때 오시면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짐가방과 보따리를 내려놓으시곤 바로 마당으로 나가신다.
그리고 밖에 있는 개부터 먼저 챙기고 살피고 밥을 주신다. 그리고 요즘에는 텃밭을 일구시다 보니 텃밭을 점검하고 농작물들에 물이나 비료를 주시거나 울타리 같은 부분을 보수하시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면 마음도 놓이고 조금 쉴 법도 한데, 아버지는 오자마자 집에서도 바로 일을 하실 정도로 부지런함이 몸에 베여있다. 먼 곳에서 이동해 오느라 피곤도 하시고 유일하게 쉬는 주말인데도 흐트러짐이 없다.
아버지만의 집안일을 할 때, 아버지의 또 다른 재주가 특히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손재주인데, 말도 재밌게 잘하시지만 손재주가 정말 놀라울 만큼 좋으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따로 배우 시진 않아도 도구나 장치를 잘 다루고 터득했으며 응용도 잘하셨다. 애초에 좋은 감각에 있으셨고, 거기에 손재주가 더해지면서 아버지만의 물건들이 하나둘 탄생해왔다. 생활에 필요한 작은 물건들부터 그저 관상용이지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낭만을 더해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한 바람개비까지 뚝딱뚝딱 잘 만드신다.
어느 여름날의 바람개비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나무막대에 엄마가 안 쓰는 매니큐어를 칠해서 만든 바람개비이다. 따로 재료비도 들이지 않고 버려질 수 있는 것을 활용한 재활용 작품이라서 더 좋았다. 만든 뒤에 바깥에 꽂아 두었다 보니 그 존재를 잊고 지내기 쉬운 편이지만, 한 번씩 아버지는 창가를 내다보고 계실 때가 있다.
무얼 하시나 지켜보거나 물어보면 뒤돌아 보시고는, 어유 딸 저것 좀 봐라? 바람개비가 엄청 씽씽 잘 돌아! 하시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시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아버지가 꼭 소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바람개비는 아버지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순수함으로 만들어진 물건 같아서 더 기분 좋고 예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집안 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은 텃밭이다. 아버지가 집에서 만들어낸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도 아버지의 손재주가 드러난다. 그저 황무지 같은 마당의 모래밭을 조금씩 가꾸시더니 나무 조각들을 가져와서 틀을 만들어 경계를 구분 지으시고 땅을 갈고 비료로 땅을 비옥하게 만드셨다. 이 과정을 마당에서 아버지 혼자 하고 계시길래 나는 일부러 한 번씩 나가 일손을 보태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리기도 했다.
텃밭의 틀이 잡히고 씨앗을 직접 심거나 모종을 심은 작물들이 어느 정도 커가며 모래밭 같던 텃밭은 다양한 모양으로 푸르고 풍성해져 갔다.
나무 조각으로 텃밭의 가장자리를 만들고 농사용 까만 비닐을 깔아 둔 곳에 놓은 빈 페트병에서 아버지의 재활용 정신이 엿보인다. 직접 물을 뿌려 주면 빨리 마르기 때문에 서서히 물을 주기 위해 만드신 거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어느새 잘 자라난 고추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는 또 현장에서 못 쓰거나 안 쓰는 쇠파이프들을 가져와 마당에서 뭔갈 뚝딱뚝딱 만드셨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밖엘 나가보니 어느새 텃밭 주변에 이렇게 쇠파이프로 구조물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 다시 보니, 그 구조물엔 다른 것들이 덧대어져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완성품의 정체는 처음에 뼈대를 봤을 때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이었다.
바로 비닐하우스였던 것이다. 간이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꽤나 깔끔하고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비나 바람에 대비하고 날이 조금 더 추워지면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용도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이 하우스는 형태는 간단하지만 기능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을 써 둔 것처럼 보였다.
기존의 텃밭에서도 비닐하우스를 따로 만들었듯이, 아버지는 완성된 형태에 안주하지 않고 늘 살피고 생각하신 뒤에 부지런하게 움직이신다. 나중에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보완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용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마음에 둔 어떤 것을 장기간에 걸쳐서 신경을 쓰며 정성을 쏟는다는 증거이다. 늘 그렇듯 애정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형광색 쇠사슬을 가져와 앞에 달기도 하고 고정적이던 비닐을 언제나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약간 손을 보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통풍 기능도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 기능과 효과가 참 좋았다. 비닐을 올리면 바람의 양과 볕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닫으면 너무 많은 비가 내릴 때 맞은 비의 양을 줄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화초를 가져다 놓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나 역시 볕이 좋지만 화분을 밖에 두기엔 추운 날이면 이 비닐 온실에 내 작은 화분을 낮동안만 두었다가 집에 다시 가지고 들어온다.
식물은 공기가 통하는 곳에 있어야만 잘 크기 때문에 환경 조성이 중요한 것인데 아버지의 이 비닐하우스는 그에 알맞은 좋은 완성품이었기에 나 역시 그 덕을 볼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의 내부다. 요즘은 이렇게 배추를 길러 먹는다. 참 잘 크고 있는 중이고 현재는 넓게 펼쳐진 잎을 끈으로 묶어 두신 게 보인다. 직접 재배해 먹다 보니 농약은 안쳐서 벌레가 먹은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긴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 작물이란 증거이다.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이면서 올해 배춧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곧 김장철이 다가오는데 올해 김치는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만들어서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기대도 된다.
천장 쪽 쇠파이프 쪽에도 커다란 토마토가 매달려 있다. 이 역시 아버지가 손 써두신 것이다. 날이 추워 얼어 죽지 말라고 넣어두는 김에 이렇게 만들어 두셨다고 했다. 확실히 하우스 안에 있다 보니 비닐로 인해 외풍이 적당히 차단될 수 있어서 튼실하게 더 잘 익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비닐하우스 옆에도 이렇게 다른 농작물들이 많다. 부모님은 서로 작물을 수확하고 난 뒤 땅이 비었을 때나 텃밭에 빈 공간이 있을 때, 어떤 작물을 심을 건지 의논을 하고 씨앗을 사다가 심어 기르신다. 그렇게 심어지고 길러진 작물들이 이만큼이나 많다.
사진의 왼쪽부터 오른쪽 순서대로 무, 고추, 갓이다. 텃밭에 심은 작물들이 무엇이냐 묻자 아버지는 각 작물들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수확시기와 해 먹는 음식까지 함께 설명을 해주셨다.
무는 땅속에 있기 때문에 추위에 강해서 11월 중순까지도 버틴다고 하셨다. 하지만 고추 같은 건 서리를 맞으면 못 쓰기 때문에 얼른 따야 한다고 하셨다. 갓은 갓김치 할 때의 갓으로 김장철인 11월 중순쯤 배추와 함께 수확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11월 중순이 되면, 무와 갓 배추를 아마 한꺼번에 수확을 해서 그걸로 올해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날이 조금 더 추워지기 전에는 가지와 방울토마토, 호박도 있었다. 작물 사이에 보이는 노끈과 호박 넝쿨이 걸린 대 역시도 아버지의 솜씨이다. 본 사람들도 참 깔끔하게 잘해두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 내가 다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손재주와 정성 덕분에 작물들도 더 잘 자랄 수 있는 것 같았다.
가지도 호박도 부모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작물들인데 좋아하는 작물들을 직접 길러서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보람과 기쁨을 주는 듯했다.
새 모이 바구니가 놓인 나무 근처에도 공간이 있다 보니 또 이렇게 텃밭을 하나 만들고 계시는 중이다. 이제 곧 겨울철이라 작물을 따로 더 심진 않았지만 내년 봄에는 어떤 작물들이 심어져 자랄지가 기대된다.
여기도 원래는 나무 울타리만 만들어 놓았는데, 옆에 우리 집 개가 자꾸 저 틈으로 쏙 들어가는 바람에 새싹이 자꾸 밟히고 망가진 적도 많아서 망을 덧대 두었고 나무에 열린 열매가 자꾸 땅으로 떨어져서 울타리에 기둥을 또 세우고 망을 걸쳐 지붕처럼 만들어 두었다.
이렇듯 아버지의 텃밭은 아버지의 정성과 손재주가 드러나는 근사한 작품이며 어느 하나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텃밭에서 자라난 작물들은 건강하고 신선하고 따로 돈을 들여 사 오지 않아 좋다. 마당에서 자라 식탁으로 올라온 고추와 오이이다. 무농약이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고 식감도 아삭아삭하니 맛있었다.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정성이 빚어낸 작품으로 삶이 한층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수확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텃밭 자체가 재미있다고 하셨다. 심심하니까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 말고도 심어 보는 건데 씨앗으로부터 작물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하루하루 커가는 게 정말 재미나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노동은 하지만 텃밭을 가꾸는 시간은 아버지에게 건강한 여가시간인듯했다.
텃밭 가꾸기 및 작물 관리 등은 마당에서의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당의 일을 끝 마치고 나서 따로 외출하실 일이 없으면, 집의 상태를 한 번 쭉 둘러보고 집에 대한 정비와 보수를 하신다. 말 그대로 집안일 중 집안에서 하는 일을 또 시작하시는 것이다.
가스레인지 후항을 청소하시기도 하고 창틀을 닦기도 하신다. 가장 자주 하시는 것은 하수구에 낀 머리카락 빼기와 보일러실의 펌프의 수리따 위이다. 펌프가 한 번씩 망가지다 보니 새 펌프를 사다가 교체를 하시는 것도 몇 번 하셨다.
만약 아직 이른 오후이고 집에 정비할 것이 없으면 보통 외출을 하신다. 따로 약속이 없어도 일을 하셨던 곳에 놀러 가신다. 회사 같은 곳이 아니라 물건을 제작을 하는 곳이라 일이 있으면 열려 있고 없으면 닫혀 있다 보니, 일이 있을 때 놀러 가서 쉬다 오신다고 하신다.
거긴 아버지에게는 약간 아지트 같은 곳이랄까. 친한 사람도 있고 해서 얼굴도 볼 겸 놀러 가시는 것 같다. 집에서도 일하시는 아버지이다 보니 몇 안 되는 여가 시간이겠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설 때부터는 또 자잘한 일이 시작된다.
그 근처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가격이 저렴한 마트도 있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필품을 사시는데 한 번씩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미리 파악하고 같이 사서 가져오신다. 그건 외출을 하기 전에 집에 도착해서 짐을 푸시면서 물이나 휴지의 남은 양 등을 파악하고 떨어졌다 싶으면 알아서 사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간 김에 부탁을 하는 것인 것이기도 하지만 배달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역시 집에 오는 길에 주문하시고 포장해서 사 오신다. 얘는, 아버지를 시켜먹는다며 투덜대시면서도 들어줄 건 다 들어주시는 겉으로만 새침데기인 아버지이다.
저번에는 맛있는 곳이라며 청량리까지 가서 족발도 사 오셨다. 사다 달라는 말을 하진 않았는데도 순전히 맛있는 걸 가족들이랑 같이 점심으로 먹기 위해 멀리까지 다녀오셨다. 집 반찬과 텃밭의 고추와 함께 먹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볍게 외출해서 늘 무겁게 돌아오시는 것 같다. 일터에서 집에 돌아오실 때도,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실 때도 말이다. 그것이 짐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채취해 오는 자연물도 있다.
아버지의 아지트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거나 아예 갈 생각이 없으시면 주로 산소를 가신다. 산소를 가꾸고 할아버지도 한 번 보고 그러면서 휴식도 취하시러 가시는 것 같은데, 산에 간 김에 그 주변의 자연에서 이것저것 열매나 버섯도 채취하고 수집해 오신다. 그 모습이 꼭 채집가 같다. 가을이면 밤을 많이 따오시는 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일을 안 가시더라도 밥은 굶지 않겠다는 재미난 상상을 한 적도 많다.
이렇게 자연에서 채취해 온 것들은 씻고 다듬는 것까지가 할 일에 포함되어 있기에 집에 도착해서도 바로 쉬지 않으시고 욕실로 들어가신다. 잘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둔 알알이 굵은 밤들이 참 탐스럽다. 많이 따오시는 편이긴 해도 모두 쓸어오진 않으신다. 다른 사람들도 주워가야 한다거나 동물들 먹을 건 남겨두어야 한다면서. 그 와중에도 참 아버지의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와 애정 어린 생각은 여전하다.
요즘 들어선 한 번씩 버섯도 따오시는데 그 버섯으로 엄마가 요리를 하셔서 그날 저녁 한 끼로 먹은 적도 있다. 따온 버섯으로 한 음식의 이름을 붙이자면 야채 버섯볶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 청소 및 보수, 마당일, 장보기, 채취까지 이미 많은 일을 하시는데도 외출에서 돌아온 오후나 저녁 시간에도 또 할 일은 있다. 매번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사 오던가 이웃 등으로부터 얻어오신 농작물들에 대한 껍질 까기나 다듬기 등을 하신다. 저번에는 엄마가 베란다에 내놓은 호두를 가져와서 아버지에게 까달라고 해서 아버지가 tv를 틀어 놓은 와중에 거실에서 열심히 껍질을 까시더랬다.
그리고 주로 엄마와 함께하는 다듬기는 여러 가지인데, 쪽파, 마늘, 고구마 줄거리 등을 다듬고 손질하며 무채를 위한 무채썰기 등 주로 저녁 재료로 쓰일 것들의 재료 준비를 위해 늘 그렇게 도우신다.
그런 것들을 다하고 나서 차려진 저녁을 드시고 나서야 드디어 아버지의 집에서의 여가시간의 시작이다. 하루의 시간이 몇 시간 가량 채 남지 않은 시간에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기도 하고 인터넷 영상을 보시기도 하다.
집에서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 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너무 단순하고 평범하다는 생각에 한 번씩은 뭔가 친근하게 느껴지다가도 또 한 번씩은 마음이 편치 않다. 일을 많이 하시는 아버지이기에 일한 만큼에 비해 쉬는 형태와 정도가 너무 부족하고 부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바깥에서 워낙 활발하시기 때문에 집에서 쉴 땐 오히려 정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마치 2ㅡ3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일하다가 15분만 짧게 휴식하고 다시 2ㅡ3시간씩 일을 하는 식의 착취에 가까운 노동 형태와 아버지의 삶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을 했다면 휴식도 그만큼 넉넉히 보장되어야 한다. 같은 양의 시간만큼 보장되지 못하더라도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일한 만큼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의 재미는 물론 더 나아가서는 인생의 의미도 모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꼭 급여 같은 보수 따위가 아니더라도, 보람이든 개인 시간이든 다시 또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고된 상태는 해소시켜 주고 지친 상태는 충전시켜주는 즐거운 인생의 낙 역시 함께 지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꺼이 스스로 결정해서 만족스럽게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취미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여러 일을 다 하시고서 집에서 쉬는 모습을 보면, 마지못해 찾은 작은 재미나 기쁨까지는 못 되는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소소하고 체념적으로 만족하는 수준의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집에 와서 푹 쉬시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일과 고생을 하시는데, 취미라도 충분히 즐기시지 못하시니 그만큼 삶의 재미와 만족도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했다.
쉬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집에서도 일꾼이신 아버지. 자식인 내가 능력이 좋았다면 아버지는 다른 모습의 형태로 쉬면서 힘들어도 여러 기쁨이 많아 사는 재미가 있다며 삶을 더 즐기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아버지의 손재주도 좋고, 손재주로 만들어진 것들도 좋고 집에서도 부지런하신 아버지도 모두 좋다. 그러나 정작 집과 가족을 위하는 시간만 많을 뿐 아버지 자신에 대한 시간은 적다는 것은, 그래서 아버지 자신은 애쓰시는 것에 비해 얻는 기쁨과 보상 같은 것이 적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타인을 위한 희생적인 삶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한편으로 너무 일과 고생만 하시진 않으셨음 하는 마음이다. 이제는 일보다는 노후를 즐기셔야 할 나이일 텐데도 여전히 밖에서도 집에서도 일꾼인 아버지이시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편함과 행복을 더 많이 드릴 수 있을까. 아버지가 만들고, 일하고, 애쓰신 흔적에 따라 좋은 것을 얻고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이제는 어느샌가 무겁게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있고 그만큼 되돌려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