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하해(河海) 앞에서 엮은 조개목걸이
나의 걱정과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by 언 초원에서 피어난 꽃 Oct 30. 2022
조급함으로 시작했지만 마음을 담아 써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충분히 많이 했음을 느낀다. 글을 쓰며 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 회상, 관찰 등은 물론 실제로 여태껏 써낸 글의 양도 충분하며 더 이상 주제를 잡아 이야기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이라 그만 마침표를 찍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마치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니, 남아 있는 것이 조금 있기는 했다. 써낸 글들은 주제를 정해 큰 틀로 이야기를 해 나아가는 방식이다 보니, 그 주제에서 언급하기 애매해서 미처 쓰지 않고 빼두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비록 끝일지라도 순서는 있는 법이다. 마무리를 짓는 과정에서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그 글들을 마저 실어 못다 한 이야기가 없도록 하는 것이겠다.
아버지의 성격적인 면에서 본받을 만한 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정이 많으신 아버지는 웬만하면 사람의 장점과 매력을 찾아내 예뻐하시는 편이다. 대신에 싫어하는 사람은 그 애정만큼 열렬히 싫어하시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도 기본적으로 좋게 봐주려는 데도 그 마음과 생각을 부수다시피 하는 사람일 때, 그 분노로 인해 싫어하는 정도도 배가 되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그 사람의 가치나 장점을 일적인 부분같이 다른 분야에서라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외면하면서까지 감정적으로 끝까지 나쁘게 보지 않고 그래도 저런 부분은 좋은 면이라며 인정할 건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마음이 따뜻한만큼 분노의 크기도 크지만 마냥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어야 할 때는 이성적일 수 있는 균형 잡힌 면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성숙함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진 잘 하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훌륭한 장점이기 때문에 나도 그런 방향을 추구해 살아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좋은 자극이 되는 면이다.
또 성격이라는 것은, 부모 자식의 사이의 가까움이나 친밀함으로 전염이 되듯 닮아가기도 하고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기도 한다. 그 비율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확실히 나는 아버지의 딸일 수밖에 없음을 세월이 가면서 더 짙게 느끼게 되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특히 사회에서 모습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나는 사회에서 보여야 하고 사람을 마주해야 할 때의 태도에서 아버지의 방식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보통 아버지가 하는 태도와 말, 아버지의 생각 그리고 유머까지 아버지를 답습해 내 상황에 적용시켜 가며 아버지를 점차 더 닮아가게 되는 것 같다고 요새 들어 특히 더 많이 느끼는 중이다.
그건 아버지가 이전에 조언의 형태로 내게 말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내가 봐온 모습을 흉내 내다가 어느새 그게 내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며 훌륭하기에 나는 그대로 닮아가는 것이 좋다. 아버지의 닮은 면을 갖게 되면, 나중에 아버지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때 이후에도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한 채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미처 싣지 못한 채 빼두었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 외에도 아버지의 옛 사진에 얽힌 모르는 다른 이야기들처럼, 떠오르지 않다가 뒤늦게서야 떠오르는 이야기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도 함께 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도 그것은 이미 써낸 이야기들에 비해 중요하고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지만 애초에 모든 이야기는 써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작 1,2년가량의 세월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니까. 빠진 이야기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들, 정말 해야만 했던 이야기들은 충분히 글로 담아낸 것 같다.
다음으로는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에 다다라서야 숨 가빴던 그 시간을 돌이켜본다. 하나라도 더 묻혀 있던 기억을 찾아내려 애썼던 시간이었다.
먼저 명확하게 드러나는 수치상으로는, 주제라는 단위로 끊어서 총 20편이 나왔다. 이 편까지 포함한 글의 양으로서, 내가 살아오며 겪고 지켜본 몇십 년의 시간에 비해 쓸 수 있었던 글은 많은 듯 많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건 아버지가 말없이 견뎌온 시간이 많았고 생계를 이유로 오래 떨어져 있었기에 세월에 비해 시간의 공백 또한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양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던 것은 아버지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의 얻게 된 많은 것들이다. 첫 번째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여태까지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처럼 소홀하지 않고 아버지를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제대로 깊이 들여다봐야만 했다. 그때, 나는 단지 아버지에 대해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을 다시 붙잡아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다른 많은 것들도 함께 보고 알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에 대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나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있던 걱정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나의 마음의 무게와 고민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을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딸이자 자식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동안엔, 잔잔한 기쁨도 있었지만 마음이 슬프고 먹먹해지는 순간도 많았다.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할 때, 특히 슬퍼졌던 적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아버지가 고생하고 또 성실하게 살아오신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처럼 선명해지는 것들로 인해서였다.
그 선명함은 무상함 앞에서 내가 더 해야 할 것들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여 알게 하고 결심하고 행동하게끔 만드는 자극으로 작용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장 간단한 것은 우선 한 번이라도 더 입에 붙지 않은 존댓말을 하는 것이기도 했고, 최소한으로 아빠 도움을 덜 받아 수고를 더는 것과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돕는 것, 아버지가 서투신 핸드폰 따위의 전자기기의 사용을 돕고 알려 주는 등을 좀 더 기꺼이 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나의 이런 행동이 너무 적고 작은 것이라는 건 잘 안다. 아버지가 나에게 베풀었던 것들은 이 이상으로,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도 같은 양조차 갚지 못한다는 걸 한참 미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이 아버지에게 얹어있던 짐을 내 어깨에 옮겨 짊어지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이 다짐엔 내가 대신 짊어져야 할 것에 대한 고됨의 걱정보다는 아버지가 고생한 것을 보상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줄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괜찮다 말하는 것이 부모라지만 이미 곁에서 그 고생을 많이 보았고 더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 고생만 하다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커다랗고 강박적인 걱정까지도 이제는 내가 짊어지고 싶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임을 알기에 그에 대한 마음 아픔이 크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것이라는 각오를 주었다.
그 각오 앞에서 나도 과연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란 생각 역시 들었지만, 오래전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 삶으로 충분히 잘 이뤄내고 증명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니 나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지가 담긴 긍정이기도 했다.
결국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의미와 깨달음 그리고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과 행동들을 글을 씀으로써 함께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글을 쓰는 과정은 힘들고 슬프기도 했지만 그 자체는 전반적으로 내게 참 유익했던 시간이 되어주었다.
또한 그 과정을 거쳐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결과적으로 완성해 내었다. 그것이 가장 큰 의미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 글들은 사실 진작에 써냈어야 했던 글이었다. 쓰고 싶었고 써야겠다고 생각한 지 참으로 오래되었음에도 내 속에서 활자로 나오는 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 여유, 수익 없음 등 현실적인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미루지 말고 진작에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래도 만약 이번에도 생각만 하고 이렇게 직접 글을 쓰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여전히 얼마간 잔존하다 사라지고 마는 아버지에 대한 토막적인 생각들만 마음속에 무겁게 둔 채 일상을 살아가는데 바빠 아버지에 대해 소홀한 시간들만 더 쌓아갔을 것만 같다.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매번 때를 놓치고 살아 결국 후회만 남은 사람들처럼 아버지의 부재 후에나 뒤늦게 생각에 빠져 살며 고통받고 뒤늦고 소홀했던 만큼 훨씬 아프고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번엔 글을 써야겠다 생각만 하던 것을 행동으로 옮긴 데다 끝마칠 수까지 있었으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가 있는 것은 물론, 마음속 오랜 짐도 함께 덜어내면서 더 편안해졌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막상 완성하고 나니 괜히 걱정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 글들은 당연히 책으로 엮어 드리려고 열심히 써온 것인데도 막상 그 당사자에게 완성을 해서 전해주려니 어색하다. 왠지 드리자마자 어딘가로 도망가 버리며 자리를 피할지도 모르겠을 정도이다. 나쁠 것은 없겠지만, 괜스레 그 반응이 조금 무섭고 또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이 만약 아버지의 자랑거리만 될 수 있다면 그런 나의 감정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아버지도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농사를 참 잘했다는 자랑을 하고 싶고 그걸로 인정을 받고 싶으셨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내세울만한 거리가 없어서 삶이 더 재미없었고 오래 살고 싶지 않으셨던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글을 엮은 이 책이 이제는 아버지의 커다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제, 이 마지막 글조차 끝이 가까워져 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버지의 삶과 내 기억 중 하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완성하기 전, 공책 한편에 시처럼 써두었던 어둡고 짙었던 그 기억을 말이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에, 아버지는 청구되어 빠져나가는 많은 돈들을 겨우겨우 메꾸고 집이든 무엇이든 이룬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머리를 감싸 안으며 참 숨 가쁘셨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은 끝이 안 보이는 어둠 가득한 절벽 위에 지어진 위태로운 집이 바닥마저 야금야금 뜯겨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를 돕지 못하고 나는 그저 무력하게 마음만 아파하며 울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가 작은 희망을 담아 주었을 몇 권의 공책과 복사용지 뭉치가 내 방에 있었다. 거기에 나는 가슴 아래에서만 생생한 마음을 차마 다 담지 못하고, 흉내만 냈을 뿐인 활자를 몇 가지 담아 보았지만 그마저도 드리지 못했었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인데도 한 해 한 해 심해져가는 기침 소리에 이별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가던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무엇이라도 줄 수 있긴 한 걸까? 저 기침 한 점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뒤늦기 전에 무엇 하나라도 아버지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려 애썼다. 결국 그래서 나는 글을 써냈고 완성했다. 그로 인해, 제 때 갚지 못해 실망으로 옅어져 가던, 아니 사실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마음 저 밑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오래전 내게 건네었던 희망의 채무를 이제야 변상하게 되었다. 내가 잘하는 글쓰기라는 능력으로 아버지에게 바치는 글을 씀으로써 이제야 해냈다.
아버지가 선물하신 공책과 나의 필기구들. 나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 나아갈 것이고, 아버지가 주신 공책에도 이제는 글을 써서 잘 써냈음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것이 다음에 이어가야 할 나의 목표이겠다.
마지막으로 써낸 이 글들의 이유와 의미를 떠올려본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아버지의 가치를 다시 발굴해보는 행동이었다. 마치 바닷가의 모래 속에서 어여쁜 조개껍질을 찾아내는 과정이었고 그 조개껍질 같은 낱말과 이야기를 엮어서 책이란 목걸이를 만들어 완성한 것이다.
그래, 아버지는 한없는 하해(夏海)였다. 드넓고 감히 닿을 수도 없는 깊이의 바닷물 안에는 수많은 것들도 존재했다. 나는 차마 그 하해에 들어가진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모래알 가득한 해변가에서 조개껍데기들을 찾아 하나둘 주워 모았을 뿐이었다. 모자란 작은 손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많이, 열심히 주웠다. 힘주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바랜 껍질이었지만 추억 하나를 담으면 의미가 되었다. 그 의미를 엮으니 목걸이가 되었다.
감히 닿을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는 이 하해도 결국 말라간다. 그 바닷물이 모두 말라 흔적만 남아, 한 움큼의 물조차 손에 담을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비록 이 모든 글들은 크나큰 아버지란 하해에 비해서 턱없이 작은 조개껍질을 엮어 만든 목걸이 정도이지만,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그 덧없음을 앞에서 나는 더 늦기 전에 이 목걸이만이라도 하해의 바닷물에 띄워 본다.
거기에 편지 하나도 새겨 넣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딸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찬란하고 빛나는 청춘을 내게 기꺼이 바치고 쏟아 내었다는 것을요. 그러나 저는 그런 당신의 청춘을 고스란히 되찾아 줄 수는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당신의 인내와 희생 그리고 크나큰 애정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그 시절의 찬란한 웃음만이라도 되돌려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바칩니다.
조개껍질 같은 글들을 엮어 만든 이 책을요.
아버지, 당신의 바다 앞에서 딸은 추억이 담긴 조개껍질을 주어 엮은 목걸이를 띄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디 하루라도 더 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더 많은 것을 드릴 수 있게요. 이제는 고생보다 애써 오신 세월의 보람과 삶의 기쁨을 더 누리셔야지요. 그 염원을 담아 이 작은 선물부터 건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