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겐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는 집이란 겨우 눌러서 견디고 있던 스트레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고 보람도 느끼기 힘든 그런 장소. 아버지 자체가 원체 쾌활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것도 있지만, 그래서 이 시기에 아버지는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사회생활의 하나의 일환과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으므로 술을 마시느라 더 바깥으로 나가셨겠지만, 더 나가도록 만든 것이겠다. 비록 나와는, 그리고 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외향적인 아버지는 바깥에서는 그래도 즐거우셨지 않았을까 싶다. 그게 집이 아니어서 마냥 행복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적어도 무책임하지 않아 질 수 있고, 현재의 깜깜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해 줄 만큼의 고통을 상쇄시켜주는 기쁨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흔히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 말이다.
외출시간이 길 뿐, 그 모습을 직접 자주 보지는 못해 잘 모르긴 했었지만, 미성년자의 끝자락부터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명절만 되면 아버지한테 도착하는 많은 선물세트들과 이곳저곳에서 많은 선물을 받는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물질적인 선물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는 전화도 참 자주 온다. 일적인 전화뿐만이 아니라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은 전화들. 그저 관리해야 하는 인맥이 아니라 친밀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버지 주위엔 유독 많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잘 웃지 않으시는데도 통화를 할 때만큼은 언제나 명랑하게 웃으신다. 통화의 끝 자락에 그래그래 라고 하는 그 특유의 인사까지도 말이다. 가정과 거리가 있는 곳에서의 아버지는 참 사람 좋고 근심 걱정 없이 밝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입 밖으로 내뱉진 않으셨어도 우스개 소리로 "이 놈의 집구석"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는 비록 가정에서는 힘들었지만 소홀하거나 폭력적이진 아니었다. 다만 좀 더 바깥, 즉 사회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아버지의 훌륭한 인간관계적 처세와 따뜻한 태도로 사회적인 기반을 닦은 것이고 그것이 가만히 있는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인맥은, 내가 그분들을 잘 모르더라도 단지 아버지 딸이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듯 예쁨을 받고 환영받은 것만 봐도 아버지가 얼마나 밖에서 잘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예뻐하시면서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말은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참 잘해주셨어, 나를 참 예뻐해 주셨어. 같은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왜 집에서는 아버지가 그러 나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면, 그러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아주 어릴 적엔 그 사랑과 예쁨을 받아 봤기 때문에 그것이 단지 사회적 처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그런 사람이다. 그 시기를 지나 현재에도 그것을 느낀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얼마 안지 되지 않은 이웃과 왕래를 활발히 하며 정말 잘 지내신다. 나누고 받고 나누고 받는 걸 아낌없이 하시며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신다. 좋은 옛날 사람의 예시랄까? 나는 그걸 보다 보면 삭막한 세상 속에 아직 남은 희망이자 사랑의 형태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버지가 한창 힘든 시기에도 제한적이었지만 존재하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