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우린 안다

비밀은 좋은 거야

by 서화

“엄마, 저 오늘 약속 있어요.”

“밥 먹고 와?”

“점심은 먹고 저녁 전에 들어올 거예요”

절대 누구랑 무슨 일로 만나는 약속인지 묻지 않는다. 그게 내가 만든 ‘사생활 보호지침 1호’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은 것은 알려고 하지 말자’ 물론 나한테만 해당하는 규칙이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문제는 엄마인 내가 궁금증을 갖고 캐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약속 때문에 많이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알리라는 요구만 한다. 아무래도 늦은 시간까지 말없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은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예의가 아니니까.


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다. 여자의 직감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 촉이 아주 예민한 편인데 게다가 낳고 키워준 엄마라면. 태어나서 지금껏 봐온 세월이 얼마인가.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하는 것만 봐도 이 녀석이 나한테 조금 미안한 짓 하려는 거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게 엄마니까. 물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물어본다. 이미 나에게 알려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질문만 한다. “수혁아, 너 저번에 졸작 같이 한 친구들과 회식해야 한다고 하더니 그게 오늘이야?” “아니요. 그건 다음 주요”“그래? 알았어” 내가 아는 모임이 아니란 것만 확인했으면 나는 상관없다.


궁금증이 조금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다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너무 알면 그것도 골치 아프다. 내 속과 달리 막내는 그다음 질문이 들어올까 봐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굳이 오늘의 약속에 관해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땐 한방에 정리해 줘야 한다. “잘 놀고 와. 누구를 만나는지 엄마는 안 궁금하니까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와” “네” 아들내미의 목소리가 크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 비밀은 없어서 좋은 게 아니라 비밀답게 지켜져서 좋은 거더라. 나는 비밀을 자주 만드는 사람이다. 어느 기간 비밀로 유지하다가 나중에 가족들에게 털어놓는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내 경험상 그랬다. 새로운 운동이나 도전을 시작한 뒤 나는 6개월 정도가 될 때까지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우연히 알게 된다면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했어.” 하면 된다. 하지만 기한을 6개월이라고 두는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새로운 운동이든 취미활동이든 적어도 6개월은 해봐야 내가 지속할 만한 일인지 아니면 그만두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노력은 어느 것에나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인생철학이다. 6개월 후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면 가족들에게 이런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배우고 있다고 알린다. 아마 나는 가족들에게도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싫은가 보다.


아이들이 어릴 적 일이다. 큰아이만 데리고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간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은 마트에 가는 것을 무슨 놀이처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히 첫째는 엄마랑 단둘이 간다는 것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날 무엇을 사러 갔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하지만 쇼핑 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었던 것은 기억한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내가 그랬다. “동생들한테는 비밀이야. 알았지?” 비밀이라는 말에 함박웃음을 보이던 딸아이. 그렇게 엄마와 자신과의 비밀이 생긴 것에 얼마나 좋아하던지.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빙그레 웃으며 눈을 찡긋하던 큰아이 얼굴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이후에 둘째도 셋째도 막내도 나와의 비밀을 하나씩 만들었다. 비밀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의식적으로 숨겨야 하는 약속이 아니라 조금 더 사랑받는다는 흐뭇함으로 기꺼이 지키고 싶은 기억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계산 했었다. 엄마의 사랑이 자신에게 조금 더 강하다고 느끼면 상대적으로 다른 형제들에게 관대해질 것이라는 나름의 속셈을 숨긴 행동이었다. 좋은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비밀은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혹여 지금의 내 아이들이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해도 나는 크게 섭섭하지 않다. 나에게 숨긴 그 마음이 불편하고 거북하다면 언젠가는 털어놓게 될 것이다. 후회와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고생도 어른으로서 배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아무리 책으로 읽고 타인의 실수를 보면서 느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마음과 몸에 새겨지지 않고 금세 잊어버린다. 그리고 새겨질 때까지 계속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어른으로 겪어가는 과정을 선배로서 지켜보고 있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그렇구나. 연애도 일처럼 열심히 할 거야?’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셋째의 연애에 관해서는 아는체 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함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랑 하는 통화를 듣고 정보를 얻는다. 여전히 만나고 있다는 것을. 무관심한 엄마인 것 같지만 나는 이 방식이 좋다. 힘든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겨 조언이 필요해지면 나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리 짐작하고 물어보며 ‘잘 되려면 이렇게 해라’ 등등의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비밀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막내는 누나들에게는 여전히 철없고 못 미더운 동생이다. 인성이나 행동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막내는 진짜 착하지’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막내가 하는 일에서는 항상 농을 한다. “여. 우리 수혁이가 이제 게임을 만드는 거야? 그거 누가 보기는 한 대?” 이렇게 말이다.


물론 나도 그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누가 이따위 발언을 해. 누구야? 경주 너야?” 엄마의 말투가 벌써 날카로워졌다는 것을 느낀 딸들은 “에이 엄마 농담이에요” 하고, 나는 “농담도 가려서 해” 딱 자른다. 이런 상황이니 막내가 하는 모든 활동을 막내도 나도 딸들에게 그리 소상히 알리지 않는다. 진로 문제로 교수님과의 약속은 “친구들과 놀고 온대”로 알린다. 뭐든 명확하게 정해지기 전까지는 알리고 싶지 않은 막내의 마음을 알고 둘만의 비밀을 많이 만들었다. 막내의 자존심에 가장 큰 흠집을 내는 것도 자신감을 높여주는 것도 모두 누나들이다. 그래서 막내에게 비밀은 약이다.


엄마는 역시 쉽지 않은 직업이다. 눈치까지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아는 체 해주고, 또 어지간한 선까지 눈 감아야 하는 노력이 고단하다. 그래도 엄마니까 해야만 하겠지?

잘하고 있구나 대견해하며 웃어주고, 힘겨워하면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화이팅!' 응원하면서 또 기다린다. 어릴 적 한집에서 살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점. 드러내는 것 보다 못본체 지켜봐야 할 때가 더 잦다는 현실.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 큰애와 막내는 밖에서보다 안에서 더 큰 상처를 받는 것 같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경쟁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더 어른인 나의 몫이다. 음식으로든 대화로든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힘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응원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 엄마인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경혜수!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엄마가 애쓰고 있다는 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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