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쓸모
식탁에 노트북을 갖다 놓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소리를 빽 질러버릴까 아니면 책상을 거칠게 탁 칠까.. 내 고민만큼 둘째와 셋째의 언쟁은 지르는 톤도 내뱉는 단어도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엄마가 집안 일을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해도 너는 너무하잖아. 아무 관심도 없으면 어떻게?”
“내가 왜 관심이 없어. 나도 할 일은 하고 있어”
“니가 무슨 일을 하는데? 빨래를 같이 개는 것도 안하고, 심지어 개어 놓은 니 빨래를 갖고 가는 것도 아무리 말해도 안 하잖아”
“그거 안 한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셋째의 대꾸에 잠시 머뭇거리는 둘째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둘째는 멀뚱멀뚱 쳐다 보고만 있다.
“너 이렇게 화내는 거 너무 이상한 거 알아? 니가 잘못한 거니까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빨리 인정하고 말 뿐이더라도 신경 써서 잘하겠다고 사과하던 동생이 끝까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반박하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다. 말까지 더듬으며 둘째는 셋째를 계속 다그쳤다.
“그만해” 셋째 방 바로 옆 식탁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경주 넌 니 방에 들어가” 둘째는 계속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동생을 보고만 서있다. ‘제대로 한방 먹었네’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둘째로서는 처음 겪는 상황일 것이다.
셋째는 언니가 말하면 가장 빨리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동생이었는데 자신이 혹시 실수라도 했는지 되짚어 보는 듯 둘째의 눈동자가 요란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동문서답 하듯 어설프게 떠다니는 두 아이의 언쟁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중단 시켰다. 그리고 셋째를 내 방으로 불렀다. “엄마 방으로 좀 와. 우리가 대화라는 걸 좀 해야겠어”
셋째는 퇴근하면 저녁 먹고, 씻기 위해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외에는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렇게 5 일을 지내고 나서 주말은 밖에서 산다. 친구와 약속, 미술 학원, 영어 학원 등. 심지어 공부도 카페에서 한단다. 같이 하는 시간이 너무 현저히 줄어드는 상황들에 나는 내내 불편하면서 답답한 감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는 건 물론이고 사소한 대화조차 나눌 기회도 없다 보니 챙겨야 할 각자의 빨래 중 셋째의 빨래만 거실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갖고 들어가라고 해도 알겠다고 답하고 그냥 들어간다. 참다 못한 내가 방에 갖다 주면 침대에 누워 “거기 구석에 두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정리는 안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방문을 조금씩 열어두는데 셋째는 꼭꼭 닫았고 할 말이 있다고 좀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오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둘째도 지켜보다가 결국 터졌던 것이다.
눈물을 훔치며 방으로 들어오는 셋째와 마주 앉았다.
“나도 내 할 일은 하고 있는데 작은 언니는 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잖아요. 내가 가족들 먹을 땅콩 버터도 주문하고 회사에서 주는 물건도 더 잘 챙겨오고 있는데”
변명이 없을 수는 없다. 각자 자기만의 그럴만한 사정을 있다고 믿으니까.
나는 제일 먼저 나의 감정을 알려주었다. 꼭꼭 닫힌 방문. 불러도 나오지 않는 태도.
“나는 너가 나를 거부하고 있다고 느꼈어. 아 , 혜주는 아예 나랑 마주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싫구나라고 느껴졌어.” 셋째는 아니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요즘 회사나 그 외 외부에서의 일들이 많이 힘들단다.
“근데 왜 엄마한테 아무 말도 안 해?”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는데요?”
왜 이 아이는 내가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단정 짓고 있을까. 엄마는 아니 부모는 항상 필요한 존재다. 좋은 일에도 억울한 일에도 답답한 일에도 심지어 화가 나는 일에도. 세상 일들이 학교 시험 문제가 아닌 이상 답은 한 가지 만이 아닐 테고 더 어른인 엄마는 다양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나의 신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엄마가 안다고 해도 무얼 해줄 수 있는데요?” 이런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내가 듣다니. 나는 말없이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잠시 침묵이 필요했다. ‘이 아이는 왜 나를 못 믿지? 17살 때부터 떨어져 살아온 긴 세월이 이 아이에게도 혼자서 해결해야만 한다는 외로운 자립을 심어 놓았구나’
“니가 밖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그걸 가족들에게 좀 털어놔도 되지 않아? 다른 곳에 못할 말을 가족들에게 하는 거야. 그게 가족인데.. 왜 안 해?”
“예전에 언니들에게 했는데 언니들이 그랬거든요. 너만 회사 생활 힘든 거 아니다. 다 힘든데 그런 거 까지 일일이 다 들어줘야 하냐. 솔직히 그 이후 저도 자세히 말 안 해요”
내 자식들의 이기심이 문제였구나. 둘째가 큰애의 힘듦을 언제까지 이해해주어야 하냐고 토로하던 말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관대한 연민은 없구나 내 아이들은’
가족이라고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친구의 말도 불현듯 기억났다. 각자 인생 살다가 가끔씩이라도 서로 챙기는 것을 보게 되면 ‘서로 사이가 나쁘지는 않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친구의 조언.
‘관계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였다. 그 적절함이 얼마나 모호하던지. 서로 물고 뜯어 상처 입히는 것만 아니면 좋은 것이라는 결론으로 끝낸 대화. 웃으며 마무리 했지만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사는 친구의 세 딸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의 세 딸과 아들도 가족의 화목을 위해 개인의 감정은 지워야 했던 우리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친구와 나는 받아 들여야만 한다고 토로했었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그래도 혜주야. 언니들에게는 몰라도 엄마에게는 해야 해. 너는 나의 필요를 못 느끼니? 나는 엄마야. 너의 편안함을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너와 나의 서사를 다른 사람이 다 알 필요는 없어. 너가 몰라서 그렇지 큰 언니도 수혁이도 다들 엄마와 둘이서만 아는 대화를 많이 하고 있어. 엄마한테 털어놓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 거 아직 안 해봤지? 안될 거라고 단정 짓지 말고 해봐. 엄마가 꽤 도움이 돼.”
셋째는 그저 듣기만 했다. 집안일과 별개의 엄마의 쓸모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아이를 그저 안타깝게 다독여주는 것으로 나는 그날의 대화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이틀 뒤였다. 저녁 식사 후 영어 수업이 있다며 변함없이 방으로 들어간 셋째가 늦은 시간에 방문을 열며 다급히 나를 불렀다. 식탁에 앉아있던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셋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춥고 힘이 없다며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몸은 차가웠다. 식은땀을 흘리던 셋째는 갑자기 어지럽다며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고, 방에서 뛰쳐나온 둘째는 응급실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스럽게 동생을 매만졌다.
딸아이의 상태를 살피다 순간 예전에 내가 고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집에 혼자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진땀이 나고 몸이 떨리며 가슴이 답답하게 아팠었다. 그때의 증세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나는 몇 시간 전 저녁을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워 영어 수업 준비를 하던 셋째를 기억했다.
“잠시 엄마 침대에 누워 봐” 그리고 침을 가져와 손가락 발가락을 땄다. 어릴 적 우리 엄마들이 체한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처방이며, 한의사인 가족들에게서 배워둔 대처법이었다.
혼자서 아팠던 그날도 나는 내 발가락을 침으로 찔렀고, 몸이 나아지는 경험을 했었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따고 다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따던 중 셋째는 속이 많이 편안해졌다면서 울먹였다.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웠을까. 딸아이의 배에 따뜻한 돌을 얹어주고 나는 옆에서 쉬지 않고 차가워진 팔다리를 주무르며 쓸어주었다. 손은 금방 온기를 찾았고 발은 10 여분 남짓 지나니 따뜻해 졌다. 맥 없이 누운 셋째를 재우고 나는 방을 나왔다.
네 명의 아이들을 이만큼 키우는 시간 동안 이보다 더 놀랐던 일이 과연 없었을까. 엄마들은 그래서 크게 놀라지 않게 된다. 둘째는 혈색을 되찾은 동생을 보며 “다행이다”를 반복했고 나는 체해서 그런 거니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 시켰다. 하지만 속으로는 나도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진짜 급체여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다음 날, 무사히 회사로 출근했던 셋째는 퇴근하면서 사온 죽을 데워 먹으며 내게 조금 미안한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
“엄마가 집에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정말 감사해요”
그날 이후 셋째는 회사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솔직한 감정들을 들려주며,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진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엄마의 쓸모도 증명되어야 하는 건가 의문스럽지만 뭐 어때. 살아온 세월만큼 단단해지고 유연해진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어서 더 행복한 것 아닐까 싶다.
인경혜수! 엄마도 니들의 쓸모라서 언제나 감사해. 내 마음 느끼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