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너희들의 인생에도 요가 같은 무언가가 있기를

by 서화



-엄마가 잘하고 있다고 우리도 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엄마, 이제 그만요. 운동 꾸준히 하면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엄마가 잘하고 있다고 우리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기본적인 체력 향상을 위해 운동을 권할 때마다 큰 아이는 이렇게 반박했었다. 엄마가 잘한다고 나도 잘할 거라고 판단하지 말란다.


내가 권하는 운동이 이렇게 받아들여질 줄은 예상 못했다. 그동안 요가만 12년, 그 뒤로도 벨리댄스, PT, 수영, 발레 그리고 지금의 필라테스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일상의 루틴처럼 운동을 생활화해온 것은 맞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면 내가 내 건강만 신경 써온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나도 나름 사유가 있었다.


처음 시작할 시기에 나는 내가 50이 오기 전에 죽을 것 같아 두려웠었다. 찌르는 듯한 등의 통증과 목을 뒤로 젖힐 수도 앞으로 숙일 수도 없는 고통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심각한 상태였다.

살기 위해서 시작했다.



-요가는 나의 생존법이었다-


요가를 처음 시작한 40대 초반에 내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었다. 한 학교에 한 집 아이가 넷이 동시에 다니는 것은 가끔씩 마주치는 담임선생들로부터 대단하다는 인사를 듣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장하고 한편으로는 경이로운 엄마였지만 내 속은 보드랍지 못했다. 신경 쓸 것이 많은 나이의 아이가 네 명인 착잡한 학부모로서 하루하루 쫓기듯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큰 병치레 없이 지금껏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일과 대외적인 살림살이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은 100% 요가 덕이었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회복하는 시간, 가족 모두를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갈수록 가족들 중 누구도 요가하는 시간은 방해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도 ‘운동 중이었다’는 한마디면 그 시간에 전화를 한 사람이 미안해해야 했으니 나의 운동은 어쩌면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을 케어하기 위한 나의 중요한 무기라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요가의 그 ‘내려놓음’으로 욕심과 스트레스를 줄여 갔다.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타인의 인생은 타인의 것이라는 진리도 배웠다. 하지만 엄마란 어떤 사람인가.


좋은 게 있으면 당연히 자식에게 보여주고 그 희열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사람 아닌가. 내가 본 영화가 좋으면 제일 먼저 아이들 영화표를 예매해 주고. 맛난 것을 먹으면 며칠 뒤 가족 외식을 했고, 친구들과 가본 동해바다를 다음 가족여행으로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런 엄마가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인 동시에 누구보다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준 운동을 아이들에게 권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매번 운동하라고 열변을 토해왔다. 지금까지 쭉.


어리다는 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는 반증이다. 세상일이 그저 새롭고 신선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혼자서 유추하지 못한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어른이다. 언제나 곁에 있고, 안심하고 물어볼 수 있는 부모. 그래서 나는 매번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너희는 예전의 엄마가 기억나지? 내가 어땠어?”

“엄마는 감기는 자주 안 걸리셨지만 목과 등은 정말 자주 아팠어요”

“지금은 어때 보여?”

“정말 건강해지셨어요. 등 아파서 침 맞는 건 이제 없잖아요”

“내가 건강해지니까 너희들은 어때?” 아이들은 왁자지껄 대답을 쏟아냈다. 아파서 누워있지 않아서 좋다. 같이 놀러도 자주 가고 영화도 다 같이 봐서 좋다면서 지들끼리 맞장구까지 친다. 이 때다 싶어 내가 강하게 말했다.

“운동하니까 건강해지는 거 봤지? 니들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아픈 데가 없는 거야. 감기 자주 걸리는 건 면역력이 약해서 이고 운동을 하면 면역력이 좋아져. 맞지?” 그때는 내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자기들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하게 살 거라며 웃어주었는데...



-자신만의 운동을 찾으면 되는 거야-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딸아이들에게 운동은 먼 이국의 삶 같아 보였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고 있니? 학교 캠퍼스를 걷는 거라도 해라. 근처 헬스클럽 등록해 줄까” 등등.


대학생활이 그런 거라는 건 나도 겪어봐서 안다. 술자리도 많아지고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도 잦다는 걸. 그럼 운동 동아리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떠냐는 권유까지 해보았지만 떨어져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식과의 연줄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 시기와 왔다는 서운함까지 들었었다.


둘째의 첫여름방학이 왔다. 나는 서울에서 혼자서 밥 해 먹기 힘들어서 본가로 내려온 딸아이에게 ‘커브스’를 미리 등록하고 강압적으로 다니게 했다. 크게 반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둘째는 두 달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주었다. 후에 내가 물어보았다. 너도 운동을 하고 싶었었냐고.

“제가 친구에게 엄마가 운동을 등록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좀 짜증스럽게 얘기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희 엄마는 본인이 잘하고 계시면서 너한테 권하잖아.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본인은 안 하면서 자식에게 권해. 그러니 너는 너희 엄마 말 들어!”

친구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니 어이없었지만 내 마음을 알아봐 준 딸아이 친구가 고마웠다.


엄마의 잔소리가 짜증스럽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시작하였고 조금씩 효과를 보게 되었다. 큰아이는 복싱을 배운다. 덩치가 가장 작고 여린 큰애가 복싱을 선택했을 때 의외다 싶었지만 나는 운동의 종류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 그래서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 그게 정도다.

둘째도 셋째도 막내도 하다가 쉬다가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다양한 운동으로 지속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라테스, 요가, 발레, 헬스, 달리기 등등. 가끔은 잘 다니던 체육관이 문을 닫아버려 지금껏 해오던 운동을 접어야 할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나는 새로운 운동을 시도해 보는 즐거움도 있다고 조언한다. 조건이 안되는데 아쉽다는 미련만 붙든다면 결국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힘들겠지. 야근도 해야 하고, 지인들과의 모임도 참석해야 하고, 거기서 술로 사회생활도 해야 할 거다. 그리고 또 시간 내서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 할 것이고.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그리고 운동을 2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경험 자니까, 누구보다 운동의 효과를 본 사람이니까 그래서 잔소리를 멈출 수가 없다.


나는 현재 필라테스를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이 운동을 해보니 꾸준히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나의 근면함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존경한다고 엄지 척해준다. 이런 나를 지켜보며 운동을 쉬다가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면 좋겠다. 엄마인 나의 노력 안에는 자신을 위한 애정 못지않게 자녀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잠재되어 있다. 적어도 인생에서 한 가지는 꾸준해야겠다고 다짐해 준다면 더 뿌듯할 것 같다.


한창 요가로 힘을 얻던 시기. 나는 농담처럼 아이들에게 묻곤 했다. “너희 들을 키운 건 뭐라고?” 그럼 ‘아하. 알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애들은 답했었다. “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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