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근사한 화가 친구가 있다.
내세울 재능이 없는 나 같은 보편적인 아줌마의 눈에는 그저 멋지고 자랑스러운 친구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구적인 삶을 살 것 같았던 친구가 어느 날 자신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의 딸아이는 이직 중이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빠한테 맛있는 밥을 차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딸아이를 보며 친구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라서 무조건 남자 밥을 챙겨야 하는 건 아니야.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딸아이는 아니라고 했단다. 자기는 요리하는 것이 즐겁고 오빠가 맛있게 먹어주면 정말 기분이 좋다고 했단다. 그 대답을 듣고도 친구는 다시 한번 짚어 주었다고 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진짜야. 오빠 밥은 오빠가 알아서 먹으면 돼”
친구는 힘 빠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게 싫어. 여자가 남자를 챙겨야만 한다는 생각이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어”
맞다. 우린 그런 지긋지긋한 시대를 살았다.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 교육받아서 결혼생활 내내 성실히 실천하고 살았는데 새삼 지겹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화가 나. 짜증이 올라오는데도 그걸 하고 있어. 내가”
친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들렸다.
‘지겨우면서도 자신의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무의식에 경악한다고’
입으로 뱉지 않아도 안다. 나도 그러는 내가 싫었던 적이 셀 수 없었으니까.
대학 시절 ‘여성학’이란 강의가 인기가 높았었다. 수업 과제들을 모아 발간한 책자에서 읽은 이야기다.
글쓴이는 남동생만 유독 이뻐하고 챙기는 엄마가 미웠다,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바나나는 남동생만 먹을 수 있었기에 어느 날 식탁 위에 놓인 바나나를 보고 글쓴이는 반항하듯 먹었단다. 먹고 나서 껍질은 보란 듯이 식탁 한가운데 던져두고.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가 소리쳤다.
“식탁에 있던 바나나 누가 먹었어?”
글쓴이는 심호흡 크게 하고 “내가 먹었어” 힘주어 고함쳤단다.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거나 거북한 욕 한마디를 듣더라도 오늘은 당당히 말하리라
‘나도 바나나 먹고 싶어’라고.
눈에 힘 빡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엄마 앞에 섰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뒤돌아 본 엄마가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잘했네. 상해서 버릴까 했었는데 니가 먹어서 다행이다”
4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억울함이다.
피 토하듯 성토했었다. 우리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선택한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하다고. 우리의 딸들은 달라진 세상에 살게 할 거라고. 그랬던 우리는 여태껏 억울함을 지우지 못하고 산다. 더군다나 우리가 우리 딸들의 억울함의 원인일까 봐 노심초사까지 하면서 말이다.
나의 엄마는 남동생에게만 외박을 허락해 주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놀고 싶다고 청했을 때도 단 한마디로 거절했었다.
“집에 와”
심지어 친구 엄마가 대신 부탁을 하셨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애 바꿔주세요”
“집에 와! 지금 당장!”
작정하고 대들었었다.
왜 그러냐고. 왜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되냐고.
나의 엄마가 말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너는 밖으로 자꾸 돌아다니면 험한 꼴 당해서 인생 망친다고 점쟁이가 그랬어.”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
“점쟁이가 그랬다고 그 말을 들어요? 세상 똑똑하다는 선생님이요?”
“그럼 나는 평생 친구들하고 밤새워 못 놀아요?”
“그런 건 결혼해서 남편하고 하면 되잖아”
세대가 바뀌는 시간 동안에도 변했으면 하는 것은 여전히 꿈쩍도 안 했다.
여자의 역할이라는 담장 속 삶에서 몇 발자국은 걸어 나온 것 같아 보였는데 여전히 내 딸들도 세상에서 여자임을 답답해해야 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남녀의 성비가 유난히 큰 직업군에서는 여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억울하다. 수가 적다고 기회까지 적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이다.
체력이 요구되는 일에서는 기본적으로 약체가 될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
남자는 성공한 후에 결혼해도 되는데 여자는 무조건 젊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폭발할 것 같다는 딸들의 성토에 미안했다.
나의 노엽고 원통했던 감정을 여전히 대물림 하듯 넘겨준 것이 마치 깨져서라도 부딪혀 바꾸지 못한 내 탓인 듯 나는 그저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 적어도 니들은 엄마가 니들 편이잖아. 그러니 귀하고 씩씩하게 키운 엄마를 믿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표현하고 살아. 뭐 딸은 열 달 안 채우고 낳고 아들보다 쉽게 쉽게 키우는 줄 아나 본데 절대 아니야. 그러니 기죽지 말고 힘내 “
졸업 작품 전을 마친 막내가 집에 돌아와서 흥분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나들 지난주에 왔었잖아요. 누나들 다녀가고 나서 우리 과 애들이랑 전시회장에 있었던 친구들 다들 난리 났었대요”
“왜? 문제가 생겼어?”
“아니요. 전시회장에 딱 들어서는데 그 포스가 셋다 장난이 아니었대요. 다들 쳐다보다가 여자 후배가 ‘수혁이 선배 누나들 아이야?’ 딱 알겠더래요”
“거기서 뭐 했는데 누나들이”
“그냥 게임 참여하고 구경만 했는데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다고 후배들이 나한테 형 장가가기 힘들겠네요 하더라고요”
순간 내 목소리가 커졌다.
“뭐? 그래서 뭐랬는데?”
“우리 누나들처럼만 살면 세상이 정의롭고 평화로울 거라고 했어요”
우리 집 가장 약체가 그렇게 생각하다니 놀라운데!
나의 응원이 뭐 그리 강한 처방일까 싶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다. 세상에 가장 든든한 뒷 배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무서운 독재자로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무기력한 딸로 만들 수도 있는 가깝고도 영향력이 큰 사람.
나는 말투가 강하고 아주 시원시원하다는 살짝 비꼬는 칭찬을 받을 때면 더 큰 목소리로 알려준다.
“딸이 셋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단단한 갑옷을 걸친 전사로 살고 있죠. 세상 무서울 것 없습니다.”
그게 엄마인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