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혼자 있어서 화목하다고?

by 서화

올해는 한강의 불꽃 축제를 직접 내 눈으로 관람했다.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하게 사무실 의자에 앉아 간식으로 제공된 빵과 음료를 먹고 마시면서 그렇게 한 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셋째의 회사에서 기획한 이벤트였다. 회사가 여의도에 있는 건물의 고층이어서 불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마침 그날이 내 생일이었으니 고맙게도 황홀한 불꽃을 케이크의 촛불 대신으로 선물 받은 것 같아 더 좋았다.


생일을 보내고 일주일쯤 뒤. 모처럼 가족들이 다 같이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았다. 서로의 일상과 며칠 전 큰애와 막내가 같이 관람하고 온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소감을 경청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셋째가 막내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불꽃 축제 날 우리 회사에서 간식 봉투 나눠 준 사람 기억나죠? “

"응, 너랑 업무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었지?"

"맞아요. 그분이 오늘 회사에서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정말 화목해 보였다고요"

셋째는 우리가 소곤소곤 대화하며 자주 웃어서 그렇게 느꼈나 짐작했는데 놀랍게도 엄마를 혼자 두고 저녁 식사하러 나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더란다. 혼자 있는 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여서.


예상 못한 화목하다의 의미에 우리는 모두 “진짜? 그게 화목한 관계야?” 의아했지만 곧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좋다 안 좋다의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 일 수밖에 없듯이 그 사람의 화목은 어쩌면 ‘따로 또 같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각자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기준일 것이니 굳이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우리도 그저 좋기만 한 관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난 며칠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겪었었다. 나한테는 지옥이었다.




첫째는 몇 달 전에 분가를 했다.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은 정말 하루하루가 고역이었고 나와 큰아이는 결국 회사 근처로 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따로 살면 조용할 줄 알았다. 매일 마주치지 않으니 조금은 애틋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큰애와 둘째는 또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말았다. 이번엔 셋째까지 엮였다.


설명하기도 치사한 이유였다. 딸 셋이 아파트 관리비를 나누어 책임지자고 서로 의논했단다. 엄마가 생활비도 책임 지도 있으니 그거라도 자기들이 하자고. 그렇게 매달 관리비 고지서가 나오면 둘째는 사진을 찍어 올리고 각자 1/3을 둘째에게 보내 다시 내 통장으로 보냈었다. 그렇게 3-4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큰애가 관리비는 거주인들끼리 해결하라고 톡을 보내왔단다. 살지도 않는 자신이 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하면서. 예상한 대로 큰소리가 오갔고 나는 이틀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 지옥에 앉아있는 것처럼 우울하고 머리가 복잡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크게 했기에 내 자식들의 관계가 이처럼 뒤틀리고 서로에게 원망과 분노만 쌓였는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실패한 것 마냥 참담했다.


큰 아이는 주말에 올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와서 머물다 갈 것이다. 큰 아이가 오면 둘째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올지도 모른다. 마주치기 싫어서. 집에 오지 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떨어져 사는 딸의 밥을 챙기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니까.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가족으로 일원으로 챙겨주고 있었는데 거주자, 비거주자로 나눈 표현에 침착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별일 아닌 듯 넘길 수 없다는 결심은 했지만 도대체 어떤 논리를 갖고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큰 아이에게 어떻게 내 감정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자꾸만 잠을 놓치고 말았다.

잠을 자지 못하니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내 안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못 받아들인다면 다시 안 보고 살겠다는 극단적인 결심까지 하면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실패한 인생 같았고 타인에게 잘못한 나의 행동에 대한 벌을 받는 것 같아 내 삶이 끔찍해지고 있었다.


‘얘들은 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질 않지? 정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한 번도 물어보질 않지?’ ‘물어보라고 해야겠다. 엄마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아이들의 물음에 답을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큰애에게도 둘째에게도 나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큰애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둘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딸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어긋나 버린 두 사람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무마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썼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관계였다.


큰애는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화는 하고 있지만 웃음기가 전혀 없는 내 표정을 보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셋째가 약속으로 방을 비웠을 때 큰애와 둘째를 나란히 앉혔다. 셋째의 방이 가장 안쪽에 있어서 혹시 큰소리가 나더라도 옆집에는 크게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자리 잡았다.

큰애에게 먼저 물었다.

“너는 이 집에 왜 왔니? 가족으로서 왔니?”

큰 아이는 질문을 이해 못 하고 그저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니가 필요하면 가족이고 너한테 불리하면 거주자, 비거주자니?”

“너는 지금까지 가족으로서의 내 노력을 한방에 쓸데없는 짓으로 만들었어”

큰 아이는 바로 오해라고 했다. 자신의 표현이 그렇게 크게 상처를 줄지 생각 못했다고 잘못했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나는 분가하는 너를 위해 자동차도 주었고, 필요한 것도 사주고, 우리끼리 먹는 게 미안해서 고기도 보내고 했는데 너는 받는 건 당연하고 엄마를 위해 관리비 1/3 내는 것도 아깝니?”

돌려 묻지 않았다. 그동안 챙겨 온 엄마로서의 내 노력이 하찮게 대우받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잘 해결되었다. 두 딸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주고받았고, 큰 아이가 없는 집에서 맏이 노릇 하느라 고달픈 둘째의 노고도 큰 아이가 인정해 주면서 다시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둘째가 방을 나간 후에도 한참을 큰 아이와 있었다.

너를 생각하고 챙기는 엄마의 마음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나의 관심과 사랑에 너의 힘듦이 좀 줄어들기를 바랐어. 떨어져 있어서 책임은 없고, 그럼에도 엄마가 챙겨주고 있으니 동생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좀 가지길 바라기도 했고. 너는 언제까지 너의 힘듦만 볼 거야? 니가 버는 돈은 아깝고 다른 사람의 돈은 가치가 없는 것 같아?”

큰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큰애는 둘째가 나서서 하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끌려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너무 싫었단다. 뭐든지 둘째가 나서서 제안하고 자신과 셋째는 따라가는 것 같아서 그랬단다. 셋째는 동생이니까 괜찮을 수 있지만 자기는 윗사람이니까 그게 싫단다.


나는 큰 아이의 심정을 더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생일에 뭐 필요한 거 있냐고 왜 안 물어봐? 물어볼 필요가 없지. 동생들이 엄마한테 필요한 것 알아내서 사드리고 1/3씩 분담하자고 했으니 너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아니야?”

“그런데 그건 불공평해. 동생들은 엄마 선물 고민하고 같이 사러 가고 다 했잖아. 너는 달랑 니 몫의 돈만 내면 되는데 그게 왜 억울해?”

“그럼 니가 알아서 이제부터는 다 해”

“아니요.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저도 동생들 고생한 것 다 알아요. 그런데 그 당시 기분으로 말한 것 정말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큰애와 둘째는 한방을 쓴다. 감정을 풀지 않으면 그 방이 곧 지옥이 된다. 싫은 사람과 밤새 한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언짢은지 나는 안다. 짧지 않은 결혼 생활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시간이 한방에 머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만약 그날 묵은 감정을 해소하지 못했다면 나는 바로 큰 아이를 자신의 거처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겪어봐서 안다. 감정의 희생이 육체적인 고단함보다 더 지독하게 아프다는 것을.


어찌어찌 딸아이들도 나도 나름 속상하고 묵혀두기만 했던 서운한 감정들을 밖으로 털어내고 평안한 주말을 보냈다. 혼자서 극단적으로 부풀렸던 가족의 붕괴는 없었다. 터질 듯 팽팽했던 감정이 너무 쉽게 바람이 빠져버려 나는 며칠을 잠 못 든 내 고민의 노력이 허무하기까지 했다.




"진짜 니가 원하는 게 뭐야?"

이 질문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가족이어서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묻지 않아도 내 감정과 기분을 세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과 가족들의 마음이 같을 것이라 단정적으로 짐작했었다. 한 술 더 떠서 엄마인 나처럼 모두가 가족의 화목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나 자신의 평안과 행복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선택해서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과 단절까지 했으면서.


고백하자면 해결보다 묻어서 희석되기를 원했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화가 가라앉으면 이성이 되살아나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약이었으면 바랐던 건 못마땅하고 갑갑한 그 감정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다툼의 당사자가 아니니 발만 동동 구르며 속만 끓이는 형국으로 매번 이 싸움에 불려 나갔으니까. 그래서 모른 척 눈을 돌리고 있었다. 실패한 대화의 결혼 생활은 결국 파국이었음을 체득했으면서도 또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 내 어리석은 침묵이 골이 깊어진 두 아이를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만든 것 같아 그날은 반성하느라 또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지레짐작으로 관계를 극단적으로 만들어 간 것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말해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다. 엄마로서 바라는 것은 서로에게 감사하고 즐겁게 같이 살아가는 것인데 내 아이들이 싫다고 할까 봐. 자신들은 결코 마주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할까 봐 묻는 것조차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당당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나는 자식들에게는 가장 여리고 약한 엄마니까.


더는 눈치 보지 않으련다. 그리고 기다리며 지켜만 보는 것도 하지 않으련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에 한에서는.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던 막내가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위로랍시고 거들었다.

“ 엄마가 어떤 결정을 하든 저는 엄마 편이에요. 엄마만 애쓰시는 것은 잘못된 거니까요”


인경혜수!

엄마도 이제 점점 약해질 나이야. 집에서는 부드러워지도록 조금씩 노력하자.

우린 가족이야.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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