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다 달라지는 엄마의 대응
넷을 키우다 보면 여기저기서 자문을 구하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 “아이가 핸드폰을 사달라고 떼쓰면 어떻게 해요?” “친구들이랑 주말마다 놀겠다고 나가서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혼내야 할까요?”“누나랑 자꾸 싸우는데 언니는 어떻게 애들을 안 싸우게 만들어요?” 진짜 별별 것을 다 묻는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답이 있다. “아이가 넷이면 엄마는 최소 네 가지 방식은 갖추고 있어야 해요.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아니 그 방법은 엄마가 찾아야 하고요” 나도 키우면서 깨달았다. 한 공장에서 났는데 어찌 이리 다른지.
나에게 알리지 않고 무슨 일을 진행하다가도 큰아이는 금방 “실은요….” 하면서 그 시작부터 설명하는 편이다. 조그마한 고민이 생겨도, 아니면 좋은 일이든 기분 나쁜 상황을 겪든 무엇이든지 말로 풀어야 두 발 뻗고 자는 편이기 때문이다. 며칠 바빠서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도 종국엔 나에게 털어놓을 것을 알기에 조급함 없이 나는 기다린다. “엄마. 집에 계세요?” 하면서 곧 집에 도착한다는 카톡을 보내오는 날은 영락없이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신호다. 그러면 맛있게 익은 고등어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입안에 넣지 못할 정도로 큰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말한다. “아, 엄마한테 다 말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내가 더 고맙다. 기다리기만 하면 다 말해주니.
둘째는 직장 내 인간관계도 친구 관계도 기존 관계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 없는 사람이라 가끔 한 번씩 속내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둘째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편이다. 묻지 않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기가 막히게 줄여서 말할 만큼 대화도 짧고 깔끔하다.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새로 온 우리 팀장님이요” 하면 “아, 그 똑똑하게 일 잘한다는 그 사람?”이라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먼저 알려준다. 그러면 “네 맞아요. 엄마 기억하시네요” 한다. 본인이 한 얘기를 내가 허투루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대화를 이어갈 때 아주 중요한 것 같다. 그러면 새로운 사실을 말하고 있어도 지난번 이야기에서 연결되는 느낌으로 나는 둘째의 인간관계망에 속하게 된 것 같기 때문이다.
둘째가 중학생 시절, 사춘기를 겪으면서 집에서는 더욱 과묵해졌고 나도 일일이 따져 묻지 않다 보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나 시시콜콜한 일을 다 말하는 딸을 둔 이웃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나는 둘째가 상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고, 담임선생님이 특별히 다른 친구의 일상을 둘째에게 부탁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둘째가 그랬다. ‘결국 엄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시네요’라고. 그래서 또 내가 거들었다. ‘그러니 조금씩이라도 엄마에게 말해. 나중에 한꺼번에 다 말하려면 숨차’.
여전히 둘째는 말이 적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그저 기다리기.
셋째는 애교 많은 딸이지만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다. 실수가 잦아서 투명 유리처럼 속을 읽히는 아이였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반투명해져 버렸다. 분가해서 살 때 나는 가끔 셋째의 생활에 대해 큰애와 둘째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이런 톡을 보낸다 “혜주야 잘 지내고 있지? 하도 연락이 없어서 궁금해서 해봤다” 그러면 전화가 온다. 이렇게 저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식 중에서 셋째가 가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격 같다. 내가 반대할 만한 일을 하고 싶으면 그냥 해버린다. 나한테 말하지 않고. 어쩌면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삶을 가장 확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셋째일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천력으로는 나를 가장 많이 닮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이 판단하고 결과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게 어른이야.’ 나는 그 어른의 엄마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인생이 아니니 그저 기다린다. 내 조언을 요구할 때까지.
막내는 아들이다. 성이 다르다 보니 나의 이해도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내가 가장 오래 지켜본 자식이다. 중학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나는 아들내미의 후원자일 뿐이다. 힘들어할 때 기운 나게 해줄 음식을 만들고, 그래도 답답해하면 여행 갔다 오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오라고 용돈을 좀 더 챙겨주는 것으로. 그래도 큰 걱정은 없다. 근본이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는 아이라서. 나는 오히려 그 노력이 결실이 없을 경우 의지만은 꺾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아들은 좀 많이 딸들보다 느린 것 같다. 걸음마도, 첫 이가 나는 것도 다 느렸다. 그때 내가 다짐했었는데…. ‘이 아이는 다 느린 것 같으니 내가 마음을 비워야 하겠구나’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났다.
태권도장에서 한 살 어린 동생에게 지나친 놀림과 발차기로 맞아서 울면서 귀가했다. 나는 단장과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운 아이의 부모에게는 전화를 하면서 울린 아이의 부모와는 통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결국 일은 잘 해결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단장에게 그 아이 부모와 통화한 후에 통화 내용을 나에게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예상대로 그 아이는 집에서도 가족들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이 었고, 단장은 두 아이를 가까이 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 한번 주의를 주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눈물만 많은 나의 아들을 혼냈었다. 왜 너도 한 대 때리지 못 했냐고. 그렇게 그 일이 잊힐 때쯤 비가 오던 어느 날, 막내가 집으로 들어오며 아주 의기양양한 낯빛으로 나를 찾았었다. “엄마, 엄마. 비 많이 와요” “우산 갖고 갔는데 왜 이렇게 젖었어? 우산을 못 쓸 만큼 바람 불어?” “아니요. 지욱이랑 같이 쓰고 와서 젖었어요”“ 지욱이가 누군데?” “태권도장 그 동생이요”
신발을 갈아신고 있는데 그 동생이 현관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보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도 가끔 한 번씩 그 아이는 막내를 힘들게 했었다. 단장이 나서서 혼을 내주었다며 집으로 돌아온 막내가 전해주던 정황만으로도 나는 그 아이가 그리 썩 달갑지 않았다. 막내는 우산이 없는 그 동생을 보며 고민했단다. 씌워줄까 말까 하고. 그러다가 “같이 쓰자”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웃으며 자기 팔을 잡았단다. 둘은 같이 왔고 옆 동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그 동생이 “고마워 형” 했단다. 처음 들은 형이라는 호칭에 막내는 얼굴이 환해져서 들어온 것이었다. “잘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날 잠을 설쳤었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이 깊었다. 너도 한 대 때려주지 왜 그러지 못 했냐고 혼냈던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도 무슨 일이든 지켜보자는 마음을 먼저 가지려고 노력했다. 기다려주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그날 이후 그 동생은 우리 막내에게 그 어떤 해도 가하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에게 했던 말처럼 자식이 넷이면 엄마는 네 가지 태도는 기본으로 지녀야 하는 것 같다. ‘기다림’은 바닥에 깔고 성인이 된 자식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길들을 옆에서 뒤에서 같이 걸으며 지켜보는 것이 할머니가 되어가는 나의 마지막 역할일 것이다.
인경혜수! 우리 적당히 관심 가지면서 평온하게 살자. 내 말뜻 이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