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룸메이트가 된 엄마

네 아이와 나, 평등하게 사는 법

by 서화

나는 어떤 엄마일까? 아니,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 명확한 어휘 몇 개로 규정짓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이런 물음을 가져본다. 60년 가까이 살다 보면 별의별 말을 다 들었음에도 나는 타인의 평가에 무게를 싣는 어리석음을 반복했다.


좋은 엄마? 솔직히 난 결혼 전부터 내가 엄마가 되면 꽤 근사한 엄마가 될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래서 그 뻔한 구덩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었다. 어마무시한 책임감을 똘똘 뭉쳐 남은 인생을 가족들에게 갖다 바치는 에너지로 쓰면서 진짜 현모양처가 될까 봐 결혼을 거부했었다. 결혼하면 엄마가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고, 부모가 된다는 건 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좌표가 달라지는 변수가 될 것임을.


큰아이가 초등 1학년, 둘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라고 기억한다. 나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았었다. “얘들아, 니들은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해?” 나를 빤히 돌아다보던 둘째가 큰애와 눈을 맞추더니 동시에 그랬다. “엄마요. 엄마를 제일 사랑해요” 나는 웃었다. 소리내어 웃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뻔한 대답이어서 그 순진한 표정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반응은 이랬다. “진짜? 그런데 어쩌지? 엄마는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데. 인주는 인주를, 경주는 경주를 제일 사랑해야 하는 거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어떻게 사랑해. 안 그래?”


어쩌면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엄마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내 의견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은 표정이었지만 두 딸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재차 물었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지?” “나요.” ‘역시 학습은 즉각 즉각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효과가 좋아!’


셋째와 막내의 의식교육은 둘째가 맡아서 임무를 다해주었다. 7살짜리가 5살, 3살짜리 동생을 앉혀놓고 “혜주야, 수혁아. 내 말 잘 들어봐. 세상에서 니들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어. 알아들었지?”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디 가서 기죽을 일은 없겠네’ 싶었다.


이렇게 키운 네 아이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엄마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의 욕심은 또 그렇다. 비록 내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라고 말했지만, 그 말 안에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에너지를 자가발전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포함시켰었는데... 자기애만 너무 강해지는 것을 바란 건 절대 아니었다. 90년대생이 거쳐온 사회의 물결이 이 아이들을 MZ세대라고 총칭하는 ‘요즘 애들’을 만든 건지, 아님. 자기애가 독특했던 엄마의 영향으로 그런 건지 아무튼 우리 집의 MZ들도 예외 없이 ‘요즘 애들’이다.


다행스럽게도 사회생활에서의 대처 능력은 내가 우려하는 것보다 더 유연한 것 같다. 거절해야 하는 것에도 조심스럽고, 고마운 일에도 꼭 답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면서도 솔직히 조금 섭섭하다. 타인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방식에 비해 가족들, 특히 언니, 누나, 동생들 간의 감정적인 해결은 그리 관대하지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집안일의 총체적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둘째를 지켜보면서 그 원인이 큰애 한 명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큰애는 자기 일이 바쁠 땐 아예 집안일을 자신의 의무에서 배제해 버려서 사건이 커진다는 것이지 셋째의 무관심도 만만치 않다. 몇 번의 잔소리를 거쳐야 마지못해하는 시늉 정도. 그럼에도 셋째가 크게 질타받지 않는 것은 동생이기도 하지만 애교가 또 많다. 그래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때그때 잘 넘긴다. 둘째가 화를 내다가도 “이번 주말까지 니 방에 있는 박스들 다 정리해놔” 기한을 주며 끝내버리기 일쑤였다. 합가해도 자신들의 이 변화되지 않는 태도가 바뀔지 의문을 가졌던 둘째는 이사 직전까지 “과연 엄마 말을 들을까요?”라며 우려를 내려놓지 못했다.


각자의 생각만 고집해 오며 살아온 세월이 10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엄마와 살 때는 어떠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엄마는 나이가 10년이나 늙어버렸고, 자신들은 10년이나 더 크며 고집이 세졌는데 엄마가 힘들면 어찌할까? 뭐 이런 걱정까지 하는 것 같아 나는 어이없어 웃었다. “야. 니가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거야?” “엄마. 혜주, 수혁이도 만만치 않아요. 아무리 말해도 방이 엉망이에요”



나는 요즘 햇빛 정책을 쓰고 있다. 먼저 잘 먹인다. 퇴근 시간에 맞춰 고등어 굽는 냄새로 반기고 있고 기본 반찬은 항상 갖추어져 있으니, 다이어트 운동을 시작한 아들내미도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게 먼저다. 고마운 점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쌓여야 한다. 빨래, 청소, 그리고 냉장고 채워놓기, 무엇보다 먹고 싶은 메뉴 만들어주기. 그렇게 “요즘 너무 잘 먹어서 살찌는 것 같아요” “저녁으로 갓구운 고등어구이 먹는다고 하니 부장님이 너 황제로 사는구나 했어요” ‘그렇지 잘 되고 있네.’

그렇지만 절대 각자의 방은 손대지 않는다. 각자의 프라이버시 존중이라지만 그건 내가 그들에게서 돌려받아야 할 부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갖추어져 돌아가고 있는 거실, 부엌, 기타 다른 집안 곳곳과 달리 셋째와 막내의 방은 자신들만의 방식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었다. 창밖에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어느 겨울 아침 나는 막내와 아침을 먹으며 드디어 내 속내를 드러냈다. 따뜻한 국에 맛난 밥을 먹고 있던 아들에게 나는 감정을 조금만 섞어서 말했다. “어이 아들. 너는 우리가 함께 살면 서로 마음 맞춰서 잘살아 보자 그러지 않았어?” 갑작스러운 나의 질타 섞인 질문에 막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니가 봐도 좀 너무하지 않아. 거실, 부엌, 욕실, 심지어 신발장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데 너, 지금 일어나서 니방 좀 보고와” 직접 가보지 않아도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아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움직이게 했다. “너무하다는 생각하지? 각자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맞춰 살자며? 이건 엄마만 노력하는 거 아냐?” “죄송해요. 밥 먹고 바로 치울게요”


생각해 보면 뭐 그동안 쌓인 감사함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엄마 성격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들은 그날 오후에 방 정리를 끝냈다. 둘째가 보고 놀랄 정도로. 누나와 엄마의 칭찬에 머쓱해하면서 본인도 기분 좋단다. 솔직히 그 이후 여전히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수혁아, 방 청소”하면 반나절 안에 치운다. 일단. 한 놈은 해결.


셋째는 막내보다 좀 더 복잡하다. 회사 생활이 아주 고달프다. 야근도 잦고 출장도 잦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주말엔 또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바빴다. 셋째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내가 좀 도와준다. 업무가 좀 많았다 싶으면 몸이 아픈 악순환을 몇 번 겪어보니 이 딸은 조금 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 내가 조금 내려놓았다. 패션 쪽 일을 하며 옷을 좋아하다 보니 옷은 많고, 그렇다고 공간이 넉넉하지 못하니 좁은 공간에 들어찬 옷으로 인해 셋째의 방 정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지 출근하면서 “엄마, 오늘 일찍 퇴근할 것 같으니 와서 내방 정리할게요.” 말은 한다. 그리고 다시 야근. 11시에 도착하자마자 화장만 지우고 뻗는다.


둘째는 동생 방이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 그래도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화는 키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툭툭 던진다. “엄마, 쉽지 않으시죠? 만만치 않다니까요”

그래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세상일이 언제 예견한 대로 된 적은 있었나. 나도 지치면 좀 무시하고, 또 심하다 싶으면 큰 소리 한번 내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해결될 거다.

당장은 180도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뭐 어때. 어디 나가서 기죽지 않도록 키워놓은 내가 집에서도 기죽이지 않는 방법으로 살살 해봐야지.


인경혜수! 조금씩 조금씩 맞추며 바꿔가자. 협조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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